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필 제주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특별 인터뷰

제주대 말 동물병원, 2017년 7월 개원…수술 30여 건 시술
“민간에 맡겨야 할 필요성 있어…일본의 선례에서 배울 점 찾아야”
“본격적인 말산업은 10년 후부터”

[말산업저널] 황인성 기자= 국내에서 ‘말(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는 제주이다. 말의 고장이자 제1호 말산업특구인 제주에는 국내에서 생산된 말의 절반 이상이 생산돼 길러지고 있다. 그럼에도 말 수의 분야에 대한 인프라는 부족했으며, 그동안에는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이 2차 병원으로 역할을 수행해왔었다.

제주도는 2014년 말 수의분야에 대한 투자 필요성을 절감하고, 특구 중장기 진흥계획 수립을 통해 제주대학교 수의과대학에 말 전문 동물병원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 그 결과로 2017년 7월 국내대학 최초로 말 전문 동물병원을 열게 됐고 국내에는 유일한 말 임상학 전공자인 서종필 교수가 병원 건립 처음에서부터 운영까지를 담당하게 됐다. 말을 무척 사랑한 수의사 서종필 교수와 제주대 말 전문동물병원과 국내 말산업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주대 말 동물병원’은 언제 개원했나.
▶‘제주대 말 동물병원’은 2017년 7월 13일 개원식을 열었다. 현재 개원한 지는 1년 반 가량 됐고, 중간에 시설에 조금 문제가 있어 진료를 하지 못한 기간을 빼면 만 1년 정도 운영됐다.

-다른 말 동물병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민간에 있는 동물병원이 1차 병원이고, 제주대 말 동물병원은 2차 병원이다. 2차 동물병원은 보통 자리를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처음 개원 당시 5년 안에 자리 잡는 게 목표였는데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빨리 자리가 잡혀가고 있는 느낌이다. 현재까지 30여 건의 수술을 했다.

-기억이 남는 진료 사례가 있나.
▶아직 진료는 많지 않아 모두 기억이 난다. 우연찮게 진료를 본 애들이 모두 다른 케이스였던 점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진료 케이스는 첫 번째 내원한 말이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병원에 오게 됐는데 눈을 많이 다친 녀석이었다. 다른 일반 동물병원 갔다가 실명이 될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아 왔는데 1살도 안 된 망아지였다. 우리나라 경마 규정상 한 쪽 눈이라도 실명하게 되면 경주마 데뷔가 안 되는데 마주가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진료를 시작했다.

-진료 경과는 어땠나.
▶말 상태는 생각보다 안 좋았다. 내심 걱정도 됐다. 첫 환자부터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소문이 안 좋게 날까봐 고민도 좀 됐었다. 그래도 진료가 잘 됐고, 3달 넘게 입원하다가 완전히 회복해서 돌아갔다. 마주가 굉장히 만족하더라.

-말이 대(大)동물이다 보니 수술이나 진료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아까 그 녀석의 얘기인데 동물병원 의료진이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아픈 눈에 안약을 하루 6번 넣어야 했는데 하루에 3~4시간 간격으로 했었다. 안약 종류도 7가지나 됐고 바로 넣는 게 아니라 5분주기를 둬야하기 때문에 24시간 내내 고생했다.
5개월령 순치가 하나 안 된 상태의 망아지였기에 더욱 힘들었다. 젓을 떼자마자 온 녀석이라 끄는 것 만지는 것 모두 안 됐다. 그래도 3시간마다 사람 손을 탔던 덕분인지 나중에는 강아지처럼 사람을 졸졸 따라 다니더라. 치료와 순치가 동시에 진행된 재밌는 케이스다. 내년쯤 되면 경주로에 갈 것 같다.

-국내 대학 최초 2차 말 전문 동물병원으로 제주대 수의학과 학생들이 실습 교육을 온다. 말에 관심을 갖는 수의학과 학생이 있나.
▶우리뿐만 아니라 말 수의사 분야에서 모두가 다 겪고 있는 문제일 텐데 말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엄청 줄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말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었는데 2017년 이후부터는 급감했다. 내가 처음 제주대에 왔을 때는 말 수의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말에 대해 배우고 싶어 다른 학교에서 우리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도 했었고, 타 대학 학부생들도 자주 실습 요청도 있었다. 지금 상황과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에는 누가 봐도 말산업이 커지는 게 보이고, 재미있으니깐 이쪽 분야로 진출하고 싶었을 거다.
또 다른 이유는 말 수의 분야에서 자리 잡기 힘든 상황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1~2년씩 공부하고 나간 수의사들이 자리 잡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오니깐 이쪽으로 오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제주대 말 동물병원에 내원한 말 수술 장면(사진 제공= 제주대 말 동물병원).


