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도, 결단도 어렵다. 그래도 한발 앞서 ‘무한도전’

▲용산 문화공감센터 폐쇄 협약식 때도 그는 현장을 찾았다. 사업장 폐쇄는 정말 어려운 결단이었다고 했다. 그의 임기, 2년 3개월 남았다. 정체된 말산업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에 찍힐 때마다 짓던 예의 그 시크하면서도 경직된 표정이 이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날 그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현장에서 본 그는 분명 달랐다. ‘쑥스럽거나 미안해 어색하다’는, 겸연쩍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고민할 때면 모으는 두 손, 자리에 앉았지만 평소와 달리 축 처진 어깨도 그랬다.

이양호 한국마사회장의 이야기다. ‘낙하산 인사’, ‘황교안 전 권한대행 첫 지명 공공기관장’이라는 오명과 함께 그는 지난해 말,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으로 쑥대밭이 된 말산업계, 한국마사회 수장을 맡았다.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힘을 모아 난제를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취임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독이 든 성배’를 마신 첫 행보 자체부터 연임도 거부하고 도주(?)한 전임 회장과 달랐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부임을 공식적으로 반대한 유관단체장들과 최종 심사에 오른 내부 승진 후보를 껴안으며 상생의 리더십을 보였다는 것. ‘사심’이 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

낯설었다. 농촌진흥청장 재임 당시 이력과 행보를 잘 알았기에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농업·농촌계에 정통한 행정가 출신으로 기존 ‘낙하산’들과 분명 출발부터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말산업계는 물론 관련 유관단체, 협회의 평가도 좋았다. 달라도 다르다는 평가. 관련 사안을 직접 하나하나 챙기면서 빠른 지시를 내렸고, 현장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 반갑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이해관계가 서로 첨예하게 맞물린 산업계이기에 반대편에서는 볼멘소리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전임 때와는 달리 ‘겁박’이 아닌 우선순위에 따른 업무 처리, 소통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순조롭게 그리고 지혜롭게 달려왔다.

제삼자 입장에서 그리고 수 없이 사람을 겪는 입장에서 아무리 봐도 그에게는 진심이 묻어났다. 필자의 착각이 아니다. 좋은 사람 곁에는 수많은 그리고 오래된 친구가 있다. 농민들, 농업계 관계자들, 현장가들, 수많은 페친, 카친들과 대화하는 흔적을 보면 이해관계를 떠나 그저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그의 자산이다.

이전 한국마사회장들과 다른 점은 또 있다. 혁신이니 소통이니 누구나 한다고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언론에 고정 칼럼을 쓰면서 공부하고, 기자들과 소통하는 장을 열고, 체통 벗어던지고 말에 올라타는 결단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지난 9개월간 그는 말 아닌 행동으로 수장 역할을 다했고, 부드럽고 소통하는 리더십의 진면을 보였다. 보여주기식 ‘전시’ 행정일 거라고? 이전 회장들은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5개월 전인 취임 직후부터 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무한도전’, ‘우문현답’으로 대표되는 협업을 강조하고 ‘적폐 청산’에 자발적으로 앞장서는 모습에서는 현 정부의 향기가 묻어났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역시나 마사회 내부에서 그리고 외부에서도 그의 임기가 곧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난무했다. 기정사실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와 코드 맞추기다, 눈치 보기다, 지방 시장 출마를 위한 포석이다 뭐다 했다. “낙하산 논란 기관장의 태도 변화”, “새 정부 욕보이는 행태”라는 둥 역시나 마사회 때리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용산 센터 폐쇄 결정으로 등 돌린 말산업계, 비난 일색인 언론…. 모든 문제가 그의 부임 탓으로 귀결됐다. 사심 없는 워커홀릭이 이렇게도 단박에 왜곡되고 몰리는가 싶다.

취임 초부터 적폐 청산과 대규모 사업 정리를 선포한 이양호 회장은 플랜대로 현안에 대처했다. 그 와중에 말관리사 문제와 문화공감센터, 위니월드, 직접 고용 등 해묵은 핵심 이슈가 연달아 터졌다. 반대 측이 ‘화상경마장 아웃’, ‘우리가 승리했다’는 손팻말을 들고 단체 행동하는 현장까지 찾아서는 죄인 된 심정으로 그 자리에서 인사하고,수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는 발언을 할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전임 회장이 망쳐놓은 산업 현장을 수습하기만 한 그는 어떤 심정일까.

모르긴 몰라도 최종 결정자 입장에서 가장 괴로웠을 것이다. 정권 눈치 보기나 후차를 위한 보신(保身)이 아닌, 젊은 관리사의 죽음을 진정 아파했을 것이다. 왜 우리 먹거리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길거리에 나앉아야만 했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무엇이 진정 말산업 발전을 위한 일인지 잠 못 자며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외롭게 결단했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정치적’이다. 분단국가로 이념에 사로잡힌 대한민국에서 유독 ‘정치’의 의미는 협소적이지만, 공인도 정치적이다. 아니, 정치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대상의 업무와 성과를 ‘정치’라는 프레임으로 평가하는 건 일종의 논리 오류다.

지금 우리에게, 쉽게 등지고 쉽게 다른 말 하는 말산업계 종사자들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무얼까. 그의 임기, 2년 3개월 남았다. 우리는 그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지난 9개월간 그는 잘못된, 사회적으로 지탄받은 사업을 정리하는 데 공을 들였다. 아직도 과도기인 말산업, 미래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새로운 사업들을 추진하는 모습들을 보고 싶다. 내년도 두바이컵을 준비하고 있을 ‘트리플나인’과 또 다른 국산 경주마들의 꿈이 그곳에서 펼쳐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산업이 진정 우리 농업농촌의 대안 산업이라면, 이를 접목할 적임자는 젊고 소통하는 리더십, 실천하는 행동가의 행보를 보인 이…. 바로 ‘그(The One)’가 아닐까.


사족 – 네이버·카카오 제휴 이후 더 많은 대중이 기사를 보고 있다. 광고 받고 쓰는 기사 아니냐고 오해할까 싶다. 이니 당연히 한국마사회 지원받고 기사 쓰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이제 힘을 얻었고, 타 언론처럼 비판도 해야 기자 정신 아니냐는 주장도 그럴듯하다. 구차하고, 사족이지만 쓴다. 마사회든 어디든 비판 기사라면 필자는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양호 한국마사회장에 대해서는 아직 공개적으로 비판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광고? 다른 곳 그저 다 퍼줘도 우리는 정론을 지키며 “그냥 썼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받은 적 없다. 기대도 안 한다.

▲사진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팔에 낀 토시는 전시 행정과 ‘코드’가 다르다. 농촌진흥청장 재임 때부터 그는 늘 그랬다. 현장을 찾는 진솔한 최고경영자의 행보는 현장가들, 기자들이 더 잘 알아보기 마련이다.
▲용산 문화공감센터 폐쇄 협약식 때도 그는 현장을 찾았다. 사업장 폐쇄는 정말 어려운 결단이었다고 했다. 그의 임기, 2년 3개월 남았다. 정체된 말산업 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horsebiz.co.kr
-Copyrights ⓒ말산업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