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문화 탐방 - 지명편

말 관련 지명, 다양한 형태와 기원에서 유래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마산’ 지명은 전국에 49개나
질 좋은 말을 길러지는 섬 완도 ‘질마도’…말 활용도에 따라서도 이름 붙어져
말 문화를 통한 말산업 보급에 주목할 때

가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다. 과거 중국 북방지역에서는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이 시기에 맞춰 기동력을 앞세운 흉노족이 쳐들어온 시기였다. 흉노의 침략을 푸념하듯 쓰이던 이 말은 한편으로는 정말 야외활동 좋은 계절, 시기를 의미하기도 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말산업계에서 말 문화 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오는 23일부터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열리는 ‘렛츠런 말 문화 축제’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열릴 예정인 각종 승마대회 등 말들로 가득한 가을이 될 예정이다.

말과 함께하는 가을을 맞아 말 문화 특집 2편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국내 말과 관련된 지명편이다. 말은 과거 우리 조상들과 함께 오랜 역사와 생활을 함께 하며 지명에도 말 이름이 붙을 정도로 인연을 맺어왔다. 국토의 70%가량이 산지인 우리 땅은 산맥과 지형에도 말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말과 관련된 지명은 다양한 형태와 기원에서 생겨났다. 지형이나 산맥의 모양새가 말과 비슷한 경우를 비롯해 이동수단이었던 말을 활용한 형태와 용도에 따라서 붙여진 지명, ‘천마’, ‘용마’ 등 상상의 동물 내지 하늘을 나는 천상의 동물로 신성시해서 붙인 지명까지 다양하다.

말의 모습과 흡사해 이름 붙여진 지명은 말의 신체부위, 말의 다양한 행태 모습에 따라 또한 나뉜다. 말의 신체 일부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대표적인 지명은 전북 진안에 있는 ‘마이산’. 마치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지명이다. 정발산에서 내려다 봤을 떼 마치 말의 머리를 닮아 이름 붙여진 고양시의 ‘마두’, 말의 아가리와 같이 생겼다고 한 공주시의 ‘말구리’ 마을 등등 전국 각지에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마산’이란 지명은 전국에 49개나 됐다. 대부분 말을 닮은 산이라고 해서 ‘마산’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고, 이외에도 마을에서 용마가 났다거나 준마 형상의 묘가 있는 산이 있는 경우, 마을의 모습이 승천하는 말의 모양인 경우, 마을이 생겨나기 전 말을 먹이던 곳이라 마산이라고 이름을 붙인 경우가 있었다.


과거 유용한 이동수단으로 활용된 말을 어떠한 용도로 썼는지에 따라서 유래한 지명도 많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서울 서초구 양재역사거리 일대를 가리키는 ‘말죽거리’가 있다. 조선시대 여행자들이 타고 온 말에게 죽을 끓여 먹였다는 데서 유래가 됐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졌다. 더불어,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인해 공주로 피난 시에 말 위에서 죽을 마셨다고 해 이름 붙여졌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현재 서울 서초구 양재역 일대는 조선시대 공무로 여행하는 이들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는 장소였고, 근처에 주막도 있어 여행자들은 타고 온 말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고 자신도 주막에서 여장을 풀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현재 서울 은평구에 있는 ‘구파발’은 조선 중기 공문서를 전달하기 위한 파발역이 있던 곳으로 말과 관련됐다. 임진왜란 이후 봉수제가 의미를 잃으면서 그 자리를 대신한 게 파발제도였고, 25리마다 말을 교대해가며 갈 수 있도록 참과 파발막을 설치했다. ‘구파발’은 서울 서부권의 대표적인 파발막이 있던 장소였다.

말을 기르던 장소로 이름 붙여진 지명도 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가축을 잡아서 파는 축산물 시장으로 변모했지만 조선 초기에는 말을 기르던 말 목장이 있던 지역이었다. 당시 말 목장은 사대문 밖에 위치하면서 한강과 말에게 풀을 먹일 수 있는 초지가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1678년에 전국에 분포하는 목장을 그린 필사본 채색지도첩으로 보물 제1595-1호로 지정돼 있다. 첫 장에는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 두 번째 장에는 도군별 목장상황을 담은 회화식 지도, 세 번째 장에는 이 지도첩의 제작 동기와 시기를 알려주는 허목(許穆)의 기문(記文)이 실려 있다.

