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기레기 활개 치는 시대, 언론 저널리즘을 다시 생각하며

최근 우리는 가장 영향력 있고 신뢰도 높은 언론인의 이면을 생생히 보고 있다. ‘사실, 공정, 균형, 품위’를 기치로 정의의 편에서 진실을 말하고 현장을 귀담아듣는, 소통과 진보의 상징인 손석희 JTBC 대표이사와 관련한 ‘풍문’들이다. 사고, 폭행, 배임, 여성 동승자 유무 등 평소 그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사건들이다.

‘듣보잡’ 언론 기관 소속으로 필자가 칼럼을 쓴다고 알겠느냐마는, 대학원 논문 끝내고 스카우트돼 기자로 밥벌이 시작할 때 MBC 보도국과 인연이 있었다. 기사 참 잘 쓴다고 덕담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손석희 ‘옹’ -죄송한 표현이지만, 우리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은 진보 세력에게 있어 애증의 대상이었다. 아니 일종의 희화한 대상이라 하는 게 맞겠다. 진보치고는 논리만 있었지 밋밋했고, 투쟁꾼답지 않게 품격 있고 점잖았다.

게다가 JTBC가 개국하자 돌연 교수직도 벗고 보도 담당 사장으로 갔다. 패배주의에 젖은 ‘입’진보가 싫어 떠난 필자가 하이데거 용어를 빌리자면, 사회 밑바닥으로 홀로 ‘기투’했을 때와 비슷한 시기였다. 경악했다. 충격이었다. 우리의 적인 거대 기업, 지라시가 출자한 종편으로 가다니. 결국엔 그랬구나, 그에게 진보는, 운동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며 실망했다.

그 이후 잘 알다시피, ‘손석희’라는 간판 하나로 JTBC는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지상파도 하지 못한 역사를 창출했다. 우리의 투정을 알았던 걸까. 모기업을 비판했고, 최순실 태블릿 PC를 공개하면서 소문과 의혹에 그쳤던 비선 실세를 드러내 촛불 정국의 횃불을 쏘았으며, 이견은 많지만 우리 사회에 미투(MeToo) 운동을 안착했다. 지상파 타기 힘들었던 교계 성 문제, 비리 문제도 수차례 뉴스화하면서 정화 운동에 힘을 보탰다. ‘뉴스데스크’에서는 좀처럼 시도하지 않았던, 내러티브와 그래픽 그리고 역사와 철학이 담긴 ‘보는 뉴스’는 큰 울림을 남겼다. SNS와 연계한 소셜라이브는 파격이었다.

젊은 어느 날, 정부에 항의하는 ‘공정 방송’ 리본을 숨기고 뉴스를 진행했었던, 수치스러웠던 과거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멀리서 그를 지켜본 우리와 달리, 가까이서 취재하고 만났다는 ‘듣보잡’ 후배들, 프리랜서가 사과를 요구하고 불륜 의혹을 제기하고 고소까지 했다. 조사를 받아야 밝혀지겠지만, 조직 세력이 있든 없든 그들의 목적은 이미 달성된 것 아닐까. 바로 ‘흔들기’다. 제왕 흠집 내기. 약점을 잡아 망신을 톡톡히 주는 것도 모자라 맥락을 무시한 채 과거 에세이를 뒤져 도벽이 있었다느니 한다. 언론 기본 윤리를 강조하던 중 나온,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들을 열거하며 언론인이 아니라고 한다. 점잖게 위로하는 정치인 출신 유튜버도 있고, 피눈물 운운하는 이도 있다.

고소한 이의 변은 더 애잔하다. “스튜디오에서는 당신이 제왕일지 몰라도 현장에선 후배 취재기자들의 예봉을 당해낼 수 없다”며, 진보의 가치가 뉴스 앵커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인데 예전 우리의 투정과 별반 다를 게 없으니 답답하다. 시대는 달라졌고, 그의 정체성을 재확인한 듣보잡도 다 아는 사실인데 말이다.

