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 다와 씨에 의하면 불부레라는 지명은 '샘이 솟는 터'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손바닥을 내밀고 다섯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불부, 불부'하는 소리를 냈는데, 이는 바로 샘이 솟는 소리요 모양이라는 뜻이었다.

따굴릉의 카지 셰르파 씨의 장녀가 부엌에서 버터를 만들고 있다. <사진 김희수>  

 

따굴릉의 카지 셰르파 씨의 부엌 찬장. <사진 김희수>  

 

따굴릉의 카지 셰르파 씨에 의하면 이즈음 피케 지역은 낮 12시부터 구름이 끼기 시작하여 밤 12시가 되면 구름이 서서히 걷힌다. 새벽 4시 경에 소변보러 마당에 나와서 본 밤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도 없었다. 보라색이 감도는 쪽빛 하늘에 별들만 가득했다. 특히 하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은하수에는 별들이 하도 촘촘하여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도 없었다.

 

여명에 따끈한 차를 마시고, 아침 햇살이 따스하게 퍼지기 시작한 7시 경에 불부레를 향해 따굴릉을 떠났다. 따굴릉 능선에 난 길은 봉우리 하나를 남쪽으로 에돌아 반대편에서 오는 능선으로 접어들었다. 이 능선에서 피케의 정상부를 이루는 두 봉우리가 잘 보였다. 피케 너머로 설산 룸불 히말의 봉우리들이 햇살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불부레 능선에서의 기념 사진. 필자와 김희수 선생. 

 

불부레의 능선에 꽂아 놓은 지팡이에 매단 장갑이 깃발처럼 보인다. <김희수 사진>   

 

설산 룸불 히말이 피케 능선 뒤로 보인다. 불부레 능선에서 촬영.   

 

길 가운데 돌담처럼 세워진 판석마다 일일이 불교의 진언과 상징을 새겼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이러한 판석을 마니라고 부르고, 우리 불교에서는 석경(石經)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피케 현지인들은 마네라고 부른다. 

 

랄리구라스가 불부레에서도 자라고 있다. 

 

카지 셰르파 씨의 불부레 집. 

 

우리가 올라선 능선은 세 갈래 길이 있는 능선이었다. 하나는 우리가 따굴릉에서 온 길이고, 하나는 피케 쪽으로 오르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불부레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불부레에서 종일 쉬면서 고소 적응을 한 후 다음날 피케로 향할 작정이었는데 불부레는 킬로미터 밑에 있다고 했다. 서둘 필요가 없었다. 따스한 햇살과 맑은 공기, 후련한 전망, 그리고 정적…….

 

우리는 사진을 찍다 말고 설산을 향해 절을 세 번 하고 잠시 앉아 있었다. 삼거리에서 불부레 쪽으로 내려가는 길 가운데에는 폭 미터 가량에 길이 40-50 미터의 돌무더기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두 군데나 되었다. 영어권에서는 마니 월(Mani wall)로 부르는 이 긴 돌무더기를 이룬 돌은 대개 넓적한 판석이며 판석 하나하나에는 진언 '옴마니밧메훔' 또는 탑이나 보살 좌상 등 불교적 상징을 담은 이미지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러한 판석을 티베트 불교에서는 마니라고 부르고, 우리 불교에서는 석경(石經)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또한 마니로 만든 돌담을 석경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이 고장 셰르파들은 그것을 마네라고 불렀다. 나는 마네를 만날 때마다 반갑고 푸근한 무엇이 느껴졌다. 그 옛날 이것을 만든 사람들의 신심과 노고를 생각하면 경외감이 들기도 했다.

 

불부레에는 윗집과 아랫집 두 가구가 백 미터 쯤 떨어져 살고 있었다. 아랫집이 카지 셰르파의 본가인데, 본가라고 함은 겨울에는 소들을 데리고 내려와 사는 집이기 때문이다. 본가에 있던 카지 셰르파 씨의 부인 밍마 셰르파 씨는 앙 다와 씨를 바이(동생)이라고 부르며 반겼다.

 

앙 다와 씨에 의하면 불부레라는 지명은 '샘이 솟는 터'라는 뜻이다. 그는 손바닥을 위로 하여 내밀고 다섯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불부, 불부'하는 소리를 냈는데, 이는 바로 샘이 솟는 소리요 모양이라는 뜻이었다.<계속> 

 

불부레에서 피케 능선 너머로 본 설산 룸불 히말.

 

불부레의 마네. 피케 정상부 바로 밑에도 이러한 마네가 있는데 이 지역 셰르파들은 그것을 피케 마네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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