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거나해진 주인장이 먼저 자러 간 밤중에 나이 든 사내들과 그들의 자식이지 싶은 소년들이 우루루 들어섰다. 이들은 이 마을에서 도보로 사흘거리에 있는 산중 마을에서 지리로 장을 보러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마일리 가웅에서 지리까지는 다시 이틀 거리이니 닷새를 걸어서 장을 보고, 다시 닷새를 걸어야 집에 도착한다. 한 번 장을 보려면 열흘이나 걸리는 진짜 궁벽진 산골 오지에 사는 사람들이다.

마일리 가웅의 한 소년이 자기 집 앞에서 피리를 불고 있다.  

 

물소리 세찬 마일리 도반의 시냇물을 건너 산비탈에 있는 마을 '마일리 가웅'에 도착한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마을 입구의 제법 번듯한 농가 앞에서 한 체뜨리 소년이 피리를 불고 있었는데, 앙 다와 씨는 그 농가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오늘 쉴 곳은 바로 여기라고 말했다.

 

점심 먹고 불과 20 분을 걸은 끝에 여장을 푼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몇 시간 더 걷고서 쉬자고 했더니 앙 다와 씨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집 말고는 5시간 이상 걸어 올라야 숙식할만한 집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직 정오 무렵이므로 5시간을 더 걷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니지만 다섯 시간 후에 도착하는 마을의 해발고도가 3500 미터 이상이라면 고소 적응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앙 다와 씨는 김 선생이 지어온 감기약을 이틀째 먹고 있는데도 낫는 기색이 없었다.

 

이 날 우리는 일찍부터 부엌의 화덕에 둘러앉았다. 앙 다와 씨는 자기 집 밖에서는 일체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느라 불만 쬐었지만 김 선생과 나는 결국 술을 마셨다. 결코 취하는 법이 없는 김 선생은 어느 정도 마시다가 그쳤지만 나는 상당히 취하도록 마셨다.

 

마일리 가웅의 셰르파 호텔 여주인이 만드는 떨커리.  

 

마일리 가웅 케살 바하둘 바스넷(43세) 씨의 3남 1녀 중 둘째 아들과 외동딸. 화덕 위의 솥에서는 옥수수죽이 끓고 있다.  

 

이 날 우리가 묵은 집은 체뜨리의 집이었다. 힌두 사회의 두 번째 카스트인 체뜨리는 첫 번째 카스트인 브라만처럼 술을 마시지도 않고 만들지도 않는다고 들었는데 마일리 가웅의 이 체뜨리 집에서는 술을 빚어 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장 내외도 술을 즐겼다. 술맛도 셰르파나 따망 집안의 술맛 못지않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장 케살 바하둘 바스넷(43) 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 이곳 마일리 가웅에는 모두 35 가구가 사는데, 그중 32 가구가 따망, 2가구가 셀파, 그리고 나머지 1가구가 우리 체뜨리 집이다.

 

얼핏 들으면 동문서답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대답은 '술을 워낙 즐기는 따망과 셰르파 마을에서 어울려 살다 보니 동화 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체뜨리 부부의 외동딸은 부모가 막걸리 잔을 입에 댈 때마다 근심스런 얼굴로 쳐다보았다. 안주인의 친정 여동생이라는 스무 살 처녀도 언니가 막걸리를 쭉 들이킬 때마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술이 거나해 진 주인장이 먼저 자러 간 밤중에 나이 든 사내들과 그들의 자식이지 싶은 소년들이 이 집에 들어섰다. 이들은 이 마을에서 사흘거리에 있는 어느 산중 마을에서 장을 보기 위해 지리로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마일리 가웅에서 지리까지는 다시 이틀 거리이니 닷새를 걸어서 장을 보고, 다시 닷새를 걸어야 집으로 돌아간다. 한 번 장을 보려면 열흘이나 걸리는 셈이다. 진짜 궁벽진 산골 오지에 사는 이들은 눈이 오면 길이 끊어지기 때문에 눈이 오기 전에 장에 가서 내다 팔아야 할 농산물을 팔고, 그 돈으로 겨울 생필품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닷새를 걸어야 지리 장에 가는 사람들이 사흘째 걸은 날 밤에 마일리 가웅의 주막에서 가지고 다니는 옥수수 가루로 옥수수 죽을 쑤고 있다. 

 

이들이 지리까지 등짐으로 지고 나가서 파는 물건은 감자 옥수수 말린 버섯 약초 등이며 사오는 물건은 소금 성냥 식용유 마살라 건전지 등이다. 이들은 주막집에서 밥을 사먹을 형편이 못 되므로 옥수수 가루를 길양식으로 지고 다녔다.

 

주막집 주인 식구들이 화덕 주변에서 물러나 잠자러 들어가자 먼 산골 마을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서 옥수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꿰맨 자루에서 옥수수 가루를 덜어내는가 하면, 쭈그러진 냄비에 물을 붓는가 하면, 장작 몇 개비를 안고 들어오는가 하면, 엉덩이 쳐들고 엎드려 후후 불어서 화덕에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연기가 매워서 눈을 비비는가 하면 ……. <계속> 

 

케살 바하둘 바스넷(43세) 씨의 처제와 외동딸. 처제는 먼 마을에서 다니러 왔다. 

 

 

케살 바하둘 바스넷(43세) 씨의 부인과 3남 1녀. 그리고 처제.  

 

집 앞 마당에서 아버지 대신 장남을 중심으로 단체 사진. 사진 왼쪽의 앙 다와 씨는 감기로 두통이 와서 이마에 수건을 두르고 있다.   

 

광에서 케살 바하둘 바스넷(43세) 씨의 외동딸이 꿇어앉아 맷돌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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