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총누리와 같이 왔을 때는 합숙방 침대에서 잤는데 이번에는 별채의 방에서 자게 되었다. 널따란 판자로 벽을 댄 별채 공간의 반은 술 빚는 광을 겸하는지 술독을 비롯하여 화덕이나 솥들이 놓여 있고 누룩 냄새가 그윽했다.

셰르파 호텔의 부엌. 서서 일하는 입식 부억으로 설계 시공 되어 있다. 

 

우리의 배낭 세 개 너머로 보이는 허름한 건물이 별채다. 

 

절쿠의 셰르파 호텔 별채 안에서 본 문 밖 풍경. 꼭지 없는 수도에서 맑은 물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지난봄에는 술 취해서 걸었던 밤길을 낮에 걷자니 처음 걷는 길 같았다. 유채꽃이 환하게 핀 농가들, 산비탈의 다락논, 푸른 하늘 밑에 새하얗게 빛나는 설산 룸불 히말이 모두 새롭게 보였다. 커다란 보리수가 서 있는 길가의 밥집에서 라면을 먹고, 가파른 산비탈을 오래 내려가 출렁다리 건너편 산비탈 위에 있는 절쿠의 셀파 호텔에 도착한 때는 오후 3시 경이었다.

 

내친 김에 두 어 시간 더 걷고 싶었지만 이곳 셀파 호텔만큼 괜찮은 숙소나 밥집을 해지기 전에 만나기는 어렵다는 앙 다와 씨의 의견을 존중해야 했다. 셀파 호텔은 지난봄에 들러 하룻밤 잤던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주인장은 구면의 나그네를 맞아 은근히 반가워했다.

 

봄에는 침대가 여남은 개 있는 합숙방을 주더니 이번에는 별채의 안방을 치워 주었다. 널따란 판자로 벽을 댄 별채의 반은 술 빚는 광을 겸하는지 술독을 비롯하여 화덕이나 솥들이 놓여 있고 누룩 냄새가 그윽했다.

 

김 선생은 가능하다면 앙 다와의 배낭에 달고 온 텐트를 치고 싶다고 했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국내외로 취재 여행을 다니면서 민박도 많이 했지만 후진국의 허름한 산골 주막집에서 자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텐트 속에서 산뜻하게 자고 싶은 게 당연했다.

 

셰르파 호텔의 마당은 길가에 있고 비좁아 텐트를 치기가 뭣했다. 별 수 없이 별채에 여장을 푼 후 별채 앞에 있는 샘가에서 몸을 씻었다. 몸을 씻고 난 후, 이나 벼룩이나 빈대를 물리치기 위해 약국에서 박스로 사 온 산초(Sheetal 이라고도 함) 기름을 한 병 씩 나누어 들고 손 머리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발 등에 정성껏 발랐다.

 

우리는 지리나 데우라리의 롯지에서도 자기 전에 산초 기름을 발랐다. 그러나 산초 기름도 물것들을 완벽하게 방어하지는 못했다. 특히 소나 염소 같은 가축을 기르는 농가의 농막에서는 너무나 많은 벌레들이 덤벼들었다. 이 날 밤부터 덤비기 시작한 벌레로 인하여 3주 후 도보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온 몸에 1 백군데 이상의 물린 자국이 남게 되었다.

 

 

절쿠의 셰르파 호텔. 메리골드 꽃밭에서 지붕 위까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태양열 집열판을 달았다. 

 

셰르파 호텔의 내부. 맞은 편에 앉아있는 분이 주인장이다. 

 

셰르파 호텔의 앞 마당. 안주인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다. 

 

셰르파 호텔 주인 부부의 딸이다. 

 

 

절쿠 셀파 호텔은 몇 달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마당 가운데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 실이 생겼으며, 전부터 있던 위성 전화로는 국제 전화도 가능해졌다. 짐승의 분뇨에서 연료용 가스를 추출하는 장치도 생겼다. 전에 돼지우리가 있던 곳에 생긴 이 장치로부터 나오는 가스는 가느다란 관을 통해 부엌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파란색의 이 작은 불꽃은 압력 밥솥으로 밥을 짓기 충분했다.

 

주인 내외는 이른 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젊어진 것 같았다. 우중충한 겨울옷을 벗고 가벼운 옷차림을 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내전의 열기가 가시고 손님이 늘고 살림이 피면서 어느 정도 희망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에 뚝바(국물에 만 국수)와 셰르파 스튜를 먹는 중에 지난 밤 꿈이 생각나서 김 선생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꿈에 국수를 삶는데, 마지막 남은 국수 몇 가닥을 건져 찬물에 담그니 국수 가닥이 살아 있는 물고기들처럼 생기 있게 헤엄치는 꿈이었다. 김 선생은 아주 좋은 꿈같다면서 자신에게 팔라고 했다. 하마터면 팔겠다고 말할 뻔 했지만,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저녁을 먹고, 이 집에서 내린 맛 좋은 소주도 몇 잔 마시고 별채에 돌아와 누우니 셰르파 호텔의 확성기에서 티베트 비구니 스님의 염불 소리가 들려 왔다. 염불 소리는 그윽하여 자장가 같았다. 그 염불 소리는 계곡 건너편 마을에서는 물론 천상의 별들에게도 잘 들릴 것 같았다.

 

잠들기 전에, 꿈에 본 국수 가닥들이 다시 떠올랐다. 물고기들처럼 생기 있게 헤엄치고 있는 국수 가닥들 ……. <계속> 

 

 

가축 분뇨에서 개스를 추출하는 장치의 원천. 평소에는 저 푸른 갑바를 씌워 놓는 이유는 냄새가 심하기 때문이다.  

 

분뇨에서 개스를 얻어 부엌에서 밥하고 등불을 밝힌다는 안내장 등이 붙어 있는 판자벽. 

 

개스 버너와 압력 인도제 압력솥. 

 

 
절쿠로 건너가는 철제 현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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