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전임자의 갑작스런 서거로, 다른 한 사람은 전임자의 탄핵으로

2017년 11월 22일 청와대 정상회담을 마친 양국 대통령 부부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끝의 미르지요예바 여사는 김정숙 여사와의 대화에서 딸네 부부가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았고, 외손주도 서울에서 낳아 가족 모두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고 친근감을 표했다(사진 제공= 청와대).
2017년 11월 22일 청와대 정상회담을 마친 양국 대통령 부부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 끝의 미르지요예바 여사는 김정숙 여사와의 대화에서 딸네 부부가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았고, 외손주도 서울에서 낳아 가족 모두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고 친근감을 표했다(사진 제공= 청와대).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1957년생이다. 올해 나이 62세. 그는 2016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해 9월, 25년 동안 우즈베키스탄을 통치하던 카리모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미르지요예프는 당시 총리였다. 대학교수와 대학 부총장을 거쳐 33세 때 정계에 입문해 구청장, 주지사, 의회 의원 등을 거쳐 2003년 총리로 발탁됐다. 그리고 13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킨 최고 행정가였다.

2016년 12월 4일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그는 88%의 득표율로 임기 5년의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2017년 그는 집권 1년차를 맞아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 터키 등을 국빈 방문하며 방한 일정도 타진했다. 그가 예상했던 정상회담 파트너는 당연 박근혜였다. 그녀의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판이 요동쳤다. 박근혜에 대한 탄핵 결정, 그리고 급박하게 치러진 조기 대선. 이 같은 과정 속에서 2017년 5월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그리곤 2017년 11월 양국의 첫 정상 간 만남이 이뤄졌다. 이런 모습을 보며 민주당 4선인 변재일 ‘한-우즈베키스탄 의원친선협회’ 회장은 “참 보기 드문 경우”라고 평가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한 전통 축제에 참가한 모습. 우즈베키스탄은 전설적인 명마 ‘한혈마’(汗血馬)의 본고장이다.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하루에 1,000리를 달린다고 하여 ‘한혈마’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말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중국 한무제의 전설이 전해진다(사진 제공= 우즈벡 대통령 공보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한 전통 축제에 참가한 모습. 우즈베키스탄은 전설적인 명마 ‘한혈마’(汗血馬)의 본고장이다.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하루에 1,000리를 달린다고 하여 ‘한혈마’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말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중국 한무제의 전설이 전해진다(사진 제공= 우즈벡 대통령 공보실).

1992년 수교 이래 양국은 오랜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25년 동안 집권한 카리모프 대통령의 친한적 열정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고려인을 매개로 한국에 여러 지원 요청을 했고, 그 결과 1990년대 중반 대우자동차 공장이 현지에 세워졌는가 하면, 대한항공이 중앙아시아 최대 물류 공항인 나보이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이후 현대엔지니어링 등 여러 대기업들의 우즈베키스탄 진출도 가속화됐다.

양국 경제 교류의 가장 중심기는 노무현 정부 때였다. 2005년 5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수르길 프로젝트’에 서명했다. 한국형 자원 개발 패키지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이 프로젝트는 총투자비 36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중앙아시아 최대 가스 플랜트 개발 사업이다.

이 개발 사업의 첫 과정은 수도 타슈켄트에서 서쪽으로 1,200km가량 떨어진 아랄해 가스전에서 매년 30억㎥의 천연가스를 생산해내는 작업이다. 이를 다시 수르길로부터 110km가량 떨어진 우스튜르트 가스화학 플랜트로 송출해 폴리머 화학제품까지 생산·수출하는 이 ‘패키지형 자원 개발사업’에는 우리나라의 한국가스공사(22.5%), 롯데케미칼(24.5%), GS E&R(3%) 등과 우즈베키스탄 국영 석유가스공사(UNG)가 50%의 지분율로 참여하고 있다.

당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총리였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 실세였다. 그랬던 두 사람이 10여년이 지난 시점 대통령으로 다시 만나 반갑게 포옹했다. 한 사람은 전임자의 갑작스런 병사로, 다른 한 사람은 전임자의 갑작스런 탄핵으로 ‘운명적 만남’을 이룬 두 사람은 2017년 11월 헤어지는 길 서로를 ‘Brother’라 칭해 보는 이들도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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