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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한 경기에서의 실패는 다음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된다

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22)

    입력 : 2017.06.28 09:58


<버드 제퍼>

호주로의 전지훈련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치러지는 해에 나는 KRA승마단에 입단했다. 우리 팀을 비롯한 많은 선수가 아시안 게임 출전을 목표로 준비를 했다. 우리 KRA승마단은 종합마술에 출전하기 위해서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경기는 아시아 승마연맹과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서 경기의 등급을 정하지만 대부분 CCI1*로 치러진다. 지금도 그렇지만 CCI1*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승마연맹이 정하는 최소 자격기준을 통과해야지만 출전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종합마술경기의 D course인 Cross Country를 치를 수 있는 경기장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팀은 당시 세계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던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나게 됐다. 호주로 떠나는 전지훈련을 떠나는 팀은 우리 팀 말고도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선수들을 포함해 여럿 있었다.

녀석의 외관상 모습
나와 또 다른 한 선수는 추후에 합류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우리 팀 1진이 그곳에서 말을 구입하기 위해 먼저 출발했고, 말을 구입한 후에 우리는 최종 합류하기로 했다. 난 설렌 마음을 앉고 호주로 향했고, 녀석을 만나게 됐다. 이 녀석은 우리 팀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려는 기대를 갖고 호주에서 구입한 녀석이었다. 당시 녀석은 One-star 말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녀석의 특징을 살펴보면 먼저 서러브레드 말들이 그러하듯이 뼈대가 가늘고 약하게 생겼다. 외관상으로 등성마루에서 떨어지는 등이 다른 말들보다는 굴곡이 더 있어서 안장을 잘못 얹어놓으면 녀석의 등선 마루에 안장때문에 찰과상이 생길 것 같았다. 털은 Mix된 말처럼 부드럽지 못했으며 마치 곱슬머리를 만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칠었다. 그리고 피부는 항상 건조해 보였고 신경 써서 잘 관리를 해도 좀처럼 티가 나지 않는 녀석이었다.

낯을 가리는 녀석
성격적으로는 항상 낯을 가렸다. 사람에게 좀처럼 친밀감을 주지 않고 항상 거리를 두려고 했다. 안장을 올리고 복대를 조이면 뒤로 주저앉거나 난동을 부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항상 안장을 얹을 때는 조심을 해야만 하고 가능한 녀석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안장을 얹어야 사고가 없었다. 그리고 녀석은 아주 소심해 운동 중에도 항상 주의 깊게 운동을 시켰다. 혹여 감정 조절 실패로 녀석을 혼낸다거나 박차를 강하게 사용하면 소심한 성격의 녀석은 한동안 다시 혼나게 될까 봐서 운동하는 내내 몸을 움츠리곤 했다. 녀석의 움직임에는 특성이 있었다. 녀석은 앞다리에 비해서 뒷다리가 길었던 것이다. 그래서 속보 시 기승자가 앞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많아서 녀석의 양 어깨부분에 또 다른 패드를 대여서 밸런스를 맞추곤 했다. 이 패드는 녀석의 체형 때문에 찰과상이 날 수도 있는 것을 방지해 주는 역할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CCI1*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승마연맹이 정하는 최소 자격기준을 통과해야지만 출전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종합마술경기의 D course인 Cross Country를 치를 수 있는 경기장이 없었다. 2003년 ‘버드제파’와 함께.


크로스컨트리에 대한 불안함
하지만 녀석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마장마술을 할 때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서러브레드치고는 순하고 어느 정도 예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장마술을 연습할 때 언제나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장애물 역시 조심성이 많아서 항상 재미있게 훈련을 했다. 그러나 Cross-country는 녀석의 조심성 때문에 조금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는 A, B, C, D코스가 모두 있었다. 지금은 마장마술이 끝나고 둘째 날에 바로 Cross-country를 하지만 당시에는 A, B, C, D코스를 모두 해야 했다. 그런데 녀석은 B코스인 스티플체이스 연습을 마치고 나면 왠지 다리를 아끼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녀석과의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했고 항상 아쉬운 마음으로 훈련을 마쳐야 했다. 이런 느낌은 내게 조금의 부담을 항상 주고 있었다.

아시안게임 선발전
그렇게 힘들고 외롭고 조심스러운 훈련을 모두 마치고 드디어 아시안게임 선발전이 치러졌다. 선발전 장소는 우리 훈련장에서 8시간가량 떨어진 곳인 ‘Werribee’. 이곳은 매년 호주 종합마술 경기인 1*, 2*, 3*까지 치러지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들도 다수 참가하는 유서 깊은 대회이다. 대회 중에 치러지는 경기 중에서 대한민국 선수들과 호주선수들이 함께 1*경기에 참가를 했고 순위는 구분해 한국선수들만의 성적을 추려 아시안 게임에 선발되는 방식이었다.

괜찮은 마장마술 성적
나와 녀석의 첫날 마장마술 결과는 그리 나쁘지는 않아 조금의 희망이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고 우리 팀원 모두가 장애물 전문 선수였기 때문에 언제나 마장마술을 어렵게 생각했고 경기 결과와는 상관없이 마장마술 경기를 마치자 모두가 홀가분해 하는 표정이었다. 마장마술 경기가 끝나고 다음 날 이어질 Cross-country경기를 위해서 장애물 연습을 하며 대비를 했다. 우리의 코치는 히스 라이언이었다. 라이언은 유명한 종합마술 선수였으나 당시는 종합마술에 큰 목표를 두지 않고 마장마술 부분에 더 관심을 갖고 운동을 하는 듯했다. 그래서였는지 그 대회기간에 라이언 코치는 자신의 중요한 마장마술 대회와 우리의 중요한 종합마술 대회가 겹치자 자신의 마장마술 대회에 참가를 했다. 우리 정서상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들의 문화는 우리와 다르기 때문인지 라이언 코치는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듯한 인상까지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정식 코치가 아닌 라이언 마장에서 같이 운동을 하는 고든이라는 친구에게 모든 도움을 받았다. 장애물 훈련 역시 고든에게 받았다.

