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라면 세 개를 끓여서 나누어 먹고는 회의를 벌였다. 밤이 깊었으니 주막집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 내려가자는 의견과 오히려 밤에 내려가는 게 좋다는 의견으로 대립되었으나 내려가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피케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 너머로 보이는 설산들. 왼쪽으로부터 1/3 지점에 보이는 설산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 m) 같은데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김홍성   

 

동쪽을 향한 비탈에 아침 햇빛이 들자 마을을 이룬 집들이 보였다. 피케 능선 뒤에 보이는 설산은 눔불 히말. ⓒ김홍성  

 

하늘은 오전 내내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김홍성 

 

저녁을 먹고 무료히 앉아 꺼져가는 아궁이 불을 쬐고 있는 중에 한 떼거리의 심상치 않은 나그네들이 들어왔다. 몸집이 좋은 중년 여성 한 명을 포함한 남자 7-8 명인데, 그 중 두 남자는 커다란 쿠쿠리를 배에 차고 있었다. 쿠쿠리를 찬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청년인데 가슴에 붉은 별 마크를 달고 있었다. 일행 중 셰르파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무전기와 휴대폰을 갖고 있었는데 앙 다와 씨의 동네 사람인 듯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라면 세 개를 끓여서 나누어 먹고는 회의를 벌였다. 밤이 깊었으니 주막집에서 자고 다음날 새벽에 내려가자는 의견과 오히려 밤에 내려가는 게 좋다는 의견으로 대립되었으나 내려가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의견이 이렇게 모아지는 데는 중년 여성의 역할이 컸다. 그녀는 몸집만 좋은 게 아니라 말솜씨도 보통이 넘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또루피(챙 없는 네팔 전통 모자)를 쓴 체뜨리 남자가 라면 세 개 값을 치르고 일어서자 다들 따라 일어섰다.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진 후, 그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며 이 밤중에 어디로 가는 거냐고 앙 다와 씨에게 물었다. 앙 다와 씨에 의하면, 그들은 마오이스트 공산당이며, 두 시간 거리의 마을에서 일어난 어떤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날 밤 앙 다와 씨는 모처럼 창을 몇 잔 마셨다. 조금만 마셔도 취하기 때문에 밖에서는 절대 안 마신다는 그가 술 마시는 건 이 날 처음 보았다. 다음 날이면 식구들이 사는 집에 도착하기 때문에 마음이 들떴는지 보통 때 같으면 눕자마자 코를 골았을 앙 다와 씨는 늦도록 잠을 못 이루고 몸을 뒤채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덜컹이는 창가에 별빛이 싸락눈처럼 쌓이는 바람에 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은 새벽부터 아주 청명했다. 설산의 일출을 충분히 조망한 후에 길을 떠났는데도 발걸음을 자주 멈춰야 했다. 오르막이 심하기도 했지만, 설산을 배경으로 한 풍광이 너무나 후련했기 때문이다. 김 선생이 배낭 깊숙이 감춰 두었던 코냑을 꺼내어 한 모금 씩 마시자고 했다.

이른 아침 햇살 속에서 양잿물처럼 하얀 설산을 바라보며 목구멍에 털어 넣는 코냑의 맛이란! 김 선생은 다음 기회를 위해 조금 남기고 싶어 했지만 내가 생떼를 써서 마저 마시고 말았다.

 

자프레의 곰파 ⓒ김홍성 

 

곰파에서 경을 읽는 스님들 ⓒ김홍성 

 

곰파 뒷마당의 마네와 탑 ⓒ김홍성 

 

그렇게 세 시간을 걸어서 1030 분에 자프레에 도착했다. 지난봄에는 비어 있던 곰파 앞에 노스님이 나와 계셨고, 어린 스님들이 경을 읽고 있었다.

지난봄에 들렀던 주막집 부인은 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봄에 본 그 부인이었는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부인이 새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반찬을 만드는 동안 나는 양말들을 빨아 널었다. 지난봄에는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등 날씨가 흐려서 전혀 보지 못했던 설산이 양말 너는 판자 울타리 너머에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었다. 지난봄에는 멀리 보이던 피케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밥이 되는 동안 햇살 속에서 잠시 졸았다. 곰파에서 소년 승려들이 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말았다 했다.<계속> 

 

자프레 주막의 부인이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서 잠시 앉았다. ⓒ김홍성 

 

자프레 주막의 부인이 마당에 나왔다. 설산들이 내려다 보는 마당에는 판석이 촘촘하게 깔려있고 판자 울타리가 둘러져있다. ⓒ김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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