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라리 (2,705 m) - 반달 (2,200 m) - 현수교 - 절쿠 셰르파 호텔

데우라리 고개에 올라서 바라보니 피케 정상부는 구름에 잠겨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구름도 이내 벗겨질 것 같지 않았다. 이런 날씨라면 차라리 반달로 내려가서 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달은 데우라리에서 빤히 내려다보였다. 길은 내리막길,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데, 나왕 초상 셰르파가 우선 목부터 축이고 보자며 주막집으로 이끌었다. 나왕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주막집 주인은 나왕과 절친한 사이로 보였다. 알고 보니 이 주막집 주인 역시 총누리나 나왕 초상 셰르파처럼 오컬둥가 쪽 빠쁘레 사람이었다.

 

주막집 주인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어느 눈 오는 날에 한 한국인 여행자가 커다란 돌멩이를 안고 들어와 그것을 난로에다 구워줄 수 있냐고 물었다고 한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뜨겁게 달군 돌멩이를 수건에 싸서 침낭 발밑에 넣고 자면 덜 춥다면서 만일 돌멩이를 구워주면 여기서 자고 안 구워주면 다른 집으로 가겠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주막집 주인은 돌멩이를 굽기 위해 새삼스럽게 난로를 때기는 곤란하다고 했고, 한국인은 두말없이 다른 롯지를 찾아나갔다. 주막집 주인은 그 커다란 돌멩이를 안고 다니던 한국인이 그날 밤 어디서 잤는지 궁금하다며 껄껄 웃었다.

 

나왕 초상 셰르파는 술을 엄청 좋아하는 친구였다. 한 잔 더, 한 잔 더, 하면서 그 독한 옥수수 락시(소주)를 맥주 컵으로 세 컵이나 마셨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총누리도 기어이 한 잔 마시게 했다. 그러는 동안 피케 영봉을 가린 구름은 더욱 두껍게 엉겨 붙고 있었다. ‘이런 날씨라면 구태여 데우라리에서 묵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 무렵 그 고장은 보통 오후부터 구름이 끼기 시작하며, 자정부터 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해서 새벽이면 구름이 말끔하게 걷힌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던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술이 얼큰한 상태에서 데우라리를 떠났고, 한 시간 후인 430분에 반달의 어느 멋진 롯지에 도착했다.

 

반달 마을의 해발고도는 2,200미터, 드넓은 경작지가 있는 산속 분지 마을이다. 카트만두에서 뻗어온 도로는 지리를 거쳐 이 마을까지 이어져있었다. 그러나 지리부터 이곳 반달까지는 도로 상태가 나빠서 지프나 트랙터만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종일 걷느라 지친 나는 그 롯지에서 쉬어야 했지만, 나왕은 그날 중에 반드시 절쿠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그와 작별할 때가 온 것이었다. 그러나 작별에 임한 술꾼들이 어찌 그냥 헤어지는가. 롯지에서 다시 몇 순배에 걸쳐 작별주를 마셨는데, 문제는 거기서 비롯되었다. 술기운이 돌자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나왕을 따라나선 것이다. 도중에 배가 고파서 가게에 들어가 달걀을 삶아먹고 나오니 어느새 캄캄해졌다.

 

우리의 일정은 도보 이틀째에 절쿠에 도착하는 것이었는데, 이틀 일정을 하루에 걸어버린 셈이었다해가 짧은 산중이라 6시가 좀 지나서부터는 캄캄한 밤길을 걸었다. 경사가 심한 비탈길과 한 발만 헛디뎌도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위험한 길을 술에 취한 채 걸었다.

 

나왕 초상 셰르파의 볼펜처럼 생긴 중국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하여 더듬더듬 내려와 허공에 걸린 현수교를 건넜다. 절쿠 도착 시간은 730. 도보를 시작한 첫날부터 12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천지신명이 굽어 살피셨기에 망정이지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계속>

 
2007년 당시에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저런 트랙터나 화물차는 이곳 반달까지 통행이 가능했다. 2019년 현재 도로는 산중을 더 깊숙히 파헤치고 있다.   
반달의 롯지. 데우라리에서 내려온 우리는 이곳에서 여장을 풀어야만 했는데...... 
반달은 산속 분지에 위치한 마을이다. 
절쿠 셰르파 호텔의 소녀. 
우리가 라면을 먹은 롯지의 소녀. 반달. 
데우라리 언덕의 롯지. 
데우라리 언덕의 또 다른 롯지.  
절쿠로 가는 길에 만난 현수교. 
여러날 후에 도착한 마을에서 바라본 피케 능선. 구름 아래 보이는 하얀 능선의 두 봉우리가 피케1, 피케2. 나는 눈이 무서워서 봉우리에 오르기를 포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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