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2018 승마 사례 공모전 당선작 발표
장려상(유소년승마단 부문)에 양현희 씨 수상

 

한국마사회가 2018 승마 사례 공모전 11개의 수상작을 발표했다(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한국마사회가 2018 승마 사례 공모전 11개의 수상작을 발표했다(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말산업저널] 안치호 기자= 승마를 경험한 이들의 긍정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국마사회는 2018 승마 사례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주제는 ‘승마를 통한 나의 변화’로 △학생승마체험(포니3등급포함) △기승능력인증제 △유소년승마단 △전국민승마체험 4개 부문으로 진행해 총 108명이 참여했습니다. 최우수상과 말산업특구상, 우수상 등 11개 수상작이 선정됐으며, 배추용 씨(50세, 학원강사)의 전 국민 승마체험 수기가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말산업특구상은 박시온(경기도), 장민석(경상북도), 이승윤(전라북도), 안지선(제주특별자치도) 씨가 수상했고, 우수상(한국마사회장상)은 김도현, 장려상은 박지연, 김은지, 양현희, 손영희, 윤현미 씨가 수상했습니다. <말산업저널>은 한국마사회 승마진흥부의 협조 아래 공모전 체험 수기 수상작을 종합 연재합니다. 여덟 번째 순서로 양현희 씨의 ‘섬 아이들의 선생님(유소년승마단 부문)’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2018 승마 사례 공모전은 ‘승마를 통한 나의 변화’를 주제로 진행됐다(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2018 승마 사례 공모전은 ‘승마를 통한 나의 변화’를 주제로 진행됐다(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섬 아이들의 선생님 - 양현희

졸업 후 고향 임자도 돌아와 승마지도사 꿈 이뤄

아직 배울 것도 많고 아이들 가르치기도 어린 나이

마음 열고 아이들 이야기 들으며 함께 발전해나가

섬에서도 국가대표나 지도자 될 수 있는 희망 주고파

나는 아이들을 통해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승마선생님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첫 제자들의 선배님이다. 벌써 임자도로 다시 돌아온 지 1년이 넘어간다. 나의 고향이자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승마를 접하게 된 곳 나의 꿈이 생겼던 임자도로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 보려고 돌아왔다. 나는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과 똑같은 길을 걸었던 임자도 유소년 승마단 1기 출신이다. 지금 가장 큰 나의 단점이 있다면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아직 너무나도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경험 없는 어린 나이다. 장점을 말하자면 나는 누구보다도 지금 아이들과 승마장의 상황에 맞춰 그 누구보다도 더 좋은 레슨을 할 수 있는 선생님이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가르쳐 보려고 임자도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게 꿈이 있냐? 라고 물으면 나는 후배를 양성하는 승마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제일 먼저 말한다. 왜냐 나도 어린 시절 임자도 안의 작은 승마장에서 좋은 교관님에게 좋은 말로 승마를 배워 보질 못했고 말도 우리가 트레이닝을 시키면서 배워야 하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했으며 섬이라는 작은 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었고 책으로 영상으로 혼자 공부하였기에 지금 아이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내가 어려웠던 것들이 지금 많이 바뀐 현재의 시점에서 아이들에게 쉽고 간편하게 가르쳐주며 아이들을 꿈을 키워 주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실 많이 두려웠다.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경험도 많이 부족했고 아는 지식도 그렇게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젊기 때문에 도시에 살고 싶은 꿈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돌아온 것은 아이들뿐만 아닌 현재 임자유소년승마단원에 속해 승마를 배우고 있는 나의 막내 동생 때문이기도 했다.

