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 도핑검사소장 특별 인터뷰
‘메니피’ 국내 도입의 주인공···검수부터 보고까지 도맡아
제주목장장 재직 시, 정밀진단 통해 심장판막 질환 찾아
현장에선 특별관리 등 최선의 노력
"명맥 이어 국내 씨수말 생산 이어가야"

[말산업저널] 황인성 기자= 국내 최고의 씨수말이자 한국경마 대통령인 ‘메니피’는 영향력 만큼이나 인연을 맺은 이들이 많다. 지난 기사를 통해 고가 씨수말 정책을 마련한 최귀철 수의학박사와의 스토리를 실었으며, 이번 기사에서는 일선 현장에서 ‘메니피’를 검수하고 국내에 도입한 주인공 이현철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장을 만났다.

아울러, 작년 초까지 제주목장장으로 재직하면서 ‘메니피’와의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이현철 소장이기에 최근 ‘메니피’의 죽음은 애달프면서도 매우 안타까웠을 것이다. ‘메니피’가 한국경마와 함께할 수 있었던 국내 도입 과정부터 씨수말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전한다.

▲이현철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장은 ‘메니피’ 사후에도 한국경마의 경주마 생산은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썬데이싸일런스’와 ‘딥임팩트’처럼 뛰어난 씨수말이 배출되길 고대했다. ⓒ말산업저널 황인성
▲이현철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장은 ‘메니피’ 사후에도 한국경마의 경주마 생산은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썬데이싸일런스’와 ‘딥임팩트’처럼 뛰어난 씨수말이 배출되길 고대했다. ⓒ말산업저널 황인성

 

“‘메니피’, 한국경마의 행운”

“국내 씨수말 생산 활발히 이어가야”

-‘메니피’를 도입할 당시 헤프닝이 있었다던데.

▶미국 클레이본팜(Claiborne Farm)이라고 미국에서 TOP5 안에 드는 목장이 있다. 목장 주인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말 쪽에 관심이 많고 열정적이던 둘째 아들이 클레이본팜을 물려받았다. 반면, 말에 관심이 적었던 큰아들이 작은 규모의 스톤팜(Stone Farm)을 물려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메니피’가 스톤팜으로 함께 넘어왔고 우리와 만날 수 있었다. ‘메니피’가 클레이본팜에 있었다면 절대 우리가 제시한 가격에 국내에 들여올 수 없었을 텐데 운이 좋았던 거다. 당시 ‘메니피’는 훌륭한 혈통과 좋은 성적을 갖고 있었음에도 교배 두수는 적은 편이었는데 목장에서 잘 운용을 못했던 거다. 다행히 미국 내에서 후대 자마들이 막 뛰기 시작할 무렵 우리에게 팔렸고, 이후 미국 내 후대들의 성적이 꽤 좋았다.

-직접 스톤팜을 방문해 검수해보니 ‘메니피’의 모습은 어땠나.

▶우리가 씨수말을 산다는 소문이 퍼지자 각 목장에서는 우리가 살 수 있는 수준의 말들을 보여줬는데 그중에 스톤팜 ‘메니피’가 포함돼 있었다. 목장을 방문해 보니 말 관리는 잘 안 돼 있었다. 하지만 말 생김새 자체는 좋았다. 상당히 우람했지만 체구를 지탱할 수 있는 굽과 구절을 갖추고 있어 균형감 있게 보였다. 검수를 간 모든 이들의 눈에 들었다.

-‘메니피’ 검수 후 최종 구매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물론 있었다. 검수를 마친 뒤 국내에 복귀해 내부 절차에서 최초 보고를 포함해 서너 번 보고를 했야만 했다. 최초 검수 보고에서 우리 예산의 최대치를 써서라도 ‘메니피’를 구매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런데 중간에 재검토에 대한 지시가 있어 몇 차례에 걸쳐 추가 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속고 사는 거란 얘기가 회장님 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검수 현장에서 알게 된 해프닝을 포함해 회장님께 ‘메니피’는 경주성적이나 혈통, 모든 게 우리에게 딱 들어맞고, 클레이본팜에 있었다면 절대 못사는 말인데 운이 좋아 구매 기회가 온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메니피'는 한국경마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메니피에 대한 확신 없이는 힘들었을 텐데.

