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마 95년 사상 처음으로 열린 국제대회, 제1회 코리아컵 경주 장면. 1위 ‘크리솔라이트’가 결승선에 도착하고 있지만, 뒤따르는 말들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 대표마 ‘트리플나인’이 3위를 했지만, 무려 16마신 차를 보여 세계무대와의 벽을 실감했다(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첫 국제대회로 열린 제1회 코리아컵에서 수준 격차 실감
근대 산업 구조의 한계 인식…경마=도박 넘어 산업화 기대
“강한 말 생산·육성”이라는 ‘이념 없는 국제화’ 탈피해야
경마산업 선(先) 태생 구조적 한계 극복 위한 ‘총체적 말산업’ 지원

2022년이면 한국경마가 100주년을 맞이한다. 2004년 파트3 진입 이후 경마 매출 세계 7위라는 ‘거대한 그러나 잠자는 공룡’이었던 한국경마는 국제화라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고 있다.

경마 혁신의 일환으로 올해 파트2 진입 성공, 경마매출 세계 7위, 두바이대회 출전으로 국제 레이팅 확보, 첫 삼관마 배출 등 괄목할 성과를 내며 2022년 파트1 진입과 한국 경주마 수출, 세계대회 재패 등을 기대했던 한국경마의 꿈은 9월 11일 열린 코리아컵에서 무참히 깨졌다.

95년 한국경마 역사상 최초로 열린 국제대회, 제1회 코리아컵과 코리아스프린트에서 한국은 세계와의 격차를 실감해야만 했다. 순수 국산 혈통을 자랑하고 가장 많은 수득상금을 기록한 ‘트리플나인’이 3위를 했지만, 우승마 ‘크리솔라이트’와 무려 16마신 차이를 보였다. “절반의 성공”, “가능성 확인”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경마의 본질인 ‘생산 환류’ 그리고 경마에 대한 여전한 규제와 편견이 있다는 사실을 봤을 때, 한국경마의 열악한 민낯을 그대로 내보인 대회였다.

수많은 경마 관계자들은 한국경마가 선진·국제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바이컵도 “먹어 보고”, 파트1으로 진입해 경마를 통한 전체 말산업이 발전해야 국가 미래 산업으로 정착된다며 생산·육성·경주 투입 등 경마산업 구조에 대한 각종 해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생산 면에서는 질 좋은 씨수말 도입과 민간 시장 지원, 육성과 관련해서는 후기 육성의 중요성 및 조련 방식의 스포츠 과학화, 경주 투입과 관련해서는 스포츠화, 국제경주 출전 통한 레이팅 확보, 경주 편성의 선진화, 상금 확대, 신규 팬 유입 등이 언급됐다. 경주마 중심의 정책으로 환원되는 정책과 규제 타파 차원에서는 △장외발매소 규제 해소 △국민마주제 도입 △관련 단체 통합 △등록제의 선진화 △마권 구매 상한선 폐지 △조세 제도 개선 △환급률 인상 △민간화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 그리고 온라인 발매 제도 부활 등이 지적됐다.

그러나 현재의 산업 구조 내에서 해법을 찾는다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사감위는 여전히 옥상옥 규제를 할 것이고 현재의 구조에서 경마=도박이라는 인식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체적 해결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경마산업은 말산업의 다른 분야들, 즉 승마산업과 연관 산업 등과 연계해야 그 근본 구조가 바뀐다는 것.

1922년을 시초로 꼽는 국내 경마산업의 구조는 일제 식민지 정책의 영향 아래 근대경마라는 산업 구조를 갖는다. 일본 경주마산업과 산지, 국제화 문제에 천착했던 고야마 료타(小山 良太) 교수는 일본의 군국주의화 식민지 정책 아래 한국의 말산업이 “군마 생산과 농업·운반용 말의 중요성 감소로 인해 경주마 산지로 전개”됐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인프라 낙후와 경마산업의 폐쇄성, 경주 체계의 미정착 등 경마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인 우리 경마산업의 역사적 배경을 짚고 있다.

특정 산업구조가 발전할 때 국제화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는 산업구조의 전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마의 경우 산지(산업 지역)에서 타 분야, 즉 경마를 제외한 말산업의 다른 분야들과 함께 일종의 ‘클로스터’를 구축, 지역경제 활성과 더불어 본래 산업의 진흥을 통해 산업구조의 전환을 맞게 된다.

경마산업은 생산·육성·경주·생산의 환류 사이클을 통해서 발전하기에 질 좋은 경주마 생산 정책이 가장 우선돼야 전체 경마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건 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국제화를 위해 시동을 건 우리 경마산업계는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제 상황의 지속적 침체와 더불어 말 가격 하락 및 수요 감소 등 전반적 위기에 처해 있다.