먼저 나는 나의 유소년시절 이야기로 시작을 하고 싶다. 나는 임자도 승마단원 중 가장 말을 못 탔고 겁도 많았고 도전정신도 없어 지도자들의 기피 대상이었다. 그런 내가 왜 승마를 포기 하지 않았냐?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말이 갑자기 잘 타져서, 공부가 하기 싫어해서, 공부를 못해서 갈 대학이 없어서 승마를 전공했다고 다들 생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말의 눈을 보고 치유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승마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원장님께서 나를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도와주셨기에 승마지도사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섬에서 승마를 배우기는 쉽지도 않은 일이다. 나의 유소년 시절에는 승마를 배우기 위해 전문 지식을 가르쳐 주실 만한 분도 안 계셨고 시합 한번 나가려면 경비도 많이 들고 운송할 수 있는 방법도 너무나도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경험을 쌓을 수도 없었고 배울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그 시절 원장님께서 교육청과 군청 그리고 학교를 우리가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을 돌아다니시면서 우리의 미래를 지켜주셨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멋져 보였고 원장님의 노력 덕분에 한국마사회도 가 볼 수 있었고 큰 시합장 경험도 해보고 시합에 나가 입상도 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마냥 쉬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합 나갈 때만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는 어렸을 때 너무나도 철이 없던 게 보였다. 평소에는 슬럼프 핑계를 대면 말도 잘 안 타고 불량하기 그지없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는 시합은 당연히 말을 타는 선수로써 자주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환경은 생각 안 하고 조르기도 엄청 졸랐던 것 같다.

나는 대학도 승마를 전공하는 전주기전대학교 마사과를 졸업했다. 전문지식을 더 배워 아이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택했다. 대학교에 막상 입학해서 첫 수업을 듣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깡다구 있게 말을 타는 것밖에 없었다. 경주마를 순치를 시키며 말을 탔던 나는 어느 말이든 자신감 있게 오르내리는 것만이 오롯이 나의 대학 생활의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전문지식이 있는 교관님께 많이 배워보지를 못해서 알고 있는 용어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교수님 혹은 조교님이 무슨 일을 시키면 되묻기 바빴고 나서서 무엇이든 찾아 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2년간 나는 전문 교관님들께 많이 배워 온 다른 아이들 옆에 붙어 다니면서 열심히 용어를 듣고 배우면서 복습하고 외우고 공부하며 열심히 내 것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훈련 장비들도 몰랐던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치료하는 약품 등등 나는 배우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을 때 운 좋게 시합을 나가고 국가대표 교관님들을 만나게 되면서 더 많이 경험하고 배우게 되었던 것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조금 힘들어도 열심히 배우고 자존심 세우지 말고 열심히 배우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나는 임자도로 돌아왔다. 처음엔 아이들을 가르치는 목적이 아닌 가족과 지내며 정신적으로 휴식을 취하려 왔었다. 하지만 인사드리러 승마장을 자주 왕래하면서 나는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였던 건가?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다른 곳과 다르게 말이 스트레스받지 않게 사양을 하면서 아이들이 자연적으로 뛰어놀면서 운동하는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도시에 승마장으로 가려고 알아보고 있는 와중에 나는 경로를 틀어 임자도로 와서 일을 하겠다고 원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정식적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승마장에서 학생 신분이 아닌 직장으로 있으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내가 지도자로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여러 가지였고 공부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해야 했고 아이들을 위한 수업 플랜도 다양한 방법으로 계속 연구해야 했다. 마치 고3 수험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학생 때 지금처럼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아마 스카이대학교에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섬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승마 사례 공모전에서 장려상(유소년승마단 부문)을 받은 양현희 씨(사진 제공= 양현희).
‘섬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승마 사례 공모전에서 장려상(유소년승마단 부문)을 받은 양현희 씨(사진 제공= 양현희).

