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읽어보았으면 하는 이야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반비: 수클리볼드, 2016), 472쪽, 15,300원. 이 책은 전자책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1999년 4월.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다. 필자가 중학교 1학년, 14살 때 이야기이다. 물론 본인은 그때 기억이 나질 않는다. 허나 전 세계로 방송이 나갔을 테니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 뉴스를 봤을 것이다. 인간의 죽음 앞에 무엇이 더 잔인한가 높낮이를 가릴 수 없겠지만, 같은 학교 또래의 학생들이 선생님, 친구들에게 총을 겨누었던 사건이기에 그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두 학생의 잘못된 판단으로 1명의 선생님, 12명의 학생들이 유명을 달리해야했다. 누군가는 도망치다가 총에 맞았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는 같은 학교 학우의 얼굴을 마주하며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오래된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의 많은 피해자분들을 향해 애도를 표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지금까지 읽어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의 책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책은 피해자들의 관점에서 쓰여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입은 피해자들의 슬픈 이야기들. 자신들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지울 수 마음의 짐을 지게 되었고,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야기. 처음으로 가해자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가해자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가해자 어머니'의 관점으로 쓰인 이야기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총기사건의 주범인 딜런의 어머니, 그녀가 바라본 당시의 모습들, 그녀의 솔직한 생각으로 이 책은 채워져있다.

이 책의 원제목은 'A Mother's Reckoning(엄마의 회고)'라 한다. 어떤 과정으로 제목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하며 마케팅 측면을 고려하여 제목을 수정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 생각일 뿐이다. '엄마의 회고', 그리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의 차이를 고민해본다. 너무 자극적이다. 비록 내용은 같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다른 내용을 내포하고 있는 제목이다. 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차이가 엄청나다. 제목을 듣는 순간 독자들은 책 내용을 짐작하게 되어있다. 사실 처음 이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읽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었다. 그저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의 어머니가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겠구나 생각하며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출판을 하며 당연히 저자와 합의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읽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저 개인적인 견해로 '엄마의 회고'라는 제목이 더 부드럽고 편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가해자의 어머니로 세상을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전해질까 두려웠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마라는 죄인으로 느껴야 하는 죄책감을 공유해야 할까 봐 선뜩 책을 펴들 수 없었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진솔된 엄마의 눈물로 쓰인 이 책, '엄마의 회고'라는 제목도 맞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제목 역시 틀리지 않았다. 두 제목의 내용을 모두 포함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가해자의 어머니로 살아가야 하는 진솔된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저 자신의 아들을 대변하기 위함이 아닌, 그리고 가해자의 어머니로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고통을 이야기함이 아니다. 자신의 아들로 인해 벌어진 사건으로, 전 세계 모든 부모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미국에서도, 또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 인간의 역사상 잊을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의 주인공인 아들을 감싸기 위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 함께 사건을 일으킨 에릭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에릭의 어머니가 책을 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마치 모든 책임을 자신의 아들인 딜런이 아닌 에릭에게 지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아들 딜런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문제를 일으키도록 키워지지 않았다고 엄마는 생각했다. 딜런의 엄마는 물론 아빠까지 아이들의 양육에 아주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딜런 가족의 모습은 평화 그 자체였다. 딜런의 부모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책을 보고 있는 나 역시 굉장히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딜런이 가정의 영향으로 그런 사건을 일으켰으리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그리 생각했고 딜런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에릭의 나쁜 영향으로 인해 사고가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딜런의 부모였다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렇게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한 딜런이 그런 일을 벌였을리가 없다고.

누가 뭐라 해도 이 사건의 범인은 딜런과 에릭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딜런의 부모 역시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딜런이 사건의 주동자라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이 책의 저자인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 역시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학교 기숙사를 어떻게 꾸며야 할까 고민하는 아이였다. 엄마뿐 아니라 아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딜런 주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미래에 벌어질 일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님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아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아마 십중팔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본인들은 자신들의 아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또한 아이들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최고의 방법으로 양육을 하고 있다 말할 것이다. 당연히 콜롬바인과 같은 사건의 가해자가 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딜런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가정과 비교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었다. 딜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그들의 상상을 벗어났다. 순하고 착하기만 했던 둘째 아들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을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건을 벌이기에는 딜런의 부모가 너무 바른 사람들이었고, 또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자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딜런의 부모는 모든 비난을 감당해야만 했다. 대체 왜 몰랐느냐고, 어떻게 이런 사건이 벌어지도록 아이를 방치할 수 있었냐는 비난들을. 그리고 모두들 생각했다. 딜런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모두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언론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만들어 방송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결코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마저 진실의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딜런은 살인은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준비된 살인자로 포장되어 미국 전역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모습을 미리 예상하지 못한 부모에게 모든 화살이 되돌아갔다. 딜런의 부모 역시 모든 것을 감수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짐은 너무 무거웠다. 그녀 역시 알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사랑스러운 막내아들이 이런 일을 벌였어야만 했는지.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딜런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피해 가지 않는다. 가해자의 부모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는지 고백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가족들, 또한 미국 전역의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견디기 힘들었을 비난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딜런의 어머니, 그녀는 그저 이 사건이 살인사건임과 동시에 두 소년의 자살이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자살을 예방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두 아이가 사건을 벌였던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자살 충돌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두 아이만 자살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차라리 나았겠지만, 결과는 그리되지 못하였다. 자신들의 죽음을 위해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냈다. 심지어 본래 목적 자체가 총기를 통한 살해가 아니었다. 이 둘은 학교 전체를 폭탄으로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점심시간, 교내 식당에 폭탄을 설치했지만 폭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 아이는 총을 들고 무자비한 살인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콜롬바인 사건 후, 시간이 흐르며 엄마는 느끼게 된다. 두 아이의 사건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음을. 자신의 아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엄마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아이들은 너무 섬세하고 예민한 존재들이었다. 그저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보이는 몇 가지 이야기들로 딜런이 그런 일을 벌였을 리가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와 딜런의 모습을 돌아보며 다시 사건을 되짚어보게 된다. 딜런과 에릭뿐만 아니라 전 세계 10대 아이들이 다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10대 아이들이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질풍노도의 시기니 그렇겠지 하고 지나가는 사소한 것들은 그냥 사소한 것들이 아니었다.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없이 깨져버리는 유리잔 같은 존재들, 우리 아이들은 바로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사실 자발적으로 읽은 책은 아니었다.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처음 제목을 보자마자 읽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이 책을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읽어보라 이야기하고 싶다. 직접적인 대상은 아이가 있는 부모님들이 되겠지만, 사실 자살을 방지하고자 생각한다면 모든 사람이 읽어도 부족하지 않다. 반드시 내 아이만, 내 가족만 자살로부터 방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평생을 지도자,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 나에게 있어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다. 나의 사소한 배려와 관심이 부모님들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나를 좋아하고 따라주는 제자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을 생각하면 그저 이런 책도 있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자살률 역시 그저 방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많은 이야기들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 그런 것들로 인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주변에 단 한 명, 한 사람만이라도 사소한 배려와 관심이 있었다면 한 영혼의 어이없는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가해자의 어머니인 수 클리볼드 역시 자살 방지와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한다. 자살은 막을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전문가만이 자살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 모두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한 번 더 콜럼바인 사건의 피해자분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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