▶회장님께는 자신 있게 보고를 해서 결국 ‘메니피’를 사왔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됐다. ‘메니피’의 후대들이 잘 뛰어야 하는데 무조건 장담할 수는 없었다. 모든 조건이 들어맞았지만 100%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메니피’가 국내에 들어오고 난 뒤 미국에서 태어난 후대 자마들이 잘 뛰어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었고, 다행히 국내에서도 ‘메니피’의 자마들이 2세 데뷔 때부터 크게 활약하며 좋은 성과를 내줬다.

-‘메니피’ 이전에 씨수말들은 어땠나.

▶‘메니피’는 한국경마를 크게 발전시킨 최고의 씨수말이다. 그전에는 ‘자당’, ‘무패강자’, ‘쾌도난마’ 등 많은 특출 난 후대 자마를 배출한 ‘디디미’라는 말이 있었다. 1세대 대표 씨수말로 평가되는 말이다. 내가 사온 말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디디미’가 우리나라의 생산 수준을 한 단계 높여놨기 때문이다. 이전에 들여온 말들은 혈통이나 경주 능력 면에서 뚜렷한 말이 없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디디미’는 마주와 생산자들에게 혈통에 대한 개념 정립부터 다양한 생각의 변화를 가져 오게 했다. ‘디디미’는 첫 인상부터 남달랐는데 씨수말로서는 작은 말이었다. 흔히 콤팩트하다는 말을 쓰는 데 딱 그랬다. 검수하러 갔을 때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는데 처음에 '디디미'를 보고 마음에 들어서인지 이후에 본 말들이 눈에 안 들어오더라.

-‘메니피’는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씨수말인데 비해 ‘디디미’는 잘 모르는 이가 많은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씨수말로는 대성공한 말이었고 경마산업에서는 꽤 인정받은 씨수말인데 불구하고 후대 씨수말을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쉽다. 자마로 ‘무패강자’란 좋은 말이 있었는데 씨수말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당시 민간에서 미국 경마퇴역마를 들여오기 시작했고 아직 국내 경주마 수준이 많이 낮은 것으로 인식해 퇴역한 경주마를 인정 안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디디미’는 국내 경주마 생산에 있어 1세대의 역할을 충분히 한 말로서 평가됨은 당연하다. 

제주목장장 재직할 당시 이현철 소장이 직접 찍은 ‘메니피’의 모습(사진 제공= 이현철 소장).
제주목장장 재직할 당시 이현철 소장이 직접 찍은 ‘메니피’의 모습(사진 제공= 이현철 소장).

 

-‘엑톤파크’와의 일화가 있다고 들었다.

▶‘엑톤파크(현재 이시돌 목장 소유)’도 한국마사회에서 도입을 시도했던 말이었다. 고가 씨수말 도입 정책 당시 이말도 한국마사회 검수단의 좋은 평가를 받아 가용 가능한 예산 최대치를 제시했지만 마주가 조금 더 두고 보겠다고 해 못 산 말이다. 몇 년 더 기다려봤으나 자마들의 성적이 미국경마에서 잘 안 나왔고, 국내 이시돌 목장에서 마사회가 제시했던 것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사왔다고 들었다.

-‘엑톤파크’는 ‘메니피’와 같은 나이이다.

▶‘메니피’와 ‘엑톤파크’는 나이가 같다. 그런데 경주 성적 측면에서는 ‘메니피’가 단연 앞선다. 자마들을 보면, ‘메니피’는 단거리부터 중거리까지 강점을 갖고 있고, ‘엑톤파크’는 중거리보다 더 긴 경주에서 강점을 갖는다. ‘메니피’와 ‘엑톤파크’는 동시대에 경쟁했던 말로 미국에서 그리고 국내에서도 경마 자체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준 말들이라 할 수 있다.

