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 학생은 삶에서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고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을 할 거라 했다. 말을 통해 마음의 문 닫은 많은 친구를 치료하는 재활승마지도사, 말이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산통과 같은 일로 죽는 말들이 없도록 관리해주는 말관리사가 꿈이라고 했다.
대중에게 진솔한 승마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국마사회는 올해 ‘유소년승마사례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공모 결과 최우수상부터 장려상까지 총 19편이 선정됐습니다. 은 19편을 연재합니다. 그 여덟 번째 순서로 장려상을 받은 김영원 학생(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의 ‘영원의 영원한 Horse Dream’을 소개합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와 함께 한국마사회 말산업진흥처에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편집자 주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에 진학해
처음으로 말이라는 친구를 만나다.
작은 우정을 나누고 말에게 위로 받으며 성장해
미래에 재활승마지도사와 말관리사가 되고 싶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따로 좋아하는 신체활동도 없고 수업시간에는 창문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오늘만 사는’ 중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오자 친구가 한 학교를 소개해 줬죠. 그 학교가 바로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입니다. 솔직히 처음엔 축산고에 대한 선입견도 약간 있었고 학교도 상당히 먼 곳에 있어서 “에이, 무슨”이라고 웃어넘겼고, 아니나 다를까 우리 학교에서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매일 오늘만 생각하던 제가 미래를 생각해 봤습니다. 사춘기라는 훈장을 달고 철없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했던 그날 밤까지의 제 모습 그대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면 ‘나의 미래에 희망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면서 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어느 책에선가 스쳐본 ‘위기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위기이며, 위기보다 더 큰 위기는 위기인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며 잠들었습니다.

내 인생에 큰 변화를 줘야겠다고 결심을 한 후 떠오른 것은 바로 ‘말’이었습니다. 매일 게임을 하는 용도로만 사용했던 컴퓨터로 말 관련 지식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내일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막바지에 제 삶에 변화를 줬고, 동물이라고는 강아지와 고양이밖에 상대해보지 못했던 제가 말이라는 큰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렇게 말과의 첫 대면은 역시 떨렸습니다. 그렇게 커다란 동물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라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멍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말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입학식이 끝나고 아이들끼리 서로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을 때 저는 혼자서 마사에 말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 말의 이름은 ‘파르만’. 웜블러드였고 우리 학교에서 가장 큰 말이기도 했습니다. 건초 한 무더기를 집어 파르만에게 내밀자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파르만이 저에게 다가와 건초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파르만에게 건초를 줬을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이 ‘저와 말의 첫 교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학교에서 말에 대해 배우고, 말들을 보살피면서 드디어 말을 탈 수 있게 됐습니다.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었지만 무서워서 떨리는 것인지 기대돼서 두근거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 위에 오른 저는 신세계를 발견한 듯했습니다. 말이라는 생명체 위에 올라타 보니 친구들은 작게 보이고, 다리를 쓰면 말이 앞으로 가는 것이, 손을 약간 당기면 말이 멈추는 것이 모두 새롭고 신기했습니다. 말을 좋아하고 말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 지금의 저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영원 학생은 말과 함께하기 위해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말을 좋아하고 말과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 지금의 김영원 학생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승마장으로 실습을 나가게 됐습니다. 레포필드 승마장은 말 타는 것도 배울 수 있고 재활승마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재활승마에 대해 잘 몰랐던 터라 새로운 분야를 배울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지원해 제일 먼저 실습을 나가게 됐습니다.

학교의 말들만 보다가 외부의 말을 보니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느낌이었습니다. 새로운 말들과 친해지고 새로운 승마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던 중, 실제로 재활승마 사이드워커가 돼서 몸이 아픈 아이들을 위해 말을 끌어주는 시간을 가지게 됐습니다. 저는 그때 느꼈습니다. 말은 올라타고 훈련을 시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말이라는 매개체 하나로 정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요.

많은 아이을 끌어줬는데 ‘민규’라는 아이는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지도사님이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던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함께 사이드워커를 하던 친구와 제가 계속 말을 걸고 다가가려 해도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던 민규는 침묵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서고 쉽게 친해지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민규’에게 만큼은 마음으로 다가가 친구가 돼주고 싶었습니다. 민규의 시선은 계속 그 아이가 타고 있던 노란 빛을 내는 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다가가기 어려운 주위 사람들이 아닌, 말은 할 수 없지만 감정으로 통하는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말과 이미 교감을 하는 듯했습니다.

