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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잊히지 않을 도하에서 기억

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23)

    입력 : 2017.07.12 13:56


<헷트릭>

‘헷트릭’과 함께 2008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도하 아시안게임은 내게 아니 모든 승마인에게 영원히 잊히질 않을 대회이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아시안게임 선발전을 할 크로스컨트리 코스가 없어 장애물과 마장마술만을 가지고 선발전을 치렀다. 지금은 국제승마연맹(FEI)에서 정한 최소자격필요요건기준 MER(Minimum Eligibility Requirement)으로 인해 이전보다는 확실히 안전이 보장됐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기준이 없었다.

‘헷트릭’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종합마술 말 가운데 최고의 능력을 지닌 녀석이었다. 장애물 능력도 아주 우수했고, 특히 크로스컨트리를 아주 잘했던 녀석이었다. 우리가 녀석을 구입할 당시에 승마 세계 최강팀은 호주 대표팀으로, 그 팀의 후보 말이기도 했던 뛰어난 녀석이었다. 대다수 종합마술 말들은 마장마술이 약했다. 녀석도 마장마술 경기 시에는 많이 흥분해 좋은 점수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장애물 경기에서는 아주 성적이 우수했다. 그 덕분에 난 어렵지 않게 1위를 차지해 선발전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승마 대표 선수단은 말들의 현지 환경 적응과 훈련을 위해 선수단 본진보다 약 20일가량 먼저 카타르 도하에 도착했다. 대한승마협회는 선수단을 위해 대회 장소 인근에 집 한 채를 빌려 우리가 자유롭고 편안하게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조성해줬다.

연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중동에서는 특히나 음식이 문제가 됐다. 식성이 좋은 축에 들어가는 나였지만, 3일이 지나자 입맛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입이 까다로운 다른 선수들은 이미 식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터였다. 결국 우리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승마협회 전무님께서 직접 대부분의 음식을 맛있게 해주셨고,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전무님께서는 숙소 가까이에 있는 대형 할인마켓에서 장을 보고 메뉴를 매일 바꿔가며 정성껏 음식을 해주셨다. 이런 정성은 우리가 훈련에 더욱 정진할 수 있는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됐다. 자연스럽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매국노(?)가 되는 분위기까지 조성되는 듯도 했다.


▲옛 방식은 모든 종합마술 종목을 치렀기 때문에 지구력이 승패의 중요한 요소였다. 첫날 열리는 마장마술에서 성적이 조금 나빠도 중간에 순위가 바뀔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D코스만으로 대회를 치르게 되는 새로운 방식 아래서는 첫날 마장마술 경기의 성적이 승패의 결정적 열쇠가 됐다. 1987년 한일승마대회 결단식 모습.

물론 우리는 대회 준비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헷트릭’ 녀석의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Trot-up을 하며 녀석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아주 충분히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도하 아시안게임의 전 대회였던 부산 아시안게임까지는 종합마술 경기가 A, B, C, D코스로 나뉘어 있어서 우리는 서러브레드(Thoroughbred)를 구입했다. A, B, C, D코스를 모두 할 당시에는 호주나 뉴질랜드가 종합마술에서 세계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지구력을 많이 요하고 최종적으로는 정신력까지 요하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웜블러드(Warmblood)’보다는 서러브레드(Thoroughbred)가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하 아시안게임이 가까워져서는 A, B, C코스가 없어졌다. D코스만으로 경기를 치르게 된 것이다. 말 학대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제승마연맹에서 결정한 것이었다. 우리는 지원이 충분하지가 않았고, 또 경기방식이 바뀐 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변경된 규칙에 대한 이해득실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단지, D코스만을 하면 지구력보다는 정확성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뿐이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지원이 충분치 않았고, 바뀐 방식에 대비할 시간도 넉넉지 않았다. 우리는 옛 방식에 맞춰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옛 방식은 모든 종합마술 종목을 치렀기 때문에 지구력이 승패의 중요한 요소였다. 첫날 열리는 마장마술에서 성적이 조금 나빠도 중간에 순위가 바뀔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D코스만으로 대회를 치르게 되는 새로운 방식 아래서는 첫날 마장마술 경기의 성적이 승패의 결정적 열쇠가 됐다. 근래에 치러진 종합마술대회를 보면 첫날 마장마술의 성적이 우수한 선수가 상위권에 랭크되며 대회를 마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마장마술에서는 성격이 급하고 걸음걸이가 좋지 않은 서러브레드가 불리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웜블러드는 성격이 온순하고 걸음걸이도 일정하기 때문에 운동 시간 조절을 통해 시합에 맞는 컨디션 조절이 용이하다. 하지만, 서러브레드는 훈련 시간이 지날수록 더 뜨거워지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종합마술 말들은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다른 종목보다는 많아서 운동 시간이 길수록 더 성격이 급해지며 자신의 위에 앉아 있는 기수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리듬을 깨뜨리기도 한다.

