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케기행 17 ] 겨울에서 봄으로 내려서다
[ 피케기행 17 ] 겨울에서 봄으로 내려서다
  • 김홍성 시인
  • 승인 2019.04.15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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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비탈이 심한 길을 내려오다 보니 땀이 흘렀다. 어제만 해도 눈 속에서 추위에 떨었는데 어느새 꽃 피는 봄이고, 햇살은 여름처럼 뜨거워졌다. 길가의 랄리구라스가 드문드문 붉고 탐스런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닥추 마을 셰르파 호텔 내부. 벽과 찬창에 진열된 살림이 정갈하고 가지런하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로 닥추, 고옘 마을을 거쳐 세테에 도착한 시간은 4시 경이었다. 람주라라보다 1,000 미터 저지대인 고옘과 세테에는 눈이 없었다. 솔루쿰부 게스트하우스라는 롯지에 여장을 풀었다. 서양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여인숙이었다. 목조 건물 이층은 숙소, 아래층은 식당인데, 식당의 탁자에 영문 소설책들이 여러 권 쌓여 있었다.

마당에서 서쪽으로 마주 보이는 능선이 우리가 순례 이튿날에 통과한 데우라리 능선이었다. 데우라리 아래 반달 마을도 보였다. 반달은 우리가 도보여행을 시작한 첫 날 술 취해서 그냥 통과한 마을이었다. 다음날 점심을 반달에서 먹고, 저녁에는 데우라리 반장에 도착하게 됐으니 우리의 피케 도보여행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여인숙 주인 카르마 셰르파(36)13세 때부터 10 여 년간 포터 생활을 했다는데, 한참 잘 걸을 때는 아침 6시에 루클라를 출발하여 저녁 8시에 세테의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보통의 트레커들이 34일에 걷는 길을 당일에 걷는다는 셰르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직접 만나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말을 두 필 기르고 있는데, 그 말들은 지리로부터 식량 등 물품을 운반하기도 하고 손님을 태워 주기도 한다. 손님을 태울 경우 세테에서 람주라라까지 3,000 루피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손님을 피케 정상까지 태워 준적도 있다고 했는데, 그 때 얼마를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말들은 독일인 스폰서가 사 준 것이라 했다. 독일인은 카르마 셀파의 아들을 카트만두의 기숙사 학교로 옮기고 매 달 장학금을 보내 주고 있다고도 했다.

다음날 새벽에 본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솜이불 같은 운해 위에 거대한 섬처럼 떠 있는 데우라리 능선으로 하현달이 지고, 하늘 가운데는 아직 몇 개의 별들이 남아서 글썽이는 풍경이었다.

이 날 아침 식사는 지난밤에 산 밑에서 올라와 우리 옆방에서 잔 중년의 체트리 부인과 아랫마을 소녀가 같이 했다. 아낙네는 준베시로 가기 위해 람중라라를 향하여 올라가는 중이었으며, 소녀는 아낙네의 짐을 들어 주느라 아랫마을에서 같이 올라온 것이었다.

 

오른쪽부터 카르마 셰르파. 카르마 셰르파의 부인, 락시미, 카르미 셰르파의 딸, 체뜨리 부인.   

 

아침 식사 후 우리와 함께 하산하게 된 소녀의 이름은 락시미 바스넷. 17세라고 했다. 바스넷은 체트리의 성이었다. 보통 셀파와 체트리는 잘 안 어울리는데, 이 소녀는 붙임성이 좋아서 셰르파 여주인을 아주머니라고 부르고 부엌일도 거들어 주고 그랬다. 무뚝뚝한 총누리도 락시미가 말을 붙이면 잘 받아 주었다.

락시미와 우리는 세테에서 겐자로 내려오는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행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비탈이 심한 길을 내려오다 보니 땀이 흘렀다. 어제만해도 눈 속에서 추위에 떨었는데 어느새 꽃 피는 봄이고, 햇살은 여름처럼 뜨거워졌다. 길가의 랄리구라스가 드문드문 붉고 탐스런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세테 가까이 내려와서 훌쩍 앞질러 간 락시미가 길가의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총누리는 그 가게에서 라면을 시켰다. 아침에 카르마 셰르파의 집에서 차 마실 때 나온 티베탄 브레드는 반죽도 잘못되었을 뿐더러 좋지 않은 기름으로 튀긴 것이어서 배탈이 날 염려가 있어 먹다 말았다고 했다. 우리는 라면을 먹은 후 밝고 따스한 햇살 속에서 머리를 감고 이를 닦았다. 락시미도 긴 머리를 풀어 비누 거품을 내가며 머리를 감은 후 햇살에 말렸다.

겐자는 며칠 묵어가도 좋은 동네였다.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곳이라서 주변 경관이 좋으며 큼직한 롯지들도 여럿 있었다. 어느새 머리를 곱게 빗은 락시미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며 제법 배우 같은 포즈를 잡았다. 나는 그녀에게 웃으라고 했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냥 자기가 연출하고 있는 표정을 그대로 찍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계속> 

닥추의 셰르파 호텔 앞에 벗어 놓은 무거운 짐들.  

 

닥추에서 본 피케. 
고옘 마을 초입. 눈이 많이 녹았다. 

 

짐을 운반하고 오는 조랑말들이 고옘 마을 중심을 지나고 있다.  

 

고옘 마을의 마네는 짐을 쉽게 내리고 질 수 있게끔 단을 길게 만들었다.  

 

세테의 게스트 하우스. 새집은 양철 지붕이요, 헌집은 너와 지붕이다.  

 

solukhumbu sherpa guest house, Sete

 

락시미 바스넷, 17세. 

 

한 소년이 겐자 마을의 가게에 수탉을 팔러왔다.   

 

말산업저널, HORS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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