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귀철 수의학박사 특별 인터뷰
2005년, 고가 씨수말 정책 적극 추진···이듬해 ‘메니피’ 도입으로 이어져
‘메니피’ 방광 결석 수술, 빠른 판단·의사결정으로 살려내
말 과학 기술 축적 및 전문가 양성 풍토 조성 바라

[말산업저널] 황인성 기자= 국내 최고의 씨수말로 평가받는 ‘메니피’가 6월 13일 아침 폐사했다. ‘메니피’는 한국경마 선진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그의 죽음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경마의 수준과 시스템을 한 단계 아닌 두 단계를 업그레이드시킨 경주마라고 평가할 만큼 그가 국내 경마에 미친 영향력은 방대하다.

‘메니피’의 죽음은 단순히 한 씨수말의 죽음을 넘어 한국경마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메니피’의 죽음을 기리며 그와 인연을 맺었던 말산업 관계자들을 만나 얽힌 이야기들을 엮었다. 가장 먼저 한국경마의 씨수말 사업의 첫 도입에서부터 획기적인 정책의 변화, 현재 씨수말 생산 정책의 기반을 닦은 최귀철 한국마사회 유캔센터 책임위원(수의학박사)을 만났다.

▲2012년 열린 제주 경매에서 2억 6천만 원에 낙찰된 ‘메니피’의 자마 경매 모습과 ‘메니피’의 모습(사진 제공= 최귀철 소장).
2012년 열린 제주 경매에서 2억 6천만 원에 낙찰된 ‘메니피’의 자마 경매 모습과 ‘메니피’ 자마의 모습(사진 제공= 최귀철 박사).

 

한국마사회는 2005년부터 기존 씨수말 정책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줬다. ‘고가 씨수말 정책’을 적극 추진한 것이다. 당시 씨수말 정책의 담당자는 생산지원팀장이던 최귀철 한국마사회 유캔센터 책임위원(수의학박사)으로 해당 정책의 기획부터 준비, 실행까지 전 과정을 도맡았다. 2006년 ‘메니피’ 검수와 도입을 직접 담당한 장본인은 아니지만 고가 씨수말을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담당자였으며, 한국마사회 씨수말 정책의 산증인이다. ‘메니피’ 도입 시에는 씨수말도입위원으로 관여했고, 한창 씨수말로 활동하는 시기에는 제주목장장으로 인연을 맺었다.

말산업의 꽃은 씨수말 사업

말 과학 기술의 최고봉은 노령마 사양관리

기술 축적 및 전문가 양성 풍토 마련되길

'메니피'의 모습(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메니피'의 모습(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메니피’가 23세로 폐사했는데.

▶한국경마에 기여한 ‘메니피’의 죽음이 이내 아쉽다. ‘메니피’ 같은 명마는 현재 국내에 도입하기 쉽지 않은데 한국경마에서 좋은 말이 사라졌단 사실이 가장 큰 안타까움이다. ‘메니피’와 동갑으로 국내 씨수말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엑톤파크’는 여전히 살아있다. 메니피의 경우는 생산농가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고 빗발치는 교배 요구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오랜 시간 한국경마의 보배로 남아있을 수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있다.

-‘메니피’는 2005년부터 한국마사회가 시행한 고가 씨수말 정책의 일환으로 국내에 도입됐다. 당시 담당자로 알고 있는데 고가 씨수말 정책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고가의 씨수말을 국내에 도입해 한국경마의 질적 향상을 이룬다는 경마 정책이다. 지금은 한국경마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파트2 경마시행국에 진입했고, 파트1 진입을 위한 도전을 펼치고 있지만 당시에는 후진적인 경마 시스템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1987년 씨수말 도입 정책이 시작됐을 당시에도 정책 기안자로 참여했었는데 그때는 호주에서 경주퇴역마를 사오거나 일본으로부터 기증받았었다. 당시 들여온 말이 호주에서 도입된 ‘킹스뷰우’, ‘밥타이즈’ 이다. 1989년부터는 미국으로 씨수말 구매 시장을 넓히긴 했으나 10만불이 넘지 않는 씨수말 구매가 대부분이었고 2004년까지 저가 씨수말 정책을 계속 유지했다. 2004년 하반기부터는 이대로는 안 되겠단 판단에 고가 씨수말 정책으로 바꿔 적극 추진했다.