도하 아시안게임 당시 나와 함께 경기에 출전한 ‘헷트릭’도 서러브레드였다. 난 경기 전에 녀석이 흥분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운동을 시작하자 녀석은 내 기대를 저버리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흥분하고 나면 난 마음에 마치 커다랗고 무거운 사리가 생길 때까지 인내의 인내를 거듭해야만 했다. 대회 출전이 아닌 연습을 하는 날이라면 강하게 운동을 시키기라도 했겠지만 시합 전이었기 때문에 흥분은 녀석이나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난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녀석이 흥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시합에 맞춰 미리 운동을 한 시간가량 시켜놓은 상태였지만 녀석은 내가 기대한 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성격 급한 서러브레드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참고 달래가며 준비 운동을 천천히 길게 시키고 드디어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경기장 안에는 녀석과 나, 몇 명의 심판과 보조원들이 있었다. 또 멀리 보이는 수많은 관중들과 이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경기 점수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한 번쩍거리는 대형 전광판, 형형색색의 화분들까지 이러한 모든 것들은 녀석을 더욱더 흥분되게 할 뿐이었다. 주위 환경이 이렇다 보니 모든 말이 서러브레드인 우리나라 선수단은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었다.

만약 다른 나라 선수들도 웜블러드가 아닌 서러브레드를 타고 나왔다면 우리의 성적은 상위권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선수들은 다른 나라의 선수들보다 더욱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나라 선수들의 말은 한눈에 봐도 아주 훌륭한 걸음걸이를 갖추고 있었다. 마치 마장마술을 위해 훈련된 전문 말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웜블러드였다. 어찌 우리가 첫날 마장마술 부문에서 그들을 이길 수 있으랴.


▲아무래도 마장마술에서는 성격이 급하고 걸음걸이가 좋지 않은 서러브레드가 불리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웜블러드는 성격이 온순하고 걸음걸이도 일정하기 때문에 운동 시간 조절을 통해 시합에 맞는 컨디션 조절이 용이하다. 2002년 호주 전지훈련 당시.

대회 이튿날은 비가 내려서 그런지 을씨년스러웠다. 이른 아침 우리는 대회조직위에서 제공하는 말 운송 차량을 이용해 크로스컨트리 종목 출전을 위해서 말을 이동시켰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대회 운영 요원들의 미숙한 일 처리로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려 경기장에 도착했다. 이동 시간이 길어진 만큼 우리 말들은 운송차량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경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경기 운영과정에 생긴 문제들은 말이나 선수들에게 약간의 심리적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다.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타까운 일이 생기고 말았다. 나뿐 아니라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우리나라 대표 선수와 임원 모두에게는 결코 잊히지 않을 일이었다. 종합마술 선수단의 맏형인 故 김형칠 선수가 장애물을 넘다가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우리 선수단은 이후 모든 경기를 포기했다. 당시 故 김형칠 선수의 사고로 인해 도저히 시합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 거의 없는 도하 하늘에서 십수 년 만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 손 모아 故 김형칠 선배의 명복을 빕니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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