조심스럽게 민규에게 다가가 “이 말의 이름은 망고야”라고 다시 한번 말을 걸어봤습니다. 그러자 민규가 제 마음을 알아준 것인지 “망고……”라고 수줍지만 조용하게 대답을 해줬습니다. 저는 그렇게 굳게 마음이 닫혀있던 민규가 말 타고, 말을 통해 마음을 조금씩 말을 열어가는 것을 보며 감동했습니다. 말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기도, 사람을 위로하기도,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새롭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계속 말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그동안 겪었던 말과 관련된 사건들을 계속 민규에게 이야기해줬고, 민규는 저에게 가끔 대답도 하고 간단한 질문도 해줬습니다. 저는 ‘교감’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그날 저는 민규와 교감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수업 막바지에 저에게 보여줬던 민규의 미소는 지금까지도 저를 기분 좋게 만듭니다.

레포필드의 실습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저에게 들려온 소식은 그동안 갈고 닦은 말타기 실력을 부모님께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들 앞에서 뭔가 뽐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성격인 저도, 그저 무뚝뚝한 아들이어서 항상 죄송했던 부모님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혼자가 아닌 말과 함께 나서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다이아킹’이라는 말과 함께 간단한 코스이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장애물 코스를 연습했습니다.

기대하던 시간이 다가오자 두근거림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100여 명 정도가 지금 나를, 내가 말 타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주먹이 꽉 쥐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잠시, 사람들 앞에 나서자 ‘다이아킹’과 함께 하는 생각으로 침착하게 장애물을 넘었습니다. 다이아킹과 함께 하지 않았으면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저에게 그 시간은 괴로웠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함께였기 때문에 그 시간을 이겨냈고, 부모님께 대견한 아들이 될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이아킹’과 함께 사람들 앞에서 장애물 코스를 선보였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학생이었지만 그 시간을 이겨내고 부모님께 대견한 아들이 될 수 있어 고마웠다.

말과 함께하는 시간은 모두가 행복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이기 때문에 눈을 보고, 체온을 느끼면서 소통하죠. 그런데 말은 산통(복통)을 자주 일으킵니다. 말이 죽는 이유 중 다수가 산통일 정도로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우리 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금포리안’이라는 말 한 마리가 산통에 걸렸는데 친구가 아파서 응급실을 실려 간 것처럼 초조해졌습니다. 금포리안을 탈 때마다 몸이 가볍고 느낌이 좋아서 애정을 듬뿍 쏟았던 말이었는데 산통이 쉽게 낫지 않고 계속해서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금포리안이 누워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나의 소중한 친구가 아파 누워있었으니까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한 시간마다 나와서 말의 상태를 확인해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것밖에 해줄 수 없어 미안했죠. 말의 상태를 확인하러 마사로 가는 길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큰일을 당하지는 않았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을 자주 겪을 것이고, 처음이라 더 힘든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위로 아닌 위로를 받고도 불안한 마음은 편안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저 제 옆에 있어 줄 것 같았던 ‘금포리안’을 보내줬습니다. 앞으로 말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말의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조금 더 신경 써서 관리해주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그때와 같은 아픔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제 손이 닿는 모든 말들을 애정을 담아 더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3학년이 돼 남의 일 같기만 했던 취업을 걱정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철이 없던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무작정 말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말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지금은 구체적인 저의 미래가 그려집니다.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저의 미래는 지난 2년간 저에게 있었던 일들이 모여 하나의 꿈으로 뭉쳐지는 듯합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기 힘들어하던 순수한 ‘민규’와 저의 친구였던 ‘금포리안’을 보내줬던 일들이 저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준 것이죠.

저에게 직업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라 삶에서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고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통해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 닫은 많은 친구를 치료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정해진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산통과 같은 다른 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말들이 없도록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돼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옆에 머무르면서 그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보살펴주는 말관리사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재활승마지도사 및 말관리사가 돼 또 다른 ‘민규’를 만나며 내 삶의 이유를 찾고, 또 다른 ‘금포리안’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보람을 느끼겠죠? 그리고 언젠가는 ‘아무 생각 없이 놀기에 바빴던 어린아이가 말을 만나고서 철이 들고, 꿈을 가졌었지’라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면서 미소 짓고 있듯이 말입니다.


▲김영원 학생은 삶에서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고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을 할 거라 했다. 말을 통해 마음의 문 닫은 많은 친구를 치료하는 재활승마지도사, 말이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산통과 같은 일로 죽는 말들이 없도록 관리해주는 말관리사가 꿈이라고 했다.

교정·교열= 박수민 기자 horse_zzang@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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