-그럼 서종필 교수는 말 전문 동물병원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는가.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동물병원이므로 병원 진료, 교육, 연구 등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특히, 교육적인 영역에서 일반 수의사라 할지라도 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과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이다. 아직 말 수의분야에 대한 충분한 수요가 있지 않은 상황에서 말 수의사를 배출해 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현재 수의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는데 대동물 또는 산업동물에 대한 교육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관심도 없고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시대적 흐름인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현 수의사 면허제도 안에서는 대동물, 소동물 가리지 않고 조금씩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동물병원에서 해주고 싶은 건 수의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말에게 친숙함을 느끼고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개, 고양이는 소동물이다 보니 쉽게 않을 수 있지만 상당히 큰 동물인 말은 옆에 가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경우가 있다. 최첨단 진료 기술이나 수의지식을 아는 것보다 말 진료를 위해 다가갈 수 있는 것 말이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왔다. 일본의 말 수의 시장은 어떤가.
▶일본의 말산업은 약간 독특한 형태이다. 승마 시장이 우리나라보다 크긴 하지만 말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상대적으로 경마에 편향된 구조로 경마장만 20여 개 운영되고 있다. 말산업 시장이 큰 거에 비하면 말 수의사가 많지는 않다. 1년에 말 수의사로 진출하는 졸업생이 적게는 3~4명, 많게는 5~6명 수준이다. 취업처는 일본 마사회에 1년에 3~4명, 일본 가축공제조합에 2~3명, 민간 개업의가 1명 내외이다.



▲제주대 말 동물병원에 내원한 말 수술 장면(사진 제공= 제주대 말 동물병원).

-국내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 말산업의 역사가 길다보니 말 수의분야가 과거부터 존재했었다. 신규 수의사가 들어간 만큼 은퇴하는 수의사도 있어 균형이 이뤄지고 있는데 국내는 최근에서야 말 수의분야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말산업 역사가 짧아 순환이 안 되는 점이 약간은 다르다.
다만, 우리나라는 일본과 말산업 구조가 되게 비슷해서 계속 발전해 나간다면 일본의 말산업과 비슷하게 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도 든다. 일본에서 잘못했던 것들은 반면교사 삼아 더욱 발전시켜 나갈 필요성이 있다.

-일본에서 잘 됐던 말산업 정책이나 전략은 무엇인가.
▶경주 운영 시스템이나 공제제도가 아닐까 싶다. 일본 경마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며, 경마 운영 시스템도 체계적이다. 말이 태어나서 경마에 활용되고, 퇴역 후 쓰는 것까지 잘 돼 있다. 가장 부러운 것은 농가들을 위한 공제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부터 소 분야를 중심으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말 분야에서도 공제제도가 확대된다면 말 생산농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나.

- 요즘 번식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 중이란 얘기가 들린다.
▶소규모이지만 학교 내에서도 자체적으로 번식하고 있어 관심이 생겼다.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있어 계속 찾아보게 되더라. 아직 국내에서는 말 생산과 번식이 잘 연구되지 않았지만 말산업 선전국인 유럽에서는 연구된 것들이 많더라.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포츠용 말, 포니 등에 대한 번식 시도 등은 생산단체가 50~100년 전부터 많이 했었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떤 말을 생산하고 개량해야 할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최근 아랍말을 국내에 도입해 개량한다는 생산자들이 있던데 아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외국에서 말을 들여온다는 것만으로 말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 어떤 용도로 말을 들여올 것인지 분명히 정하고 들여와야 한다. 특히, 승용마가 그렇다. 말 생산도 냉정하게 갈 필요가 있다. 서러브레드는 말을 키워 경주마로 활용되니깐 시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승용마는 다르다. 외국에서도 돈이 되는 경기용 승용마 망아지의 가격이 억대까지는 안 간다. 보통 몇 천 단위이다.
이런 점에 대해 소위 전문가 그룹에서 외국의 사례나 정보를 공유할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섣불리 얘기를 잘못하면 정책에 실수가 있을 수 있고, 말 생산시장 실패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 전문가 그룹 가운데 승마 고수로 평가되는 분들을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십년간 말을 탄 사람들이고 해외 경험과 인맥이 넓어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국내에 말 전문가들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뱅크가 될 수 있다.




-끝으로 한국 말산업을 응원하는 말 한마디를 전한다면.
▶국내 말산업의 역사가 짧다고는 하나 말산업을 정부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키워 이렇게 빨리 성장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마사회에서 시행하는 어린 말 대회 등은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관에서는 민간이 자발적으로 어린 말을 생산할 수 있도록 승마대회 등을 개최하고, 민간에서 스스로 판단해 생산하도록 해야 한다. 진작 초점을 이곳에 맞췄으면 더욱 좋았겠으나 이제라도 시작한 건 다행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말 생산에 있어 수요 공급 균형을 예상하지 못한 정책들이다. 민간에서 해야 할 것들을 관 주도로 하다 보니 생기는 부작용일 수 있는데 이제는 많은 부분에서 민간으로 이양해야 한다. 향후 10년은 힘들겠지만 성공한 사람은 성공하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시점에 본격적인 말산업이 다시 시작할 거라고 생각한다.


황인성 기자 gomtiger@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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