-2005년 고가씨수말 정책 추진으로 어떤 점이 바뀌었나.

▶그전까지는 최대 30만불 이하의 씨수말을 국내에 들여왔으나 고가 씨수말 정책으로 바뀌면서 그 수준 이상의 씨수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첫 주자가 ‘엑스플로잇(EXPLOIT)’과 ‘커멘더블(COMMENDABLE)’였고 이듬해 도입된 씨수말이 ‘메니피(MENIFEE)’와 ‘비카(VICAR)’였다. 2004년까지는 에이전시를 통해 씨수말을 구매했기 때문에 시장 가격을 가늠하지 못했는데 2005년부터는 한국마사회가 직접 말을 검수하고 구매하기 시작하면서 선진 시스템으로 변경됐다.

2012년 1월 제거 수술을 통해 제거한 ‘메니피’의 결석의 모습(사진 제공= 최귀철 소장).
2012년 1월 제거 수술을 통해 제거한 ‘메니피’의 결석의 모습(사진 제공= 최귀철 박사).

 

-정책이 바뀌었다고 해서 단기간에 좋은 씨수말을 구매해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좋은 씨수말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안목이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한다. 2006년 당시 미국경마가 약간 침체기였다. 그래서 좋은 말을 우리가 꽤 구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생산된 말이 ‘엑톤파크’, ‘비카’ 등이 있다.

-고가 씨수말 정책 말고도 ‘메니피’와 인연이 있다고 하던데.

▶‘메니피’가 방광 결석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제주목장장으로 근무하면서 일련의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2011년 11월 초 ‘메니피’를 관리하던 말 관리사로부터 커피색 오줌을 뉜다는 보고를 받았다.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좌신에 직경 6cm의 낭상 구조물이 보였고, 직장검사로 원형의 딱딱한 구조물이 촉지됐다. 초음파와 직장검사로만 확진하기에는 어려웠기에 비뇨기계 내시경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 국내에는 그러한 장비가 없어 난처했다. 결국 현장 진료담당 직원의 기지로 인간용 내시경을 빌려 방광 결석이란 최종 진단을 내릴 수 있었고, 이후 개복 수술을 진행하려고 하니 경험이 전혀 없어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 씨수말 검수하러 다니던 시절 안면이 있던 미국 켄터키 우드포드 동물병원 측에 수술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고, 승낙을 받아 이듬해 1월경 안전하게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3~4시간의 수술에도 굳건했던 ‘메니피’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현장에 있는 말 관리사의 빠른 보고가 큰 도움이 됐으며 사람용 내시경을 빌려 진단했던 기지와 미국 말 병원의 의료진을 부르자고 결정한 빠른 의사결정이 ‘메니피’를 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2012년 제주 경매에서 ‘메니피’의 자마가 2억 6천만 원에 낙찰되는 순간을 직접 보면서 뿌듯함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메니피’를 기리며 하고 싶은 말은.

▶‘메니피’는 한국 경주마 생산에 한 획을 그은 대표적 씨수말이다. ‘메니피’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며 향후 국내 씨수말 사업이 한 층 더 진화하길 바란다. 과거에 비하면 국내 말 수의학이 상당히 진화했고 수준이 올라왔다. 뛰어난 후배들의 노력 덕뷔이다. 그래도 해외 선진국에 비하면 말 과학 연구와 치료, 사양관리 여건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또한, 말산업의 꽃은 씨수말 사업이고 말 과학 기술의 최고봉은 노령마 사양관리인 점을 주지했으면 한다. 전략적으로 말 과학에 관한 기술 축적 여건 조성과 함께 말 과학 전문가 양성의 토양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최귀철 전 말산업연구소장은 한국경마의 씨수말 사업의 개척자이자 실질적인 입안자이다. 특히 생산지원팀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획기적인 고가 씨수말 정책 변화를 통해 ‘메니피’가 국내에 도입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최귀철 한국마사회 유캔센터 책임위원(수의학박사)은 한국경마의 씨수말 사업의 개척자이자 실질적인 입안자이다. 특히 생산지원팀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획기적인 고가 씨수말 정책 변화를 통해 ‘메니피’가 국내에 도입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말산업저널 황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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