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그만 디카를 우모복 속 겨드랑이에 끼고서 샛별을 바라봤다. 샛별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면서 능선 주변의 하늘이 시시각각 오묘한 색채로 변하고 있었다.
기온이 영하일 때에는 배터리가 오래 가지 않는다. 그걸 잘 몰랐던 때에는 괜히 배터리 가게 주인만 욕했다. 사용 가능 기한이 다 됐거나 불량품을 팔았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내려가면 불량 배터리를 판 카트만두의 수퍼마켓 주인을 찾아가 따져보려고도 했다.
나는 내 조그만 디카를 우모복 속 겨드랑이에 끼고서 샛별을 바라봤다. 샛별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면서 능선 주변의 하늘이 시시각각 오묘한 색채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겨드랑이에서 디카를 꺼내어 한 두 방 찍고는 다시 겨드랑이에 넣어야 했다. 내 디카는 봄 순례 때 고장 나서 버린 것과 같은 기종이었는데, 김 선생이 옥션을 통해 10 만 원에 구입해 준 중고품이었다.
해가 막 솟아올라 금빛 광선이 실내 구석구석 파고드는 시간에 숙소로 내려왔다. 집 앞 문간에 깐 두꺼운 판자의 서리가 막 녹기 시작했는데, 이 집 막내딸이 맨발로 서리를 밟고 서있었다. 셰르파들이 추위를 견디는 인내심과 강인함은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길러지는가 싶었다.
한 이불을 덥고 자던 삼촌과 조카, 두 명의 앙 다와 셰르파도 그 때 막 일어난 것 같았다. 부엌의 탁자 위에 올려놓은 중국제 보온병에는 따끈한 소찌아(버터 차)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언 몸을 녹이느라 여러 잔 거푸 마셨다. 그리고 감자 졸임을 반찬으로 흰밥을 먹었다.
앙 다와 씨와 앙 다와 씨의 조카들이 짐을 꾸렸다. 감자, 라면, 식용유, 커리, 쌀, 비스킷, 버터, 차 등의 하루치 식량과 취사장비, 그리고 모포 두 장이 커다란 배낭 하나와 도꼬에 실렸다. 도중에 간식으로 먹을 감자조림과 비스킷은 내 배낭에 담았다. 무거운 짐을 졌을망정 소년들은 즐거워했다. 삼촌들과 더불어 캠핑 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길은 오르막이었다가 평탄했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올 때 본 두 곳의 석경담을 지나서 만나는 불탑이 있는 곳의 지명이 라무제라고 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여름철에는 야크 방목의 거점이 된다고 했다. 라무제를 지나 산 밑을 에돌아 안부에 이르니 또 다른 석경담이 나왔다. 이 석경담은 아주 길었다. 1백 미터 쯤 될 것 같았다. 석경담 밑에서 잠시 쉬었다.
바람이 불고, 뭉게구름이 산등성이를 휩싸며 달려와 안개가 되어 퍼지면서 해를 가렸다. 해가 구름 속에 숨자 추워져서 다시 걸었다. 경사가 급한 길을 지그재그로 올라서니 또 다시 석경담이 나왔다. 마침 구름이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기에 우리는 석경담 밑에서 또 쉬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