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마네의 치즈 공장은 사람들이 모두 철수하고 아무도 없다고 들었는데, 늙수그레한 사내 둘이 공장 부속 건물의 지붕에서 널판자를 뜯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다음날 목적지인 나울(Ngaur 3350 미터)의 치즈 공장에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높은 산에서는 구름의 모습이 시시각각 변한다. ⓒ김홍성 

 

피케마네의 치즈 공장으로 오르는 길ⓒ김희수 

 

피케 마네로 가는 능선에는 이런 마네들이 서너개 쯤 있다. ⓒ김홍성 

 

피케 마네와 치즈공장ⓒ김홍성 

 

앙 다와 씨는 이곳의 마네를 벽으로 쓰는 창고 같은 움막을 특별한 날에 스님들이 올라와 거주하면서 기도 하는 장소라고 했다. 현지의 셰르파들은 '피케 마네'라고 부르는 이 마네는 지도에 피케 베이스캠프(해발 3840 미터)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우리는 마침내 그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피케 마네에는 오래 전에 문 닫은 치즈 공장이 있었다. 피케 마네의 치즈 공장은 사람들이 모두 철수하고 아무도 없다고 들었는데, 늙수그레한 사내 둘이 공장 부속 건물의 지붕에서 널판자를 뜯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다음날 목적지인 나울(Ngaur 3350 미터)마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앙 다와 씨에 의하면 나울은 이곳 피케 마네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며 약 두 시간 거리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울은 피케 정상에 오르는 지름길의 길목에 있는 마을인데 어째서 멀리 에돌아 왔는가? 그쪽 길은 비탈이 심하고, 숙식할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으며, 고소 적응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앙 다와 씨의 답변이었다.

앙 다와 씨는 나에게 피케 베이스캠프에 문 닫은 치즈 공장이 있는데 사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었다. 그래서 카트만두에서부터 텐트를 짊어지고 왔으며, 어린 조카들의 발품을 사서 식량과 취사도구를 운반했다.

그러나 나울에서 사람이 올라와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이 임시 주막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앙 다와 씨가 우리를 속인 것은 물론 아니다. 산중의 인적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어서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에 대비한 수고를 아껴서는 안 되지만 허탈했다.  

 

가운데 반팔 차림의 소년이 나왕 딱바 라마. 맨 오른쪽 앙 다와 씨 옆에 챙있는 모자를 쓴 청년이 나왕 린지 라마. ⓒ김홍성

 

나왕 딱바 라마(16)와 지미 셰르파(14세)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김희수 

 

화덕 위에 올린 솥에서 라면이 끓고 있다. ⓒ김희수 

 

나왕 린지 라마가 라면에 넣을 양파와 파를 썰고 있다. ⓒ김희수  

 

앙 다와 씨가 피케 마네 치즈 공장 부엌에서 감자를 볶고 있다. ⓒ김희수  

 

지도를 보면, 데우라리 밑에 반달이 있고, 반달 동쪽에 차울라카르카라는 지명이 나온다. 여기서 강을 건너고 경사가 급한 비탈을 오르면 나오는 남켈리 마을에 숙식할 장소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또한 남켈리에서 나울로 오는 능선 길에도 곰파가 있고 마을이 있다.

남켈리에서 나울까지 하루에 걷기 어렵다면 중간의 마을에서 민박을 하면 된다.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기회가 되면 그 능선 길을 걸어 보고 싶었다. 지도에 의하면 그 능선은 멋진 설산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둡기 전에 두 늙수그레한 사내 중 한 사내의 손자라는 젊은 승려 나왕 린지 라마(17)가 나울에서 올라오고 두 사내는 나울로 내려갔다. 잠시 후에는 등산화를 신고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소년 승려가 또 나타났는데 그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트레커들의 짐을 지고 따라갔다가 킹쿠르딩 곰파로 돌아가는 나왕 딱바 라마(16)였다.

이날 밤 우리는 한 지붕 아래서, 한 화덕의 불을 이용하여 저녁을 지어 먹고 차를 마셨다. 나왕 딱바 라마와 지미 셀파는 두 살 차이의 사춘기 소년 소녀, 처음에는 데면데면하더니 금방 친해져서 서로의 주소를 교환하는 눈치였다. 

이런 산중의 밤에는 밥 먹고 자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다. 우리는 각자 누울 자리를 만들고 두 발을 길게 뻗었다. 김 선생은 치즈 공장의 테라스에 텐트를 쳤고, 나는 화덕 옆의 벽 쪽에 포개놓은 두툼한 널을 나란히 붙여서 침대를 만들었다.

 

피케 정상에서 본 룸불 히말. 세찬 바람이 구름을 잔뜩 몰고와서 룸불 히말 주변의 다른 설산들을 모두 가렸다. ⓒ김희수  

 

112일 밤은 그렇게 가고 3일 새벽이 됐다. 안개가 짙었다. 아니 피케 봉우리 전체가 구름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이 지역에 몇 차례 드나든 일이 있는 한 스님에 의하면 피케 정상은 네팔 히말라야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즉 동쪽의 칸첸중가에서 서쪽의 다울라기리 산군까지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곳 베이스캠프까지 오는 동안 내심 기대가 컸다. 날씨가 좋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산신령님 심기가 불편하셨는지 안개와 구름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바람마저 심하게 불었다.

앙 다와는 감기가 많이 누그러졌지만 나는 감기가 심해지고 있었다.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 올라야 했다. 차디찬 공기가 내 기관지를 거덜 내든 말든 기침을 컹컹하면서 올랐다. 이윽고 정상, 그러나 구름 때문에 조망이 어려웠고, 바람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아주 잠시 모습을 드러낸 룸불 히말만 촬영하고 서둘러 하산했다.

이날 우리는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약 한 시간을 올랐고, 하산하는 데도 약 한 시간이 걸렸다. 봉우리 꼭대기에 머문 시간은 약 10 분이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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