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규 마구간승마클럽 대표·대한청년기마대장 특별 인터뷰

▲고성규 대표는 국내 최초로 아할테케의 본고장, 투르크메니스탄을 찾아 아할테케에 올랐고 현지에서 직접 촬영도 감행했다(사진 제공= 고성규).
5천년 역사 한국인으로는 처음 현지에서 ‘파르티아 사법’ 재현

“말산업 근간은 바로 문화…정체성 없이는 세계무대 도약 어려워
우리 것을 우리만 아니라고 생각해…전통 문화 상품 콘텐츠 만들어야
매스 미디어 활용해 세계 말 문화 기행 등 다큐 제작·인재 양성 힘쓰고파
말 문화로 부가가치 창출 고민 필요… 국가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기 때문”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데도 나머지 단추를 억지로 채우는 일이 다반사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 공무원들과 의식 있는 특구 지차체 일부 공무원들의 최근 움직임은 잘못 맞춘 단추를 풀고 다시 끼우려는 긍정적 시도로 풀이된다. 아니, 어쩌면 첫 단추는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제2차 말산업육성종합5개년계획안이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잘못 끼운 단추가 있는지, 첫 단추는 무엇인지 우선 되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존재 유무도 흐릿한 ‘첫 단추’는 바로 문화다. 물론 문화를 형성하는 일에도 자본이 필요하지만, 전통 있는 우리 말 문화는 특정인에게 한정된 주제가 아니기에 문화 융성은 ‘돈’으로 상징된, 개인의 사리사욕과는 상관없는 가장 진정성 있는 말산업계 발전 동력이다.
문화는 또한 역사 그리고 세계와 연결된 ‘언어’이기에 그 가공할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싸이의 ‘말춤’을 보라. 대중화, 활성화, 저변 확대 모두 산업이나 인프라가 만드는 게 아니라 문화가 키운다. 말산업 선진국을 보라. 자국 문화 하나 없으면서 국제화에 성공한 사례는 하나도 없다.
그래서 ‘우리 것’이 중요하다. 신토불이가 최고라는 국수주의도 아니며, 선진 문물만 흡수하려는 왜곡된 사대주의도 아닌, 제3의 길, 즉 우리 말산업이 세계로 나가기 위한 ‘실크로드’다. 아이러니가 아니다. 기본이자 근간인 우리 것을 중요시해야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
문화는 결국 대국민 홍보와 인식 전환을 위한 근간이자 발판이다. 문화만이 산업을 융성하게 한다. 산업은 돈이 아니라 문화가 키운다는 테제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대중의 동의를 얻고 국민 합의가 전제돼 함께할 수 있는, 즉 대중화는 문화 융성이 선재돼야 한다.
우리 말산업계는 그래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아니, 첫 단추란 애초에 없었다. ‘산업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대부분 예산 타령을 하고 투자를 요청하는 이때, 전혀 엉뚱한(?) 주장을 하는 이가 있다. 세계화를 기대하는 우리 말산업계를 향한 일침.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상 국내 말산업계 인사들 가운데 언론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알려진 그다. 6차산업, 미래 융복합 산업인 말산업계를 대표하는 ‘복합적’ 인물이기도 하다.
그 역시 대한민국 전통 말 문화의 복원, 보전을 외치지만, 눈과 발은 세계를 향해 있다. 중앙아시아를 기반으로 동서양을 호령했던 칭기즈 칸, 한 무제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화의 융합 결정체인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떠오른다면 비약일까.
4년여 전, 마구간에서 그를 처음 만났고 이후 현장에서, 학계 발표장에서, 각종 무대와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서도 만났다. 덥수룩한 수염은 그새 더 하얗게 변했다. 늦은 감이 없잖다. 우리 말산업계만 탓할 게 아니다. 본연의 임무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놓친 건 기자도 마찬가지. 너무 많이 돌아왔다. 고성규 마구간승마클럽 대표(대한청년기마대장, 홀스엑터코리아 대표, 고구려기마문화협회 회장)를 5월 24일 직접 만났다. 회포를 푼 것 같은 장장 5시간의 인터뷰. 본지는 고성규 대표와의 ‘대화’를 1·2부로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 말.

