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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좋은 말을 만나야 한다

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21)

    입력 : 2017.06.23 12:07


<세일러V>

우연히 알게 된 ‘세일러V`의 과거
‘세일러V’는 장애물을 잘 넘어서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올리는 말이 아니었다. 선수단 말로 쓸 요량으로 사 왔으니 계속 운동하는 목적 외에는 내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내 사전에 포기는 없다‘란 미명 아래 녀석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훈련을 계속했다. 녀석에 대한 생각으로 골머리를 앓던 중에 우연히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나보다 앞서 녀석을 타던 기승자가 있었는데, 그 기승자와 감정싸움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싸움의 승패는 애초 가려진 싸움이었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쪽이 녀석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감정싸움에서 진 녀석에게는 고문과 같았을 테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마방으로 돌아간 녀석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녀석은 자해라도 하듯이 마방 벽에 자기 머리를 수차례 들이받기 일쑤였다고.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자 녀석에게 내 감정만을 내세울 수가 없었다. 항상 조심하고 극도로 인내한 상태로 녀석을 운동시켰다.

승마장의 ‘슛돌이’
매주 토요일이면 지적 장애를 가진 한 아이가 우리 승마장으로 놀러 오곤 했다. 그 아이는 언제나 농구공을 세 개씩 가지고 다녔다. 한 개는 항상 왼쪽 옆구리에 끼고는 나머지 두 개는 배낭 속에 넣고 말이다. 나머지 한 손에는 튀김 만두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는 씩씩하게 승마장을 걸어 다니던 친구였다. 내가 먼저 “○○야, 왔니?”라고 인사를 건네면 아이는 항상 “△△△선생님이 그러셨어요!”라고 같은 대답만 되풀이했다. 우리는 그 아이를 ‘슛돌이’라고 불렀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하루 운동을 마치고 퇴근을 하려던 찰나에 우연히 그 아이가 농구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다. 아이는 이곳저곳에서 슈팅을 시도했다. 그런데 아이의 손을 떠난 공은 90% 이상 링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는 손뼉을 치며 진정한 ‘슛돌이’라며 칭찬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에서는 그 아이를 ‘슛돌이’로 부르게 됐다.

‘슛돌이’를 통한 깨달음(?)
그날도 어김없이 ‘슛돌이’는 승마장 한편을 씩씩하게 걸어서 스탠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난 여전히 반쯤 정신 나간 ‘세일러V’ 녀석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 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 중얼거리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슛돌이’를 쳐다봤다. 갑자기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깨달음인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녀석과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확신은 들었다. 녀석은 운동 방법적인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동물을 치료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도 않은데 과연 ‘세일러V’ 녀석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사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도 환자를 완치시킬 수 없는 게 태반인데. 이런 생각을 하니 녀석과 실랑이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후 난 우리의 세계에서 녀석을 해방해줬다.

‘말 못하는 말’을 사랑하자
우리는 승마를 하면서 각양각색의 성격을 지닌 말들을 만나게 된다. 만나는 말들 하나하나가 각자 다른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앞에서 보인 ‘세일러V`와 같은 말은 만나는 일은 흔치 않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녀석과 비슷한 말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니깐 말이다. 우리도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눈에 띌 정도의 불편을 못 느끼는 것이지, 전혀 정신적인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두 약간의 정신적 결함이나 문제 등은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물며 말이라고 우리 인간과 다르겠는가? 우리에게 억압받고 감금당해 살아가고 있는 말(言) 못하는 말(馬)들은 오죽할까. 이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승마를 해야 하는 이유란 생각이 자꾸 든다.


▲우리도 약간의 정신적 결함이나 문제 등은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물며 말이라고 우리 인간과 다르겠는가? 우리에게 억압받고 감금당해 살아가고 있는 말(言) 못하는 말(馬)들은 오죽할까. 이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승마를 해야 하는 이유란 생각이다. 2003년 ‘버드제파’와 ‘이용문 장군배 승마대회’ 출전 모습.