무엇보다 고야마 료타 교수는 ‘이념 없는 국제화’란 문제 역시 기존 경마산업 구조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즉 국제화를 향한 열망, 질 좋고 강한 경주마 생산에 대한 압박과 투자 등이 오히려 경주마 시장의 침체를 불러오는데 이는 ‘국산마 생산·장려’라는 명제와 부딪힌다. 료타 교수는 “경마 국제화는 피해갈 수 없는 길이나 국제화를 시행한 뒤 경마산업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시점이 결여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자면, 씨수·암말을 수입하는 건 국내 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 기반이 흔들리는 문제, 그 자마들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생산자 입장에서 구조 불안정성이 곧 수면 위로 오르게 된다는 것. 이를 가리켜 료타 교수는 “국제화를 통한 강한 말 생산에는 국내 생산 기반 강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지만, 근본적인 방책이 강구되어 있지 않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해결 방법은 말산업이 ‘6차산업’이라는 점에 주목하면 된다. 질적 성장만이 요구되는 경주마 생산과 판매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기에 이와 연계한 다양한 관련 산업이 특정 지역에 집적되고, 농어촌형 승마시설 등을 통해 관광 기능을 하며 수입이 증가한다면, 생산뿐 아니라 다면적인 기능을 통해 말산업의 긍정적 이미지와 다양한 말 문화 창출이 가능하다. 일종의 말산업특구인 셈. 이는 경주마 생산과 해당 지역사회의 발전을 동시에 구축하는 ‘산업구조의 전환’이다. 영국의 뉴마켓, 아일랜드의 더블린, 프랑스의 샹티, 미국의 켄터키 그리고 일본의 히다카 지역이 좋은 예다.

일제시대 이후 근대경마의 ‘낙후성’을 함께 경험했던 일본 역시 중앙·지방경마회를 통해 준국영으로 경마산업이 “기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 미국, 홍콩 등 경마선진국은 생산자와 조련사, 기수, 마주 등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자키클럽’ 측이 경마 시행의 주체다. 료타 교수에 따르면, 말이 친숙한 선진국은 말 문화 연장선에서 경마가 시행됐고 평가되면서 도박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에서 경마를 인지, 시행되고 있기에 도박이라는 인식이 거의 없다.

1970년대부터 세계 최고의 씨수·암말을 확보하며 혈통 개량에 집중했던 일본은 1981년 재팬컵을 창설하고 본격적인 국제 교류를 시작한다. 1990년 초반 국제화의 요구에 직면하게 되면서 레저 스포츠로서의 승마 보급과 더불어 재활승마, 직업 교육 확대 등 관광·레저·스포츠·교육 등의 분야가 말산업에 접목됐고, 국제대회에서 일본 자국 생산 말들의 활약에 힘입어 경(주)마산업이 조명받는다. 또한 선진국의 경우처럼 중앙정부의 지원은 물론 생산자단체와 협동조합 등의 탄생으로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1988년부터 국제경주를 시작한 홍콩의 경우 세계 랭킹 50두 중 10%의 경주마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자키클럽 중심의 경마 시행 및 마권 발행, 마주 중심의 경마문화 형성으로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경마 종주국인 영국은 상금이 적고 홍콩은 씨수·암말도, 생산도 없이 파트1 국가로 맹활약하고 있다. 즉 전체 경마산업 구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일정 기준이 미흡하더라도 경마산업이 전체 말산업과 연계돼 문화를 형성하고 사회 공헌과 지역사회 활성화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받는다면, 분명 발전하게 된다는 논리다.

경마를 산업으로서 파악할 때 생산 및 사육 등 1차산업, 시설 설비 및 건설·제조 등 2차산업, 중계 및 유통, 관람 등 3차산업, 정보 창출 및 판매 등 4차 산업이 총체적으로 엮인 대표적인 6차산업이라는 말을 상기하지 않아도, 경마산업이 말산업의 타 분야들과 연계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든지 많다.

강용식 전 서울마주협회장은 경마선진화의 5가지 조건으로 △양질의 경마 창출과 산업적 가치 제고를 위한 경마인의 자구 노력 △스타 경주마와 스타 기수 탄생 △과감한 투자와 지원 등 명마 생산을 위한 노력 △언론과 미디어를 통한 홍보로 경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산업적 측면 부각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 위한 규제 철폐와 정부의 인식 개선 및 정책 지원 등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해야 한다고 했다.

종합하자면, ‘경주마 중심의 정책’으로 가장 좋은 씨수말을 소유하는 경쟁 문제는 경마산업의 본질 중의 본질이다.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훈련 체계를 수립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국내에서도 최근 렛츠런팜 장수에서 경주마 후기 육성으로 능력을 배양, ‘파워블레이드’와 ‘석세스트로리’를 배출했다. 일본의 경우 경주마 생산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히다카 육성 목장에 대규모 조련 시설이 있고 주변에도 민간 전문 시설이 있어 체계적 육성이 이뤄지는 현실이다.

그러나 경주마의 생산과 육성, 경주 투입이라는 기존의 구조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산업구조의 전반적인 전환이 일어나도록 경마산업을 포함한 전체 말산업 구조가 진작되고, 민간이 동시에 참여할 때 ‘경마=도박’ 이미지는 달라지고 말 문화 창출로 대한민국 말산업은 세계 각국과 나란히 달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마 95년 사상 처음으로 열린 국제대회, 제1회 코리아컵 경주 장면. 1위 ‘크리솔라이트’가 결승선에 도착하고 있지만, 뒤따르는 말들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 대표마 ‘트리플나인’이 3위를 했지만, 무려 16마신 차를 보여 세계무대와의 벽을 실감했다(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경주마산업과 국제화 문제에 천착했던 고야마 료타(小山 良太) 교수는 『경주마 산업과 협동조합』(소순열·유찬주·김재욱 공역, 한국학술정보, 2013)에서 ‘이념 없는 국제화’를 지양하고 경주마 생산과 해당 지역사회의 발전을 동시에 구축하는 ‘산업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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