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사행산업 굴레, 노예근성 벗어나 국민 레저 스포츠로

부끄러운 말이지만,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칼럼을 쓰기에 기자는 한참 일천하다. 무엇이 그리 한가 물으면 경마의 ‘경’에는 무지하고 말산업의 ‘말(馬)’도 모르며 최근엔 현장과 동떨어졌으니 괴리한 삼박자를 고루 갖췄다고 할까. 평균 경력 20년 이상인 말산업 종사자들의 이력에도 한참 못 미치니 그저 내세울 건 글발이요, 주워들은 정보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장점은 있다. 말산업을 향한 국민의 시선과 요구,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 그래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영호남 가르지 않고 댓글 달 듯 쓸 수 있다.

이토록 무지해도 ‘트리플나인’이라는 말(馬,言)은 안다. 숫자로 풀어쓰면 ‘999’, 경마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일명 이 뜻이 ‘대박’을 의미한다는 걸 알 것이다. 물론 지난해 세계적 대회인 두바이월드컵 경마대회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올해는 대통령배 경마대회 4연패에 이어 그랑프리까지 석권하며 대한민국 국산마의 자존심을 세운 ‘트리플나인(6세, 수, 한국, 최병부 마주, 김영관 조교사)’을 빼놓을 수 없다.

2012년 4월 7일 아빠 ‘엑톤파크’와 엄마 ‘어리틀포크’ 사이에서 태어나 올해로 6세인 ‘트리플나인’이 이뤄낸 대박 성과는 한량없다. 1억5천만 원에 낙찰된 뒤 2014년 11월 30일 데뷔한 이래 31경기를 뛰어서 우승만 15차례, 준우승 11차례, 3위 3차례 등 48.4%의 승률을 기록했다. 국내 레이팅은 130으로 국산마 가운데 최고인데 가히 경마계의 호날두, 메시 급이다. 연도대표마, 최우수 국내산마로 수차례 선정됐으니 발롱도르 부럽지 않다. 그가 벌어들인 총상금만 42억4,515만 원이니 그야말로 대박이다.

사실 ‘트리플나인’이란 이름은 ‘대박’과는 상관없었다. 최병부 마주는 과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야구를 좋아하는데 류현진 선수가 선전하는 걸 보고 9를 더 추가해 ‘999’, ‘트리플나인’으로 지었다”고 했다. 류현진 선수보다 더 잘 활약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트리플나인’의 활약은 경마팬들의 성원과 마방 식구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고도 늘 강조했다.

‘트리플나인’은 최병부 마주에게 전환점이었다. 2009년 마주 데뷔 후 몇 년간 성적이 신통치 않아 몸 고생 마음고생해 마주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동물 사랑이 각별했고, 말을 자식처럼 사랑한 그에게 결국 ‘트리플나인’은 주요 경마대회 우승 타이틀은 물론 두바이월드컵 결승전 진출, 대통령배 4연패 그리고 그랑프리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얼마 전 부산에서 직접 만난 최병부 마주는 “트리플나인 덕분에 유명인이 됐다”라며 소년처럼 밝게 웃었다. 무엇보다 “경마팬들 덕분”이라며 “그저 행복하다”고 했다. 7월까지도 건강이 안 좋아 시술까지 했고 휴양도 보내며 마지막 영광을 위해 준비도 철저히 했다고. 그럼에도 최병부 마주는 “트리플나인이 다치면 큰일 나니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했다. 10월 7일 연습 삼아 뛴 KRA컵클래식에서 ‘청담도끼’에 밀렸지만, 이때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후문. 남들은 6세라는 나이를 우려하며 은퇴까지 운운했지만, 대통령배와 그랑프리를 앞두고 이미 우승을 장담했다고 했다. 지금 그는 장수에서 휴양 중이고 은퇴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도 밝혔다.

역사는 95년이라지만 실제 그 수준이 아직 미천한 한국경마계에는 나름 명마들이 있었다. 하지만 ‘트리플나인’만큼 많은 상징을 담은 말이 또 있을까. ‘메니피’로 일원화된 국내 씨수말 시장은 이미 변화하기 시작됐다. 비싼 씨수말보다 ‘트리플나인’과 같은 분명한 성과가 있는 말을 정책적으로 키울 수도 있다는 단초도 제공했다. 후기 육성과 조련도 중요하지만, 마주의 관심과 노력 그리고 마방 식구들의 호흡 일치가 국산마 생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일깨웠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내년 두바이월드컵에 출전할 4마리 후배 경주마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준 건 덤.

무엇보다 소위 도박 중독자로 낙인찍힌 경마팬의 가치와 고마움을 먼저 그리고 우선적으로 표현하는 마주가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팬을 존중하지 않는 스포츠는 없다. ‘트리플나인’의 존재 이유는 경마팬의, 경마팬에 의한, 경마팬을 위한 상징이기에 전설이 됐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처럼 우리 경마산업도 도박, 사행산업이라는 굴레,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레저 스포츠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말산업저널 이용준 기자

※말산업 칼럼 필진으로 <말산업저널> 이용준 기자가 합류합니다. 현장 중심의 말과 사람 이야기도 다루고, 말산업 전문 언론의 자화상을 담아 현장가 및 종사자들에게 통찰과 아이디어를 던집니다. 특히 국민이 승마와 경마, 말산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문화, 예술과 접목한 쉽고 재미있는 칼럼으로 독자들께도 다가가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말산업 정책이 근본적으로 ‘아래로부터’ 수립될 수 있도록 이슈 파이팅을 전개합니다. 제보 및 문의(cromlee21@krj.co.kr)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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