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가 좋기는요. 알면서. 선배님도 살아봐서 알잖아요."
부부란 무엇일까? 이 촌수조차 없는 인간관계란?
죽어 멀리 있는 길 떠난 자에게서 온 문자라니.

▲멈출 수 없는 그곳으로 모두 가는 길이 아닌가. 그리고 그는 먼저 갔다. ⓒ박인
▲멈출 수 없는 그곳으로 모두 가는 길이 아닌가. 그리고 그는 먼저 갔다. ⓒ박인

그날 나는 운전만 70㎞를 했다. 주행 시간은 총 4시간이었다. 경기도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문상을 갔다 오는 코스였다. 내비게이터가 친절하게 안내해 준 최적 경로는 아주 지루한 강변북로 퇴근길이었다. 30분간 시속 10㎞로 달리는데 중간에 멀미가 날 정도였다. 후배 K의 부음을 어제저녁에 전해 듣고 우선 황망했다. 나이도 어린놈이 뭐가 급해서.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황망함 뒤를 이어 미안한 감정들이 따라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한 번밖에 못 갔다. 병원비가 부족하다고 그의 아내가 전화했을 때 도와주지 못했다. 하다못해 막걸리 한 잔이라도 자주 안 사준 것까지 마음에 걸렸다. 후두암 말기에 입원한 K와 필담으로 나눈 달포 전 대화마저 마음에 걸렸다.

“형. 작년 봄날 아침이었어.”

“뭐가?”

“이놈이 내게 찾아온 것이.”

수첩에 글을 쓰고 K는 목 부위 호스를 넣은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게. 담배 좀 끊으라고 그랬잖아.”

“운명.”

K는 웃더니 마저 글을 마무리했다.

“먼저 가 있을게. 곧 따라와. 지옥에서 한잔합시다.”

“소식이나 전해주게.”

죽는 마당에 농담하지만 속은 타들어 갔을 것이다. 홀로 남을 K의 아내와 두 아이를 생각하면 내 속이 편치가 않았다. 나는 아직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지 않은가. 멈출 수 없는 그곳으로 모두 가는 길이 아닌가. 그리고 그는 먼저 갔다.

"평소에 두 분 사이가 정말 좋았다고 들었는데, 많이 힘드시겠어요."

장례식장을 나오는 길에 나는 후배의 아내한테 짧은 인사를 건넸다.

"사이가 좋기는요. 알면서. 선배님도 살아봐서 알잖아요."

그녀의 여유로운 표정에서 나오는 의외의 대답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내가 살아봐서 알고 있는 그것이 뭘까? 고만고만한 인생이 죽음 앞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말기 암 환자를 보내고 난 체념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이 결혼생활을 통해서 알게 된 경험을 나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박인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예전에 정신과 의사가 한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평소 사이가 무척 좋은 부부는 배우자의 죽음이 그렇지 않은 경우의 배우자에 비해 배로 힘들고 혼자 된 상황에 적응하는 시간도 길다고 했다. 그때 나는 신은 참 공평하시다는 생각을 하며 동전의 이면을 떠올렸다. 그럼 뒤집어서 말하자면, 사이가 나쁜 부부 중 홀로 남겨진 아내나 남편은 훌훌 털고 일어나서 오던 길 되돌아가면 되는가.

부부란 무엇일까? 이 촌수조차 없는 인간관계란?

인간은 불완전하고 외로운 존재이다. 미완성으로 끝나는 부부의 길. 그 길은 또 다른 우리로 채워지며 이어지고 있었다. 한여름 같은 무더운 봄날은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K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간 줄 알았다.

이틀 후 나는 K의 문자를 받았다. 죽어 멀리 있는 길 떠난 자에게서 온 문자라니. 나는 서둘러 문자를 열어보았다.

‘제가 가는 길에 와주신 여러분들에게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문자로 대신하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항상 사람들의 소중함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았던 저는 함께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저는 지금 하늘에서 환한 웃음으로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리라 믿고 살았습니다. 남아있는 가족들이 슬픔을 딛고 잘 살 수 있도록 죽어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랑 그 자체인 이 생애 마지막 길에 함께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생명이 가득한 오월, 행복하시고 기쁨만 가득하시길 바라며 저의 마지막 사랑을 담아 인사 올립니다.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끝>

박인 작가의 스마트 소설을 연재합니다. 스마트 소설은 빠르게 변하는 일상에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초단편 분량의 소설을 말합니다. 『문학나무』 신인상을 수상한 박인 작가는 단편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스마트 소설집 『네 여자 세 남자』(공저)를 펴냈습니다. 또한 다수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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