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주차 출마투표, 리모델링 공사 중인 투표소에서 진행
출마투표와 관계자 향한 인식 제고 돼야

구마모토 지진의 여파가 서울까지 이어진 줄 알았다. 지난 21일, 4월 4주차 서울 경마 출마투표 현장을 방문하고 처음 든 생각이다.

서울은 매주 목요일 도핑검사소 1층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출마투표를 진행한다. 투표소 왼쪽 면에는 전산처리를 위한 장비가, 가운데에는 투표를 하러온 마필관계자들이 앉을 소파가 마련돼 있다. 출구 쪽 벽면에는 투표용지를 작성할 수 있는 테이블과 컴퓨터 장비, 천장에는 전산 처리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가 달려있다. 아니 그랬었다.

21일 투표소 현장은 전 후 폐허 그 자체였다. 천장에는 철골만이 앙상하게 남아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입구에는 철근과 공사 자재들이 무더기로 쌓여 통행을 막고 있었다. 소파는 온데간데 없어진데다 조명이 들어올리도 만무했다. 경마팀과 핸디캐퍼들은 햇빛에 의존해 투표를 진행했고, 마필 관계자들은 투표용지를 들고 서서 떠다니는 공사현장의 먼지에 연신 마른기침을 뱉어냈다. 투표소로 들어가려던 한 조교사는 쌓여진 자재를 뛰어넘으려다 하마터면 크게 넘어질 뻔하였다.

이 모든 상황은 출마투표소 리모델링 공사로 빚어진 상황이었다. 사실 기존의 출마투표소는 JRA의 그것과 비교해보았을 때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시설을 보유했던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투표소라기보다는 마을회관의 이미지가 더욱 강했다. 리모델링이 필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마필관계자들과 심지어 마사회관계자들 역시 이 정도의 상황일지는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듯 보였다. 모두들 입구에 도착해서는 “이게 뭐야”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주가 지난 28일, 5주차 출마투표에서 상황은 악화됐다. 리모델링은 일부 진행됐으나 이번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으며 전산에서 장애가 생긴 것. 이로 인해 투표소를 찾은 조교사와 관리사들은 멀거니 서 있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국 투표는 평소보다 30분이 넘게 지연됐고 관계자들은 2주 동안 참아왔던 불만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출마투표소의 리모델링 예정기간은 2주 정도로, 5월이 되어서야 완전히 정비된 환경에서 투표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 바로 공사현장이다. 정문은 물론 주차장, 가로수부터 청동마상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 중에 있다. 경마혁신의 과정에서 단순한 경마장이 아닌 말 테마파크로 변신시키겠다는 사업의 일환으로 이미 해피빌 1층의 초보존은 놀라운지로 탈바꿈했으며, 기수협회 역시 운동처방실과 기수식당, 대강당이 리모델링을 마친 상태다.

리모델링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다. 놀라운지는 최첨단 IT 시스템을 구현한 장비들로 그야말로 한국마사회의 부(富)심을 느낄 수 있다는 호평을 받았으며, 기수협회 역시 한층 전문화되고 깔끔해진 시설로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은 리모델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직접 현장을 시찰하며 진행을 독려했다. 한국경마의 파트Ⅱ진입에 발맞춰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는 당연한 과제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출마투표소 리모델링의 과정에서 드러난다. 수차례 현장을 리모델링하면서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은 당연히 예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폐허 속에서 투표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출마투표를 진행할 수 있도록 컴퓨터 및 전산장비는 그대로 유지해두었다는 것이 그들의 변(辨)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출마투표는 경마진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매주 진행되어왔기에 익숙해졌을 뿐, 한 주 경마의 모든 출발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적어도 한 달을 공들여 준비한 경주마가 출전의사를 밝히는 자리이고, 투표결과에 따라 어떠한 편성에서 뛰게 될지, 누구와 호흡을 맞추게 될지가 결정된다. 전 세계 경마시행국에서도 출마투표의 위상과 권위는 마찬가지다. 경마대회를 앞두고는 마주들이 출마투표소를 직접 찾아 투표하는가하면, 날짜에 맞춰 오찬회를 가지는 등 본 경주만큼이나 중요한 의식이자 절차로 여겨진다. “문제없이 경주만 편성이 완료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면 한국경마의 파트Ⅱ 승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총선이나 대선도 문제없이 진행되도록 컴퓨터 시스템 만들어놓고 아무데서나 진행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경주마의 수준향상, 국제대회 유치를 위해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정작 경마 본질에 대해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더불어 관계자에 대한 예우 역시 이와 같은 단편적인 부분에서 드러나게 된다. 한국마사회 임직원이 참석하는 회의 장소가 이렇더라도 과연 방치해두었을까. 각 마방을 이끄는 수장인 조교사들과 경마의 주인공을 키워내는 관리사, 그 무대를 함께 달리는 기수들이다. 서울 경마의 모든 일정을 책임지는 경마처 직원들과 경주마 능력 판단을 위해 수십년을 연구해온 핸디캐퍼와 같은 전문인력들까지, 한국 경마의 역군들이 폐허 속에서 전쟁통의 난민처럼 투표를 진행하는 모습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런 이들을 위해 더욱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니 하루나 이틀쯤은 융통성 있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면, 반문하고 싶다. 융통성 있게 하루 이틀 정도 투표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냐고. 출마투표는 반나절이면 끝난다. 그 반나절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을까.

같은 맥락에서 리모델링에 착수했던 삼포마사의 이야기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벌써 수 년째 제기되어온 삼포마사의 환경개선이 최근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서울 관계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불행히도 가마사 현장점검까지 바쁘게 진행되던 과정은 최근 들어 인근 주거지역과의 마찰 등 다수의 문제에 부딪혀 잠정 중단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삼포마사의 시설은 그 누가봐도 열악하다. 협소한 면적을 비롯해 수많은 관리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외부에 공동으로 마련돼있고, 마사 지붕이 커버되지 않는 공간에는 비가 오면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정비가 되어있지 않다. 환기 시설 또한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는데, 최근 취재를 위해 삼포마사를 찾았던 나는 눈이 급격하게 부어오르고 콧물이 쉴새없이 흘러 병원신세를 져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알레르기가 있는 체질이지만 심각하게 지저분한 본인의 집을 생각한다면 삼포마사의 환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만 하다.

한국마사회는 지난 해 ‘아르고위즈덤’ 사태에 대해 관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은 바 있다. 이번 출마투표는 무탈하게 이루어졌으나, 만약 최악의 사태까지 이어졌을 경우 오랜 시간 출전마 관리를 위해 공들였던 수많은 관계자들의 시간과 노력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겠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경마의 주체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했으면 좋겠다. 지속적인 리모델링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만, 그 무게중심이, 혹은 선후 관계가 조금은 잘못되지 않았나 싶다. 의식의 리모델링은 그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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