-‘메니피’의 죽음이 아쉬운데.

▶‘메니피’는 사실 지병을 갖고 있던 말이다.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국내에 들어와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에 정밀 검진해본 결과 심장 판막 쪽에 이상이 감지됐다. 선천적인지 노화로 인한 질환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심장 판막이 완벽히 닫히지 않는 증상이 있었다. 질환에 대한 치료법은 없었고, 심장 관련 약물을 먹여 악화되는 것을 늦추는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는 ‘메니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이미 보고 계통을 통해 언제든 급사할 수 있다는 상황을 제주목장장 근무 당시 전했다. 그런 사전 보고때문인지 이번 ‘메니피’ 죽음에 대해서도 회사에서도 납득하고 이해하는 분위기이다. 나도 ‘메니피’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지병을 앓고 있어 결국 죽음에 이르렀구나 생각이 들었다.

▲‘메니피’의 모습(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메니피’ 동상 제작해야 한다는 경마계의 요구가 있다.

▶지금은 제주목장을 떠나왔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메니피’ 폐사보고 과정에서 회장님께서 먼저 ‘메니피’ 동상을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씀을 하셨다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참 고맙더라. 우리나라 경우는 사실 제주목장 내 연못에 말 동상 하나가 있는데 앞서 말한 1세대 씨수말 ‘디디미’이다. 이마에 별, 다리에 흰점 등 디디미의 외형을 본 떠 만들었는데 환경 개선 과정에서 현재는 덧칠해져 있다.

미국에서도 모든 씨수말의 동상을 만들지는 않는다. 나름 이름값을 하고 목장에 일정부분 기여한 공적을 가진 말 위주로 제작한다. 동상 하나하나가 목장의 전통이자 역사이다. 이번에는 비바람에도 망가지지 않도록 제대로 동상을 만들어 목장이 백년 이백년이 지나도 계속 기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메니피’의 후계 씨수말이 궁금하다.

▶‘메니피’의 우수한 피를 물려받은 씨수말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메니피'의 자마로 우수한 경주능력을 보여줬던 ‘경부대로’ 와 내년에 씨수말로 데뷔하는 '파워블레이드'가 기대된다. ‘메니피’가 너무 강하게 각인돼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교배 시장에서 인기가 괜찮은 걸로 알고 있다. ‘경부대로’ 자마들이 올해 처음 경주마로 데뷔하는데 성적이 잘 나와서 유명 경주마가 탄생한다면 '메니피'를 잇는 씨수말로 주목받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본다. 말은 자마가 태어나 경주 성적이 어떤가를 봐야하기 때문에 검증받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게 어려운 점이지만 경마산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한마디를 한다면.

▶그동안 말 목장들에서는 ‘메니피’ 자마의 유무에 따라 그 목장의 1년 농사가 정해진다고 할 정도로 국내 경주마 생산시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메니피’가 죽었지만 한국경마의 경주마 생산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일본의 ‘썬데이싸일런스’와 ‘딥임팩트’처럼 국내에도 ‘메니피’와 버금가는 아니 그보다 더 우수한 후계 씨수말이 배출돼 계속 한국경마를 발전시켜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니피’를 검수하고 국내에 도입한 장본인인 이현철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장은 2018년 초까지 제주목장장으로 재직하면서 ‘메니피’와의 특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멀리 서울에서 ‘메니피’의 죽음을 전해들은 그는 한국경마의 별이 진 데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지병을 앓고 있던 터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는 않는 상황이었다는 말을 전했다(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메니피’를 검수하고 국내에 도입한 주인공인 이현철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장은 2018년 초까지 제주목장장으로 재직하면서 ‘메니피’와의 특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멀리 서울에서 ‘메니피’의 죽음을 전해들은 그는 한국경마의 별이 진 데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지병을 앓고 있던 터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는 않는 상황이었다는 말을 전했다(사진 제공= 한국마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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