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클래식음악이 유입된 후 1980년대, 미래 발전가능성이 높고 경쟁력이 있는 과목으로 예술이 꼽혔으며 이때 전국적으로 클래식교육기관이 지방의 전문대까지 확산되는 등 서구 클래식음악이 호황을 맞았다. 그때는 수요가 있고 가르칠 수 있는 자원이 많지 않았으니 유학만 갔다 오면 대학교수가 되어 취직이 가능했으며 음악이 예술로서 독립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천 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국내 경제성장 정체와 학령인구의 감소, 그리고 IMF를 겪고 난 후 사회의 고용불안정으로 인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예술보다는 안정적이고 보장된 직업으로의 사회관심의 선회, 그리고 실용음악의 위상정립과 그에 따른 수요급증, 한류 열풍으로 인한 다른 타 엔터테인먼트과에 밀려 음악대학, 예술대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

클래식음악은 우리 것이 아니라 서양 사람들의 음악이다 보니 한국에서의 클래식음악은 태동부터 향유층이 존재하지 않은 서양문물이었다. 그래서 교육기관을 통해 배우고 전수되어야 하는 학문이었다. 성악과는 노래를 배우는 과이긴 한데 우리말로 된 우리 노래를 배우는 곳이 아닌 외국의 노래를 배우는 학문기관으로 변모했다. 특히나 벨칸토 창법의 이태리 노래가 성악이 되어 버렸다. 이태리 오페라는 현지인에게는 대중들과 같이 호흡하고 즐겨 부르고 듣는 노래겠지만 문화적 배경과 생활풍토, 환경, 여건, 정서가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서까지 이걸 곧이곧대로 하면서 심하게 표현하면 우리나라 성악가들이 우리 노래를 놔두고 이태리 노래를 누가 이태리 사람같이 잘 부르거나 그들보다 더 잘 부르고 우리나라 판소리나 마당극에 비할 수 있는 오페라를 더 잘하냐 경쟁하고 집중하는 것이 클래식음악계의 현실이다.

인구감소로 필연적으로 줄어드는 학령인구는 아랑곳 하지 않고 노래면 다 같은 노래일진데 수요가 있고 대중들이 요구하는 현 트렌드에 부합되는 뮤지컬, 보컬 등은 취급하지 않으며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가 배우고 잘 아는 것만 전수하니 기존 대학이 구태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음악인들끼리 알아듣지도 못하는 노래 경연을 하면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고 선도적 제안을 할 새로운 음반이 출시되었으니 그게 바로 <한국과 중국의 愛를 노래한 소프라노 김지현(상명대학교 성악과 교수)1집>이다.

소프라노 김지현의 한국과 중국의 사랑을 노래한 1집 음반 커버
소프라노 김지현의 한국과 중국의 사랑을 노래한 1집 음반 커버

한국가곡을 녹음한 음반은 많은데 특이하게도 중국의 가곡도 같이 수록되어있다. 이번 음반에는 한국가곡을 대표하는 그리운 금강산(최영섭 작곡)과 우리 민요 아리랑을 소재로 한 3종류의 아리랑 그리고 안동의 명물 월영교에 얽힌 사랑전설을 노래한 <월영교의 사랑>(서영순 작시 & 이안삼 작곡)과 함께 중국의 가곡까지 포함되어있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이미 소프라노 김지현은 중국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성악가이다. 그녀는 구름관중을 몰고 다닌다. 그녀의 연주회 티켓은 금방 동이 나며 마스터클래스는 서로 배우려고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들이 고스란히 소프라노 김지현이 교수로 있는 상명대학교로 유입되면서 상명대학교 성악과가 중국 유학생들에겐 이태리 베르디 컨서바토리보다 더 가고 싶은 선망의 학교가 되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우리나라의 2~30여 년 전을 연상케 한다. 그때 유럽이나 미국의 저명한 음악가들이 한국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 때 우리가 그랬다. 서로 하나라도 더 배우고 서구의 선진음악문명을 받아들이려고 혈안이 되었으며 그때 형성된 관계로 인해 유학의 길이 틔어 음악대학 졸업 후 음악활동을 하려면 유학이 필수코스가 되어 버렸다. 내부경쟁으로 인해 다른 이와 차별성과 우위를 점하기 위해 더 높은 학위를 받으려고 공부했고 스팩을 쌓아갔다. 바로 그와 판박이 같은 상황이 지금의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게 바로 신한류이며 그 신한류의 선두주자가 소프라노 김지현이다.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곡 리스트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곡 리스트

중국은 성악인구만 일천만 명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이번 학기에는 중국음악원에서 2명이나 상명대로 유학을 왔는데 상명대 재학 중의 중국유학생의 전언에 따르면 중국에서 중국음악원 가기가 한국에서 서울대 가는 것보다 천배는 더 어렵다고 한다. 한국 클래식음악계의 탈출구이자 블루오션이며 레슨-입시-학위취득이라는 구시대적인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 그리고 유학생을 통한 음악대학의 중흥기를 소프라노 김지현이 개척하고 있다. 중국에선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태리 노래가 일 순위가 아니라고 한다. 중국의 정서와 현 시대의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음악장르를 모색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창작음악계가 공급해주면 되니 좁디좁은 내수시장을 넘어 우리 창작가곡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훌륭한 작품과 가수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우리가 이태리어, 독일어로 된 노래를 부르듯이 중국인들이 우리 가곡을 애창 할 것이다. 실로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10월 18일 금요일, 장천아트홀에서 열리는 소프라노 김지현과 그녀의 중국인 제자들이 부르는 한국가곡의 향연
10월 18일 금요일, 장천아트홀에서 열리는 소프라노 김지현과 그녀의 중국인 제자들이 부르는 한국가곡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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