아이들과 첫 대면을 하고 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친분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다. 사실 아이들을 보니 내가 더 굳고 안전을 논하며 화나기 바빴다.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가슴에 새겨놓고는 처음 하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나는 당황도 많이 하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지 방황도 했다. 사실 아이들에 대해서 전혀 알고 있는 게 없이 승마 수업을 진행하게 되어서 무작정 화내기만 했던 첫 수업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수업은 아이들의 기승 능력 정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진행을 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서 자세를 교정해주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조금씩 나누며 수업을 편하게 했다. 아이들은 아직도 내가 화내는 것 만 보이는지 낯설어하고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나의 가장 안 좋은 습관은 마장 안에서는 너무나도 사나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나에게 다가오지도 못하고 질문도 못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이렇게 몇 개월간 생활을 했다. 아이들이 나랑 수업하는 게 버거워 보였던 순간이 있었다. 내가 너무 화만 내고 무섭게 하니까 수업 시간만 되면 긴장을 하고 수업을 나오지 않는 학생까지 있었다. 그게 나의 고민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내가 무섭지 않고 친근하게 대해줄까? 아이들이 원하는 건 어떤 수업이며 무엇이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오게 될까 매일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정해진 수업이 아니면 아이들을 보지 않았고 짧은 수업 시간 동안에는 화를 내다보면 수업이 끝나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에 가기 바빴기 때문에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답을 찾지 못했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매번 똑같은 재미없는 무서운 수업을 해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일지를 쓰게 권유를 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속마음의 이야기를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밖에서는 웃으며 놀아주시다가 말만 타면 너무 무서워서 수업하는 게 싫다. 매일 똑같은 수업 말고 게임도 하고 싶고 축구같이 팀을 이뤄야 하는 말을 타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래도 아이디어를 잘 짜서 아이들의 속마음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더 방황을 했다. 단합을 이루는 게임? 내가 화를 안 내면 아이들이 나에게 집중을 할까? 새로운 것?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만족하는 수업을 꾸릴 수 있는 것인가? 정말 어려웠다. 자격증만 따면 아니 자격증을 따고 내가 아이들의 앞에만 서면 내 꿈은 다 이룬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머릿속은 온통 고민으로 가득했다. 어떤 일을 하던 간 계속 연구를 하고 계획을 하고 틀을 벗어난 나만의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숙제 같았다. 마지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1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되고 나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웃으며 말을 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의 문제는 아이들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전혀 답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소심한 아이 겁이 많은 아이 대범한 아이 다양한 아이들이 있는데 나는 오롯이 내 중심적 생각만 했고 또 어렸을 때 내가 배웠던 것들만 틀로 만들어 버리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정적으로만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던 것. 답은 앞에 있었는데 발견하지 못하고 고민을 하고 있던 나였다. 이렇게 선생님이 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 전혀 생각을 못 했던 나는 된통 혼이 난 것이다. 아이들하고 있는 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아이들과 진짜 친해지고 마음을 트고 이야기할 수 있던 순간은 임자 vs 진도 교류전 때인 것 같다. 아이들 중에서는 첫 시합인 친구들도 있었고 시합을 나가다가 사정상 나가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이런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며 코치가 되어줘야 했다. 많은 걸 한자리에서 해줘야 하는 나는 이날 아이들에 대해서 더 알아가게 되었고 아이들과 같이 단합을 하면서 시합을 진행하니 아이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모습도 보였고 나도 내가 보지 못한 아이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행동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정말 신기했다. 난생처음이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것 내가 내 꿈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지금 아이들 덕분에 이뤄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동안 내가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게 만들어주고 나의 꿈을 이뤄주게 만들어주는 나의 하나뿐인 첫 제자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아직은 많지 않다. 앞으로 더 많이 만들어나갈 것이다. 아직은 나도 어리고 아이들도 나에게 마음을 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도 아이들에게 다가가려면 아직 한참의 시간도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하다.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들과 섬을 발전시키고 승마부도 발전시킬 것이다. 섬이라는 제한을 두지 않고 꿈을 펼칠 것이고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발휘해 아이들이 승마를 쭉 하며 나처럼 후배들을 양성하는 멋진 국가대표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보고 싶다. 그리고 섬 안에서 승마를 배우는 친구들에게도 희망을 나눠 주고 싶다. 꼭 선수가 아니더라도 나처럼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꼭 이름을 널리 알리지 않는 지도자여도 내가 하고 싶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덕분에 내 이름과 직업이 빛이 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장려상(유소년승마단 부문)을 받은 양현희 씨(사진 제공= 양현희).
장려상(유소년승마단 부문)을 받은 양현희 씨(사진 제공= 양현희).

원고 제공= 한국마사회 승마진흥부
교정·교열= 안치호 기자 john337337@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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