<웁스>

좋은 말을 만나야 한다
흔히 승마계에서는 ‘승마선수는 말을 잘 만나고, 말복(福)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난 한참동안 말복이 지지리도 없다는 이야기를 아주 많이 자주 들었다. 그리고 승마란 종목은 살아있는 생명체인 말과 함께 호흡하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말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아마 모든 승마선수의 고민일 것이다. 호흡도 물론 중요한 덕목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을 만나는지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이제 소개할 ‘웁스’ 녀석과 또 다른 녀석들과의 경험에 의해서다. 이유가 어찌 됐건 좋은 말을 만나야 한다는 명제는 틀린 말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웁스’ 녀석은 호주에서 왔다. `A Grade`를 뛰었을 만큼 능력이 있는 녀석이었다. 게다가 시드니 올림픽 승마 경기 출전을 위해 호주 장애물 대표팀 선발전에도 나섰던 경험이 있었다. 처음 녀석의 커리어를 듣고 많은 기대를 했다. 그만큼 운동도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운동을 했다. 가능하면 녀석의 기분을 맞춰 운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녀석은 평지 운동을 할 때 후구의 움직임에 다소 문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쪽 부분이 좋지 않아서 운동을 시작할 때 경속보로 운동을 하면 그 차이가 확연했다. 미세한 차이는 운동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좋아지기는 했지만 치료로 완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높은 클래스에 참가하는 많은 말들이 운동기 질환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치료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기승자가 운동을 조심조심 시켜 문제가 더 커지지만 않는다면 대다수의 말은 경기에 참가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웁스’ 녀석도 그와 같은 작은 문제를 갖고 있었다. 워낙 강한 정신력을 보유하고 있는 녀석이라 그런지 자신의 약점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녀석의 약점들
녀석은 다른 부분에서도 많은 약점을 갖고 있었다. 첫 번째는 비월 시 Take-of f지점을 약간 왼쪽에서 하는 것을 좋아했다. 착지는 반대로 오른쪽 장애물 소대(장애물 횡목 거치대) 뒤쪽으로 하는 걸 좋아했다. 더 솔직하게 얘기해서 집착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녀석의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하지만,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아니 집착을 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녀석의 이런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무진 애를 써 보았지만 녀석의 고집을 끝내 꺾지를 못했다. 경기를 잘하다가도 작은 실수 하나로 경기를 망치는 일은 다반사였다. 결국 녀석은 나쁜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비월 시에 발휘되는 지나치게 강한 정신력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점핑 능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높은 장애물을 넘기 위해서는 높이에 비례하는 속도가 필요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녀석은 장애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난 녀석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 매번 고삐를 당기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녀석의 위에서 완벽하지 않은 자세로 장애물 Take-off 지점으로 녀석을 데려가는 것뿐이었다. 몸집이 작은 녀석이었는데도 재갈을 아주 강한 것으로 사용해 봤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효과보다는 오히려 실수가 잦아졌다. 장애물에 다가가기 위서 곡선운동을 해야 할 때 몸이 뻣뻣해졌고, 충분한 추진과 자연스러운 Self carriage가 억제돼 실수가 더욱 많아졌다. 결국 다시 녀석이 호주서부터 사용해오던 재갈을 썼다. 이 재갈은 아주 가늘었고 둥글지 않고 약간 각이 진 모양이었다. 재질은 스테인리스는 아닌데 검은색을 띠는 금속 재질이었다. 재갈의 양쪽 링은 다른 소륵의 링보다도 많이 컸고, 재갈 가운데를 중심으로 안쪽으로 약간 굽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세 번째 문제는 겨울나기였다. 여느 말과는 조금 달리 몸에 아주 많은 숱을 지녔다. 겨울이 시작될 때 쯤 녀석의 털을 제모하면 겨울 내내 추워할 것 같아서 제모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촘촘하고 긴 녀석의 털은 깨끗하게 관리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털이 많기 때문에 한겨울에 운동을 조금만 시켜도 땀이 났고, 땀을 다 건조시키지 못한 상태로 마방으로 들어갈 때가 많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뽀송뽀송했지만 촘촘한 녀석의 털 속 피부까지는 완전하게 건조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녀석의 피부가 온전할 리가 없었다. 녀석은 더운 여름이 아니라 한겨울에 피부병이 생겨 겨울나기가 유난히 힘든 녀석이었다.



▲흔히 승마계에서는 ‘승마선수는 말을 잘 만나고, 말복(福)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가 말이 갖고 있는 약점을 고치거나 개선할 수 없다면 그런 약점이 없는 말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2002년 한국마사회 ‘웁스’와 함께.

지론 혹은 변명
이런저런 문제 가운데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문제는 대회 성적이었다. 나를 포함한 주변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 문제였다. 결국 난 녀석과 이별하게 됐다. 나와는 이별했지만 녀석은 또 다른 선수에게 힘든 숙제를 주거나 슬럼프에 빠트릴 것이다. ‘웁스’ 녀석과 이야기가 좋은 말을 만나야 한다는 지론을 대변해줄 수 있을지 아니면 변명으로 비칠지는 모르겠다. 이 글을 접하는 사람들이 판단해줄 몫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말이 갖고 있는 약점을 고치거나 개선할 수 없다면 그런 약점이 없는 말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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