종합마술서 낙마하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난 녀석 외에 다른 한 녀석과도 호흡을 같이해서 같은 대회에 참가했다. 다른 녀석이 ‘버드제퍼’ 녀석보다 훈련 상태도 좋았고 선발전 전에 치러진 몇 경기에서 1위도 하며 좋은 경기력을 보였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른 녀석을 나중에 타고 ‘버드제퍼’ 녀석을 먼저 기승하기로 했다. A코스와 걱정하던 B코스를 무사히 통과한 난 녀석과 D코스인 Cross-country에 출전했다. 긴장됐지만 애써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며 출발했다. 1번을 힘차게 넘고 bounds 장애물인 6번도 어렵지 않게 넘자 점차 자신감이 붙었다. 어느덧 12번째 장애물이 보였다. 12번 장애물은 장애물 가운데 부분이 둥그렇게 파여 있고 가장자리는 높아서 가운데에 구멍이 난 네모난 장애물을 반으로 자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속도는 있었지만 그리 어려운 장애물이 아니어서 자신 있게 장애물을 넘기 위해서 다가갔고 ‘버드제퍼’ 녀석은 약간 주춤하면서 점프를 했다. 난 녀석을 장애물의 정중앙으로 유도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이 장애물의 모양은 양쪽 가장자리가 높아서 똑바로 넘지 않으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고 고든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최악으로 나타났다. 난 가운데로 넘으려고 했지만 녀석은 가운데에서 Take-off를 시작해 갑자기 왼쪽 편으로 붙으면서 넘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왼쪽 앞발이 장애물 중앙보다 높은 가장자리에 걸리면서 녀석은 균형을 잃었고 착지와 동시에 나와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난 떨어지면서 목이 심하게 뒤로 제쳐졌다가 엎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여간해서는 낙마해도 벌떡 일어나던 나였는데 잠시 동안 일어날 수 없었다. 이후 차로 후송돼 대회를 위해 파견 나와 있던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다. 진찰은 동공 확인을 중점으로 이뤄졌으며, 처음 진찰 이후에 약 삼십 분 가량 안정을 취한 후 다시 진찰을 했다. 당시 재진찰을 한 의사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했던 걸로 기억한다. 서투른 영어지만 의사에게 난 괜찮고 다음 말도 기승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대회가 내게는 아주 중요한 대회라는 사실을 설명했지만, 의사는 ‘미안하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결국 난 버드제퍼‘ 외에 에이스 역할을 하던 나머지 녀석도 타지 못하게 되는 불운을 겪었다. 최종 선발전 전에 에이스 녀석과 함께 두 경기에 출전을 해 모두 1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기에 아쉬움이 더했다.

머릿속을 스쳐 간 아쉬움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Cross-country경기 전날 장애물 연습 때에 녀석이 서너 번 왼쪽으로 붙어 뛰었던 게 기억난다. 당시 종합마술 경험이 미흡했던 난 녀석이 그렇게 장애물을 넘을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거다. 마땅치 않게 생각은 했지만 장애물을 무리 없이 잘 넘었기 때문에 별생각을 하지 않았던 거다. 대회 출전 전날 녀석의 자세를 고치고 훈련을 마쳤어야 했는데 말이다. 당시 난 장애물 선수였고, 경험이 부족해 장애물을 깨끗이 거부와 낙하 없이 그리고 아무런 저항 없이 장애물을 넘어 훈련을 마쳤다. 이런 습관은 완전히 장애물 선수였을 때의 습관이다. 만약 그때 라이언코치가 있었다면 과연 그대로 운동을 마쳤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런저런 상황들이 내게는 불행하게 느껴졌다.

대회 후유증
대회 종료 후 대회결과가 가져다주는 실망감은 너무나 컸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싫었다. 대회 끝나고 모두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에 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심신이 모두 피곤했다. 그래서 난 양해를 구하고 모두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 차안에서 기다렸다. 차안에 있는 동안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된 듯 이곳저곳 아프고 으슬으슬 추위에 떨기까지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몸은 아프고 피곤했지만 좀처럼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야만 했다. 그날 밤 밤새도록 심한 몸살을 앓았다. 잠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밤새 그만큼 땀을 흘렸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과가 기대한 만큼 좋지 않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항상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말로 위안으로 삼으려고 한다. 경기 결과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 1991년 뚝섬승마장에서 마장마술 시상식 모습.

값진 경험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과가 기대한 만큼 좋지 않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항상 결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말로 위안으로 삼으려고 한다. 경기 결과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스포츠의 모든 기록은 새로 쓰이게 마련이고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이 기록을 갱신하기 위해서 경기에 참가를 한다. 이런 과정은 선수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며, 나 또한 한 경기에서의 실패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다음 기회를 위해서 더 없는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한다면 더없이 큰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종합마술 경기에 두 마리를 기승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에이스부터 대회에 먼저 참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사실도 교훈으로 얻었다. 장애물은 에이스를 나중에 타지만 종합마술은 항시 위험성을 내포하기 있기 때문에 안전한 에이스를 먼저 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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