▲고성규 대표는 전통 말 문화 보전을 외치지만, 눈과 발은 세계를 향해 있다. 중앙아시아를 기반으로 동서양을 호령했던 칭기즈 칸, 한 무제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화의 융합 결정체인 헬레니즘 문화를 형성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떠오른다(사진 제공= 고성규).

- 한혈마, 아할테케의 본고장 투르크메니스탄(이하 투르크)을 방문했다.
지난 4월 열린 제6차 아할테케 협회 회의 및 국제 박람회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마사회, 한국말산업중앙회 관계자들과 함께 다녀왔다. 다큐멘터리, ‘고구려 말(馬)루트’ 촬영도 진행했다. 행사는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대통령과 부총리(아할테케협회장)를 비롯해 무슬림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많은 국민이 동원된 국가 축제로 열렸다.
아할테케와 활, 석유가스 그리고 실크로드의 요충지로만 알려진 투르크는 베일에 싸인, 중앙아시아 속 북한과도 같은 곳이었다. 외교 사절단을 불러놓고도 감시가 심했고 아무것도 못하게 했다. 세계 각국의 취재진들이 왔었는데도 사진도 못 찍고 인터뷰조차 못할 정도였다.

- 그럼에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현지에서 아할테케를 타고 활도 쐈다.
일생의 소원 중 하나가 한혈마로 알려진, 아할테케를 타는 것이다. 기록을 남기는 일이 중요하기에 사전에 활도 준비해갔다. 투르크에서는 아할테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고 감시가 심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민속 행사에 무사복을 입고 등장했다. 화제였다. 취재진, 현지인 누구라 할 것 없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처음엔 일본인이 아니냐고 했지만, 이내 설명하자 “까레이스키!”라며 엄지를 들여 보였다. 그냥 왔다면 아무것도 못하고 몰랐을 텐데 무사복의 힘이었다. 경계도 덜해질 수 있었다. 우리 한복 문화의 위력이 얼마나 멋지고 위대한지 새삼 느꼈다. 우리 것을 우리만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고구려 말(馬)루트’ 촬영진(연출 윤여창, 제작 굿픽처스)과 함께 국가 지정 목장을 찾아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말 타는 모습을 보여주자 현지인들이 “최고”라며 말을 내줬고 촬영할 수 있었다. ‘팔로미노’ 스타일의 말이었는데 활을 보자마자 도망갔다. 초원에 가서 교감하며 달랬고, 말의 땀을 활에 묻혀 냄새를 맡게 하니 활을 받아들였다. 저녁에 이르러서야 페르티안 사법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노하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아할테케 본고장에서 활을 쏜, 5천년 역사의 첫 장면으로 기록됐다. 주투르크대사관이 기념할 일이라며 반겼고 활을 대사관에 기증했다.

- 아할테케를 직접 보고 탄 소감은.
작은 서러브레드, 아랍 말 정도의 크기다. 성질은 급하고 예민했다. 행사 중 말이 뒤집어진 소동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2~3천 년 전에는 최고였을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특별한 경쟁력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투르크는 국가적으로 세계 역사에 등장하는 아할테케에 자부감이 있었다. 그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개발한다면 전통 문화 상품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할테케를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와 박람회를 열고 전통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를 하는 시도는 좋았지만, 반면 유럽식으로 점핑을 하고 경주를 위한 용도로 활용하는 ‘흉내내기’는 아쉬웠다.
자기 것으로 우선 문화를 만들어가야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올림픽에 나가 현대 승마 경기를 잘 못 하듯 외국인은 우리 것을 할 수 없다. 우리의 것을 살려야 하는데 자신감을 잃었고, 그 결과 문화는 유실되고 단절됐다. 아할테케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비슷한 투르크와 계속 교류하고 싶다. 정부와 뜻있는 지자체가 밀어준다면, 전설의 명마 아할테케를 문화 콘텐츠로 개발하는 데 앞장서고 싶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 속 북한이라고 할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무사복을 입고 행사에 참여하자 세계 각국 언론과 현지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리 것을 우리만 “아니다”라고 생각할 뿐이다(사진 제공= 고성규).

