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수요일 새벽 6시. 렛츠런파크 서울의 경주로에는 해당 주 출전 예정마 수십 두가 훈련을 위해 쏟아져 나왔다. 경주로 곳곳에 자리잡은 말들은 이내 몸풀기에 돌입했다.

별안간 내주로에서 낙마를 알리는 신호가 들려왔다. 방마된 말이 경주로를 날뛰었다. 간신히 사태가 수습될 즈음 내주로에서 또 한 번 낙마가 발생했다. 같은 장소였다. 이번에는 채 수습이 되기도 전에 또 다시 낙마사고가 일어났다. 역시나 내주로에서 생긴 일이었다. 그렇게 15일 수요일 새벽훈련이 이뤄지는 약 4시간 남짓 동안 무려 7번의 낙마사고가 내주로에서 발생했다. 자유로 귀신이 내주로 귀신으로 전직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밤부터 내리기 시작해 새벽훈련 중에도 부슬부슬 내린 비도 낙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안장이 미끄럽다보니 낙마의 확률이 올라가지만 왜 하필 내주로에서만 미끄러웠던 것일까. 원인은 비 때문만이 아니었다.


당일 현장의 사진을 보면 사고의 원인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내주로를 공격할 듯 진을 치고 늘어선 트럭과 포크레인들. 내주로 연쇄 낙마사고의 주범은 바로 말 테마파크 공사를 위해 투입된 중장비였다.


현재 렛츠런파크는 신개념 말 테마파크로 거듭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로 내 가족공원을 신개념 테마파크인 히픽월드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것. 한국마사회는 히픽월드 개장을 통해 “렛츠런파크=경마장”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마권발매를 통한 매출에만 의존하던 것에서 벗어나 사업다각화를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문제는 완공 기간이다. 현재 한국마사회가 발표한 히픽월드의 개장시기는 9월. 가족공원이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한 것은 불과 몇 달 되지 않았다. 즉, 시간이 몹시 촉박하다는 얘기다.

타이트한 일정에 맞춰 관계자들은 모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빠르게 건물 골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곳이 일반적인 놀이공원이 아닌 “말”이 뛰는 장소라는 점이다.

말은 전형적인 초식동물이다. 포식자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대를 거듭할 수록 빨라졌고, 잠조차도 편하게 누워서 잘 수 없게 됐다. 작은 동물이나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습성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본성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15일 가족공원에는 집채만한 중장비들이 내주로와 불과 3~4M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었다. 내주로 인코스에 바짝 붙어 훈련 중이던 말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 거대한 철조물에 기겁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 때문에 정정희 기수를 비롯해 훈련에 임했던 관리사들과 기수들이 맥없이 주로로 곤두박질 처져야 했다. 운 좋게도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만약 심하게 떨어져 다치는 1차 사고나, 떨어진 관계자 위로 뒤따라오던 말이 지나가는, 혹은 방마한 말이 사고를 당하는 등의 2차사고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별 걸로 트집잡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보다 2개월 가량 앞선 4월에는 훈련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공사가 시작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비록 대부분의 말들이 훈련을 종료한 9시 무렵이었으나 여전히 경주로에는 두 세 마리의 경주마가 훈련 중이었고 가족공원에는 트럭과 포크레인이 요란한 소리로 시동을 걸었다. 조교사와 안전관리사들이 거센 항의를 하고 나서야 공사가 중단됐다.

공사를 맡은 직원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촉박한 일정 탓에 한 시가 급한 상황에서 장비를 두는 것도, 공사를 시작하는 시간도 모두 제약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 공사 인부들에게 말이 얼마나 예민한 생물인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충분히 인지시키지 못한 한국마사회에 있을 것이다.



입사 초반, 수의사의 하루를 취재하기 위해 경주일 수의차에 탑승해 4코너에서 하차한 적이 있다. 당시 동행한 수의사는 차 문을 닫는 것부터 카메라 셔터까지 말이 놀랄 수 있는 행동에 대해 사전에 주의를 주었고, 사고로 인한 피해가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고, 당연한 일이구나 납득했다. 발주측의 모든 권고를 듣고도 바득바득 우기며 공사를 감행할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당장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다. 경주로는 산업재해의 위험에 높은 확률로 노출돼있는 곳이다. 안전장비를 추가해도 모자랄 판에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한국馬사회가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무고한 생명들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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