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산업 칼럼] 말도 사람도 행복한 세상이란
[말산업 칼럼] 말도 사람도 행복한 세상이란
  • 이용준
    이용준 cromlee21@horsebiz.com
  • 승인 2019.05.09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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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인해 사람이 행복한 세상으로···수단인 말의 목적(행복)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생명에 대한 최소한 예의는 지켜 달라”
“도덕성은 동물 다루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살아 있을 때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인간이란 게 제일 이기적인 동물인 거 같다.”
 

한창 필드를 뛰어다닐 때 누군가가 믿을만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최우선 척도로 말을 대하는 행동으로 삼았다. 기자라고 앞에서는 ‘굽신’ 하지만, 뒤돌아서 딴 얘기 하는 ‘개xx만도 못한’ 것들을 수차례 겪었기 때문이다(관용적 표현이다, 개님에게는 죄송하다). 무뚝뚝하고 말수 없어도 말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면 그것으로 다였다. 번지르르한 말 앞세우고, 이리저리 말 옮기고 다니는 것들보다 말 잘 못 해도 글 잘 쓰면 기자로 적합한 것처럼.

솔직하자. 동물 애호가이자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필자이기에 “말로 인해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회사 모토를 처음 접했을 때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말산업 전문 언론 기관이지만, 일종의 말 이용업에 해당하기에 면피용 아니냐는 ‘편견’이었다. 그래서 ‘깜돌이(해당 기사 바로 가기)’, ‘희망이(해당 기사 바로 가기)’, ‘우박이(해당 기사 바로 가기)’ 등 사연 있는 말들 소식을 접할 때면 사리사욕, 사심 없이 현장으로 달려들었다. 말산업 종사자라면 말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운 깜돌이…. 경주 꽃마차 학대 말, 깜돌이와 삼돌이는 2015년 봄, 동물사랑실천협회와 한국마사회에 의해 구조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건국승마교육원으로 입양됐다. 당시 남양주시는 깜돌이와 삼돌이 집 철거 명령을 내렸으나 <말산업저널>이 온라인 아고라 청원 운동을 펼치자 일주일 만에 철거 방침을 철회했다. ⓒ미디어피아 이용준

미국의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U.S.)가 국내 경주마 도살 현장을 10개월 동안 위장하고 촬영해 5월 3일 전격 공개했다. 이미 유튜브와 자체 사이트에 영상과 기사를 올린 뒤 언론에 알렸다. 많은 이들이 공분했다. ‘잔인하다’는 단어가 제일 많이 등장했다.

공개 전 영상을 먼저 보고, 위에 쓴 국민 반응처럼 필자도 격분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공공연한 비밀’인 이 문제를 알고도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부대산업, 말고기 시장 활성화가 돼야 한다고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목적(방향)은 맞지만 윤리적으로 옳은지, 방법론적으로 다른 대안은 없는지 숙고할 ‘아포리아(Aporia)’ 문제에 쉽게 답만 내리려 했다는 걸, 혹은 정답 찾기를 미루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 도축장도 가본 경험이 있지만 –그 피비린내를 잊지 못한다- 영상처럼 현장의 처참한 광경은 보지 못했기에 더 분노했는지 모른다. 가차 없이 이뤄지는 도축 사실을 알면서도, 기자라서 도축 장면은 보여줄 수 없다는 관계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건 ‘침묵’한 것과 매한가지. 특종을 놓친 게 억울한 게 아니라 필자 역시 공공연한 사실을 회피하고 면피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스스로 분노한 것인지도.

후배들과 다각도로 취재하고 기사를 승인하면서도 석연찮았다. 경마, 불법, 도박이라는 기존 프레임과는 달랐다. 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과거 프레임과 달리 윤리, 복지 그리고 실천 문제로 접근해야 했다. 철학의 오랜 과제인 윤리 문제는 대상과 주제에 대한 사실과 가치 판단에 따라 매우 복잡하기에 아포리아를 넘어 근본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은퇴(퇴역)한 경주마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서 또 한 번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먼저 ‘책임’ 소재다. 다른 매체나 국민들 주장처럼 직접적 책임은 없지만, 넓은 의미에서 한국마사회가 자유로울 순 없다. 그간 한국마사회는 말의 복지를 준수하는 건전한 말산업 육성을 위해 2017년 말 복지 증진 기본 계획을 수립했고, 작년 8월 해외 전문가를 초청해 제1회 말 복지 증진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말 복지 증진 가이드북: 말도 사람도 행복한 세상 만들기’도 발간했다.

