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윤 한 로

 

1

추사 선생 쓰라린 제주 귀양살이 겪고
사람 달라졌다
저 잘났다는 마음 싹 가시고
지극히 낮아졌으리
한강 가 한 걸음 물러
조촐히 살았구나, , 그러구러
글씨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아지니

 

2

나 이제 그때 선생과 같은 육십 줄
정신을 흉내 내네,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만
궤짝 위 낡은 책권
그리고 무두룩, 군둥내 나는
돌 한 덩어리
사타고니 쓸며쓸며 뜯어봄에
한갓 시골 꼰대 마음이야
이제 아무것 먹잖아도
쓰잖고도 배부르다

 


시작 메모

추사 선생의 殘書頑石樓(잔서완석루)’란 현판은 두고두고 울궈먹는 내 주제이다. ‘낡은 책과 울퉁불퉁한 돌이 있는 서재또는 흐릿한 글씨의 깨진 빗돌 서재라는데, 내 시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당연히 앞엣것이다. 거개가 뒤엣것으로다 정설을 삼지만, 그건 오히려 인생 쓴맛 단맛 다 보고 탈속에 이른 선생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나 아닐까. 그러구러 내 무두룩 돌덩이에 자주 빠져드는 바, 넒고 깊은 학식들이여, 이 시골 꼰대의 그르침과 옹졸함, 무식 무례함이 있다면 부디 용서바란다.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