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한 달간을 끌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국 국무위원 후보자가 9일 정식으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지난달 9일 개각에서 지명한지 꼭 한 달 만으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권과 언론의 격렬한 반대와 검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조국이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앞으로의 정국이 요동치게 생겼다. 조국의 임명은 촛불 혁명이 제시한 개혁 중의 하나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공수처) 신설안 등을 이루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하지만 과연 장관 한 명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게 가능할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인데 검찰이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학교가 되었든 어디 가나 뿌리 깊게 박힌 조직 생리와 기득권 수호, 카르텔에 맞서 싸우는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회의적이다.

9일 오후, 신임 법무부장관 조국에게 임명장을 수여 한 후 문재인 대통령이 같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9일 오후, 신임 법무부장관 조국에게 임명장을 수여 한 후 문재인 대통령이 같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 우리 사회의 부패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은 불합리한 법과 제도나 규제가 아닌 바로 `부패 유발적인 사회문화'라고 한다. 학연, 지연, 혈연이라고 하는 연고주의가 우리 부패문화의 뿌리라는 것이다. 그중에서 출신 학교로 이어진 학연은 만악의 근원이다.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공통점 때문에 능력이나 성품과는 상관없이 선후배가 끈끈히 이어져 서로 밀고 당기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 사이가 되는 장소이다. 사회 나가서도 제각기 위치만 다를 뿐 뻔히 서로 알고 있는 사이에 누가 누구를 견제하고 비난하기 힘들다. 혈연이나 지연이 우연의 범위라면 학연 중 시험 쳐서 들어가는 곳은 정식 루트를 밟아 그 과정을 견디고 합격했다는 성취감과 우월감이 강한 연대를 형성하게 한다. 편법이나 부정에 예민한 이유가 여기 있다. 자신들만의 특수성과 정통성을 훼손 당했다는 자존심에 생채기가 입은 거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권 국정 농단의 시발점이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이라고 알고 있는데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을 치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대학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에서 촉발되었다. 어디서 감히 시험도 치지 않고 국내 최고의 여자대학교의 학위를 함부로 취득하면서 학교와 학위에 대한 명예를 떨어트리는가, 커트라인 위반은 즉 불공정, 참을 수 없다!

 

물론 동시간대에 같은 장소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동문수학했다고 사회에 나가서도 모두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니지만 동기만큼 어렵고 껄끄러운 관계도 없다. 코흘리개 소싯적 서로의 행적에 대해서 속속들이 너무나 잘 알면서 상대방이 아무리 입신양명해도 그걸 인정하고 지지해주기보다는 무시하고 비웃으며 가소롭게 여기거나 아님 학연의 빌미로 자신도 뭔가 이득을 얻으려고 하며 출세한 동기가 그걸 거절하면 대번에 쪼잔하고 매몰차며 의리 없는 놈 취급을 받아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고 매장된다.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소신껏 인정에 이끌리지 않고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초지일관 펼치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이번 조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유한국당 나경원 대표와 제주지사로서 후보 사퇴를 종용했던 원희룡 도지사가 서울대 82학번 동기이며 청문회에서 제출한 서류를 박박 찢어버린 김진태가 83학번으로 후배 그리고 청문위원들 중 여야를 막론하고 6명이 같은 학교 출신이다. 개인의 능력보다 인맥이 우선시 되고 접대와 청탁이라는 악순환이 횡행되는 그들만의 카르텔, 돈 없고 배경 없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되는 사회에서 공정을 그토록 갈망한 국민의 바람이 조국의 언행 불일치에 실망한 점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만큼 개혁의 아이콘, 청렴의 상징 정도의 이미지로 채색된 조국이었기에 배신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심했을 터 카르텔은 우리 사회 어디에든 독버섯처럼 자라 있다. 자기들만의 기득권으로 똘똘 뭉쳐 세력을 형성해 배타적이고 수구적이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히딩크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어퍼컷 세레모니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히딩크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어퍼컷 세레모니

학연을 중심으로 한 끼리끼리가 강하게 형성된 대표적인 집단이 예체능계이다. 예체능이라는 전문성과 특수성으로 일반인들이 판단하고 평가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높고 주관적인 잣대가 강하게 좌우된다. 일정한 기준이 없다는 건 그만큼 결정권자나 수장의 결정대로 좌지우지된다는 거. 그래서 선수 기용부터 음악의 미적 기준 책정이나 연주력 판단은 오롯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몇 명의 몫이다. 히딩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로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가장 확실한 점은 관계성에서 탈피하여 오로지 실력과 상태로만 선수를 선발, 그 선수에 맞는 위치에서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선수를 믿고 기용하며 능력과 포텐셜을 터틀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거다. 뽑았으면 믿고 맡겨야 한다. 조국이 과연 사법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까는 질문에 적임자냐는 어떤 이는 일면 서생이요 검사, 변호사, 판사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 안된다고 폐일언하지만 도리어 검사, 변호가, 판사를 하지 않아 내부 관계성이 희박하니 더 유력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기득권에 맞서 싸우다가 대업을 완수한 자는 찾기 힘들다. 그만큼 완고하고 뿌리가 깊다. 푸른 눈의 외국인인 히딩크가 월드컵 4강을, 지연, 학연 챙기기에 곪을 대로 곪은 롯데의 패배의식을 떨쳐내고 4강에 올린 사람은 전혀 연고가 없는 히딩크와 로이스터 같은 이방인들이었다. 음악계도 적나라한 조직 논리와 생존본능으로 똘똘 뭉쳐 있기에 그 음악계를 개혁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을 이룰 사람은 한국 음악계에 원초적으로 연고가 적은 자유로운 돈키호테 같은 자여야 할 터이다.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