복지 문제와 관련해서 항간의 오해와 달리 한국마사회는 말 복지 정책 마련에 상당히 선제적으로 대처해왔다. 매번 꼬투리 잡고 오만가지 비판하는 데 둘째라면 서러워할 필자도 발 빠르게 말 복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인정할 정도다. 특히 과도기에 있는 우리 말산업이 근본 방향부터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가장 강한 지금, 말의 복지 문제는 핵심 주제며, 마사회와 말산업 종사자들 역시 누구보다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대책 마련에 적극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 자체다.

“살아서는 경주마, 죽어서는 말고기로···. 경주마로 은퇴해서 평원을 자유로이 달리는 저녁노을이 있는 삶으로 바뀔 수 있도록 마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댓글처럼 특히 국민들이 ‘책임’을 말할 때는 그간 잘못했다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폭넓은 의미에서 윤리적 책임을 묻는 것이리라. 페타(PETA) 측 역시 “말들이 고생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의 극히 일부분만이라도 말들의 은퇴에 사용할 것”을 주문하며 미국의 퇴역경주마복지연합(Thoroughbred Aftercare Alliance)을 본보기로 유기된 말에 관한 종합 은퇴 계획안을 한국마사회가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결국 법과 규정이다. 지난해 아시아경마회의에서 한국마사회는 말 복지 문제와 관련해 동물보호법과 말산업육성법에 특수 동물인 말의 복지를 다루는 규정이 없다는 점에 공감했다. 『아픈 말도 행복할 수 있다』의 저자로 말의 행복과 복지 증진에 앞장서 온 박경원 전 한국마사회 생산육성지원부장의 말이다. “전 세계에 걸쳐 동물 복지에 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현시점에 말의 복지에 관한 특수한 규정 내지 조항을 신설할 필요성이 있다.”

박경원 전 한국마사회 생산육성지원부장이 쓴 『아픈 말도 행복할 수 있다』는 ‘호스맨(horseman)의 아가서’로 국내 말 복지 및 윤리 문제를 다룬 최초의 화제작이다. 저자 박경원 수의사는 ‘말은 우리의 친구’라는 생각이 중요하며, 말산업 진흥의 추진 동기와 당위성은 산업 이상의 것, 즉 사상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피아 자료 사진
박경원 전 한국마사회 생산육성지원부장이 쓴 『아픈 말도 행복할 수 있다』는 ‘호스맨(horseman)의 아가서’로 국내 말 복지 및 윤리 문제를 다룬 최초의 화제작이다. 저자 박경원 수의사는 ‘말은 우리의 친구’라는 생각이 중요하며, 말산업 진흥의 추진 동기와 당위성은 산업 이상의 것, 즉 사상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피아 자료 사진

국민이 공감하는 말산업 발전을 위해 한국마사회는 말 복지 증진, 동물 보호 의식 전파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고 수차례 밝혔다. 한국마사회를 지도, 관리 감독하는 농림축산식품부도 8일 오후 해명 자료를 통해 “지자체와 협력해 전국 도축장에 대해서 「동물보호법」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위반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할 계획”이라며, 특히 “한국마사회와 협의해 퇴역 경주마의 승용마 전환, 경주마의 임의 처분 사례 최소화 등을 포함한 퇴역 경주마 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개나 고양이 등 타 반려동물이나 해외 사례처럼 말 학대 신고 체계를 갖추고 퇴역 경주마를 위한 기금 설립, 은퇴 후 입양 시설 찾아주기, 마주에 대한 경제적 지원, 버려진 말을 위한 무료 백신 사업 등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2016년 발표한 말 복지 헌장처럼 종사자들을 위한 실질적 안내 매뉴얼과 선언도 필요하다.

변화의 갈림길에 선 말산업 종사자들 모두 이번 사건을 통해 말 복지 증진을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말도, 사람도 행복한 세상 만들기”에 헌신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 그 방법은 ‘말로 인해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리라. 즉, 우리에게 수단일 수밖에 없는 말을 행복하게 하는 그 목적을 달성했을 때에야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이해했다. 그럴 때야 말도, 사람도 행복한 세상이 된다. 필자 역시 다시 각성하고, 말의 복지와 윤리 문제에 더욱 매진할 것을 지면을 빌려 맹세한다.

말산업저널 이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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