펜은 칼보다 무섭다. 누구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걸 하면 결국 표적이 된다. 요즘 말로 ‘좌표를 찍는’ 것이다. 그를 이해한다는 진보조차, 후배들조차 그에게 ‘완전’이라는 프레임을 걸고 너도 당해봐라, 라는 식으로 욕보이고 있다. 반면 진짜 아는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만 “손석희 사장은 절대로 뉴스룸을 관두면 안 된다”며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기자의 제일 덕목은 비판 정신이다. 팩트, 객관성은 사실 ‘좌우’ 이념과 관계없다. 공정성도 마찬가지다. 현장에 있다고 사실을 쓰지 않으며, 젊음이 진보를 담보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글 쓰면서 사회 공동체보다 자신이 우선인 기자들이 넘쳐나는 기레기가 일상인 시대다. 상황이 이럴진대 앵커 브리핑이니 팩트 체크니 하며 기자 정신, 언론 윤리를 한평생 지키고자 애써온 그 사람이 무너지기를 얼마나 많은 저항 세력이 바랐을까.

감히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필자도 작년 말 고소당했다. 이전 우리에게 고소, 고발은 일상이었기에 흔들릴 여유도 없지만, 상황이 괘씸했다. 핵심 취재처 내 적폐 세력들은 상황을 모르는 어려운 사람들을 앞세워 작전을 펼쳤고, 저가 정의인양 척하는 게으른 프리랜서는 농단에 놀아나는 척, 모르는 척 일삼으며 동조했다. 지금쯤 손석희 ‘옹’이 생각할지 모르는, ‘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란 물음은 아이러니하게 지금의 손석희 대표가 “긴 싸움 시작할 것 같아…흔들리지 않겠다”, “음해가 식은 죽 먹기 된 세상, 어떠한 합의나 선처도 없다”고 밝힌 답변으로 바뀌었다.

서론이 길었다. 네이버·카카오 뉴스 검색 제휴 언론 기관, <말산업저널>을 발행하는 레이싱미디어가 ‘말산업저널(MediaPia, 대표 김문영)’로 사명을 변경하고 취재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사실과 진실을 전달하고, 전문 산업 발전을 선도하고, 정의로운 사회 건설로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시작이 좋다. CMS와 서버를 제공하는 전문 홈페이지 제작 솔루션 업체를 통해 뉴스 카테고리를 변경하는 등 웹과 앱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문 필진과 외부 기자 모집도 순항이다. 그간 법정 다툼도 얼추 마무리됐다. 점잖기만 한 손석희 대표가 후배 프리랜서를 명예훼손 및 공갈·협박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듯, 필자도 비판과 의혹 제기를 넘어 선릉과 강북을 넘나들며, 무고죄로 관련자들을 엮어 반격할 준비를 끝마쳤다.

긴 서론에, 사생활에, 감정까지…가짜 뉴스, 아니 가짜 칼럼이 틀림없다. 일기도 이렇게 안 쓴다고 뭇매 맞을 듯싶다. 그래도 가장 재미있는 글은 위인 자서전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며, 취재 뒷이야기며 기자의 공적인 푸념이다. 언론도 관행을 깨고, 사실에 근거한 객관 운운하며 게으름과 두려움을 숨기는 행태는 그만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와 낮은 곳으로 올 때가 됐다.

진실을 말하고, 치우치지 않고, 귀담아 듣고 싶지만, 문제는 우리가 서야 할 편이 어디인지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말산업 전문 언론에서 시작해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심지어 우리조차 가지 않았던 길을 가고 있지만, “가자 우리 모두 / 닫힌 입 열어주고 / 막힌 귀 뚫어주는 / 노래 부르러 / 휘리리리 휘리리리”(손석희 에세이집, 『풀종다리의 노래』 중에서)란 ‘찬가’를 함께 부를 날이 올 것을 믿는다(사진= 딴지일보 갈무리).

말산업저널 이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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