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말산업계도 각성해야

▲저 시상대에서 정유라 선수를 담았다면… 그 옆에서 정유라 선수를 응원하는 최순실 씨와 만났다면…. 2013년 4월 9일부터 14일까지 상주국제승마장에서 열린 제42회 KRA CUP 전국승마대회 현장에 기자도 있었다. 엿새 일정 내내 현장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장애물’ 경기가 있었던 13일. 취재를 마치고 당일 복귀해야만 했다.
지난했던 3개월여….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됐다. 창조경제, 국민통합의 모토는 234명 의원이 찬성, 가결돼 ‘탄핵 대박’이라는 ‘비정상의 정상화’로 마무리됐다.

해학과 풍자의 민족인 우리 국민은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이 국민대통합을 이뤄냈다고 꼬집었다.

기자도 최순실 씨, 정유라 선수에게 특별히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실 부끄러움이 먼저다. 2012년도부터 승마계를 취재하며 정윤회, 최순실을 ‘몰랐다’는 사실, 마장마술의 미래라던 정유연 선수 인터뷰 한 번 못했고 제대로 된 사진조차 별로 없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회한할 것 같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승마대회를 취재하면서 당시 엘리트 선수들도 만나고 가족도 만나 인터뷰도 했지만, 더 많은 사람을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었다.

취재력이 ‘딸렸던’ 것도, ‘촉’이 모자랐던 것도 아니었으니 더 억울하다. 승마대회는 늘 똑같았고, 귀족들의 대결장이어서 사실 별것은 없었다. 규모가 크다면 모를까, 그럴 시간에 다른 기사를 더 써야만 했고 외연 확장을 위해 다른 취재를 우선시해야 하는 뉴스 가치 판단에 충실했지만, 특종이 여기서부터 비롯될 줄이야….

2014년 공주승마 논란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낙인찍힌 지역승마협회장들과도 수차례 만났지만, 무언의 압력이 있자 결국 그들은 입을 닫았다. 추가 취재를 하고 싶었다. ‘뭔가 이상하다, 잘못됐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한승마협회는 침묵했고 관계자들은 자리를 회피했다.

악마 기자, 주진우가 이미 2010년부터 최순실을 해외까지 몰래 따라 다니며 취재하고 자료를 모았던 후담을 들을 때면 더 괴로웠다. 말산업 전문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언론들이 단독이라는 미명 아래 의혹을 제기했지만, 우리는 ‘의혹’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제기할 힘도 없지 않았나, 우리가 의혹을 제기해봤자 말산업계만 알음알음 알뿐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러려고 말산업 기자를 했나”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래도 최순실 씨, 정유라 선수가 참 고맙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이번 사태 덕분에 승마인들은 각성했다. “공중파가 와도 말 못한다”던 협회는 15일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할 예정이다. 내심, 2년 전부터 덩달아 ‘이상한 기류’가 흘렀던 한국마사회 관계자들도 증인으로 출석하기를 바라는 심정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다. 특검이 시작되고 정유라 선수가 소환된다면,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또 다른 두 가지 이유로도 고맙다. 말산업, 특히 승마계는 겨울철이 비시즌이라 뉴스거리가 대폭 줄어든다. 기사거리 찾기 힘든 이때,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수많은 단서와 자료를 제공했다. 그리고 말산업계가 핵폭탄을 맞았지만, 홍보 필요성은 역설됐고, 전문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기자부터 새삼 깨닫게 된 건 불행 중 다행.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많은 말산업계 종사자, 승마인들이 고마워할 점도 분명 있다. 도저히 벗어날 생각 없는 관행과 사익 추구가 유독 득세하는 말산업계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자정하지 않는다면, 화살은 이제 각 개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협회는 물론 전담 기관, 유관단체들 역시 내부 경쟁과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공모 사업 추진, 카르텔, 특정 업체 혜택, 관피아 문제 들에 대해 하루빨리 손 털지 않으면 철퇴를 맞을 것이다.

병신년을 지나 이제 정유년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도 촛불을 든 국민 앞에 말산업을 제대로 알릴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최순실 사태로 각성한 우리 취재·편집진의 ‘최선의 노력’은 말산업의 관행을 끊는 일로 초점을 맞출 것이다. 좋은 기사로도 많이 알리겠지만, 같은 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일이라며 더 눈감아주는 일도 없을 것이다. 상생은 결국 과거와의 단절부터 시작된다는 탄핵 정국, ‘순실의 시대’에 하고 싶은 일갈이다.

▲저 시상대에서 정유라 선수를 담았다면… 그 옆에서 정유라 선수를 응원하는 최순실 씨와 만났다면…. 2013년 4월 9일부터 14일까지 상주국제승마장에서 열린 제42회 KRA CUP 전국승마대회 현장에 기자도 있었다. 엿새 일정 내내 현장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장애물’ 경기가 있었던 13일. 취재를 마치고 당일 복귀해야만 했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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