- ‘고구려 말 루트’ 다큐에 대해 설명해 달라.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 등장하는 사냥 모습은 바로 ‘파르티아 사법’이라고 알려진, 말을 달리며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기술과 동일하다. 무용총 수렵도를 10년간 연구했지만, 제대로 해석하는 학자를 찾을 수 없었다. 말은 호랑이 그림만 보고도 전진하지 못하고, 말을 타고 사슴을 쫓을 수도 없다. 수렵도에 등장하는 말이 과하마인지 또는 어떤 종인지도 궁금했다. 이런 의문들을 가지고 작년 겨울부터 ‘고구려 말 루트’ 다큐를 찍으며 직접 재현해보기로 한 것이다. 카메라 기술이 발전한 덕에 전 세계 최초로 진짜 사냥을 하는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10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기획하고 3년간 준비, KBS 1TV에서 지난해 10월 ‘세상 끝에서 나를 찾다’란 다큐 형식으로 몽골 유목 트레킹을 담아 방송했다.
한국말산업중앙회와 굿픽처스와 함께 시작한 ‘고구려 말 루트’ 다큐 2차 촬영지가 바로 투르크였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로 이룬 꿈이기도 하다.

- 방송 콘텐츠를 통해 말산업을 대중에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오늘날은 매스 미디어 시대다. 말산업을 알리는 중요한 창구다. 기마문화를 제대로 보존하고 알리고 싶다. 중국과 일본 어느 방송을 봐도 ‘유럽 말’이 나오는 경우는 없다. 영화나 사극, 드라마에도 말이 많이 등장하지만 말 전문 코디도 없고 연기자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고 출연한다. 어떤 말을 탈지, 어떻게 이동할지 등 방송에 적합한 마술 관련 감독도 없고 말 조련소도 없다.
한류 열풍을 타고 액션 배우들, 감독, 제작자들은 중국으로 가 있고 할리우드 자본은 중국 시장으로 들어가 기술자들을 숙련시키고 직업이 파생돼 일자리도 창출되고 있다. 경쟁력을 갖추고 노력해야 할 부분인데 우리가 놓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현대승마, 경마만 생각한다.
‘태양의 후예’가 방송된 후 군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확 달라지지 않았나. 로켓은 대중문화다. 탄두에 전통 문화를 장착하고 쏘아 올린다면 말 문화 역시 잘 알릴 수 있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예능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한도전 팀과 장기 프로젝트로 마술 공연을 기획, 각 전통 의상을 입히고 외국 대사들을 모시고 공연하는 일도 하고 싶다.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방송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시청자들은 말산업에 가까워지고, 우리 말 문화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KBS 1TV에서 지난해 10월 ‘세상 끝에서 나를 찾다’란 다큐 형식으로 몽골 유목 트레킹을 담아 방송했다. 그에게 ‘세상 끝’은 바로 우리 말 문화 보전이다. 우리 말산업계도 자기 정체성을 찾아야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사진 제공= 고성규).

- ‘고구려 말 루트’ 이후 방송 제작 일정은.
세계 말 문화 기행 차원에서 각 나라의 특별한 말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 대부분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직접 가볼 수 없기에 이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다큐를 만들고 싶다. 시즌2 성격으로 6월 말부터 한 달간 중앙아시아를 찾는다. 추가로 아시아 기마 문화의 자취가 남아 있는 헝가리와 터키 등지도 찾고 싶고, 미국과 동유럽 등을 계속 탐방하며 시즌3, 시즌4를 만들고 싶지만 예산이 없어 못 갈 듯싶다.
후배들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말 문화의 기록을 남기는 중요한 일이다.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말 문화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고민이 필요할 때, 매스 미디어를 이용하는 일은 중요하다. 국가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것’으로 밥이 되고 콘텐츠 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 바로 말산업의 목적이기도 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다음 주에 계속).

▲그에게는 평생의 동반자이자 든든한 동지가 있기에 견딜 수 있다. 바로 아내 윤미라 씨. 함께 우리 말 문화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고성규 대표는 “말똥을 치우는 아내를 보면 늘 미안하다. 남편으로서 할 말이 없다”고 했다(사진 제공= 고성규).

이용준 기자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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