마장동에서 조금 더 동쪽에 위치한 화양동도 말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화양동의 옛 이름은 모진동으로 조선시대 이곳에도 말 목장이 있었다. 현재 건국대학교 후문 근처에서 방목해 기르던 말이 실족해 수렁에 빠져 죽으면 마을 여인들이 수렁 위에 널빤지를 놓고 들어가 죽은 말을 건져내 그 고기를 나눠 먹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인근 마을 주민들이 모진 여인들이 사는 마을이라 해 ‘모진동’이라 이름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제주에서 온 말 중 암컷은 광진구 자양동에서, 수컷은 마장동의 말 목장에서 길렀다고 전해진다.

수도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말과 관련된 지명들이 많이 나타난다. 말은 과거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된 만큼 장거리를 이동할 경우 지친 말을 교환하거나 쉬어가야 했고 이를 위한 장소들이 지명에 깃든 경우다. 역이 있던 지역이라 이름 붙여진 경북 상주시 모소면 삼포리의 ‘역마루’,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관산리의 ‘역말’ 등이 있다.

말을 갈아타던 역이 아니더라도 말을 훈련하거나 키우는 장소에서 유래된 지명도 있다. 말이 훈련하던 곳이라 해 ‘마치’ 또는 ‘말치’라고 불린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망능리의 마을이 있으며, 이 섬에서 말을 기르면 말을 잘 듣는 질이 좋은 말이 된다 해 이름 붙여진 전남 완도군의 ‘질마도’도 있다.

‘천마산’ ‘용마산’ 등 말을 상상의 동물 내지 천상의 동물로 묘사해 이름 붙인 지명도 다수 보인다. 말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거나 신선이 말을 타고 내려와 ‘천마’ 또는 ‘천마산’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 많이 드러났다. 환상종으로 용과 말 사이에서 태어난 말을 지칭하는 ‘용마’를 이용한 지명도 상당히 발견된다. 우물에서 용마가 발견됐다는 이야기부터 산이 용마의 형상을 갖고 있다는 경우까지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모티브를 갖는 설화들이 함께 전해져 내려온다.

말을 하늘을 나는 천상의 동물로 묘사해 지명에 이름 붙인 것을 토대로 볼 때 우리 조상들이 말을 얼마나 신성한 동물로 여겼는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천마산’ ‘용마산’ 등 말을 상상의 동물 내지 천상의 동물로 묘사해 이름 붙인 지명도 많이 나타난다. 전북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천마봉’(사진 출처= 한국관광공사).

전국적으로 말과 관련된 지명이 가장 많은 곳은 전라남도로 나타났다. 전남 장성군 남면 녹진리의 `마산` 마을 등 142개의 지명이 확인됐다. 전남에 말 관련 지명이 많이 분포하는 것은 예부터 가축 관리가 편리해 말목장이 많이 설치됐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의 지형이 말발굽을 닮은 나주시 성북동의 ‘마제촌’, 달리는 말의 형세를 한 담양군 월산면의 ‘도마산(跳馬山)’,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무안군 무안읍의 ‘하마거리’, 말 걸음을 시켰다는 보성군 노동면 ‘말고리재’ 등이 대표적인 지명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지명에서도 말과 우리 민족이 얼마나 친밀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이 ‘말’에 대해 느끼는 점은 여전히 생소하고 다소 멀다. 말산업육성법이 제정되고 점차 말에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모으던 가운데 ‘말’과 관련해 몇 차례의 사건들이 터지면서 한순간에 쌓아놓은 이미지는 다시 한번 더 무너지는 모습도 보였다. 이번 기회에 말 문화를 통한 말산업의 융성을 생각해봐도 좋을 듯싶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 문화를 기반으로 공감을 얻는다면 엄연한 산업으로 오롯이 설 수 있고, 문화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지속적인 발전도 도모해볼 수 있다. 말 문화에 대한 말산업 정책 입안자들의 관심이 촉구되는 시점이다.

▲말과 함께하는 가을을 맞아 지난 에 이어 을 준비했다. 말은 과거 우리 조상들과 함께 오랜 역사와 생활을 함께하며 지명에도 말 이름이 붙을 정도로 인연을 맺어왔다. 국토의 70%가량이 산지인 우리 땅은 산맥과 지형에도 말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나타난다.


황인성 기자 gomtiger@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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