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기준이 출연한 19일 목요일 밤 방영된 KBS 2TV '해피투게더4'에서 엄기준이 자신의 공연 후기, 댓글 반응을 보지 않게 된 계기를 언급하면서 작품을 비하(?) 하는 후기를 읽었는데 어떤 부분에 대해 왜 안 좋았는지 상세하게 써 논 후기에 실명으로 '그러면 네가 직접 와서 연출해라'라고 댓글을 남겼다고 말하면서 그걸 출연자들이 박장대소하는 장면이 나왔다.

십수만 원을 내고 보러 간 뮤지컬 공연의 완성도에 실망하여 어떤 부분이 어떻게 안 좋았는지 관객 나름의 상세하게 비평한 글을 악플로 취급하여 반말로 답한 것에도 모자라서 그걸 무슨 자랑이고 웃으게 소리라고 공중파 방송에 나와 공개적으로 까발리는 행태에 사실 어이가 없었다. 물론 인신공격이나 비하, 생트집 잡기, 막무가내식 끌어내리기는 삼가야겠지만 비판에 대한 반론을 해야지 직접 와서 연출하라는 전형적인 감정적인 답글은 돈 내고 가서 먹은 식당에서 음식 맛이 없다고 하니 그러면 네가 직접 해서 먹어라, 대중교통 기사가 운전을 잘못해서 불편하면 네가 직접 해라, 병원에 가서 진료받은 게 어디가 불편하다고 하면 그러면 네가 앞으로 치료하라라고 맞받아친 거나 마찬가지인 아주 유아독존적인 언행이다. 특히 대중의 관심과 사랑으로 돈 벌어먹고사는 연예인, 배우, 가수, 음악인 등의 소위 공인이라고 일컫을 수 있는 직종의 사람들이 그런 식의 응대는 안타깝기만 하고 자기 세계에 갇힌 꼴이다. 공연예술계의 거장 중 한 분은 '돈을 벌지 못하는 모든 예술은 아마추어다'라고 일갈하고 훈계하신다. 취미생활이자 레저라는 의미다. 특히나 그런 비평이 아주 희소하고 거의 없다시피한 영역이 클래식 음악계인데 그건 바로 클래식 음악이 시장이 없고 듣는 사람이 없는데 기인한다. 끼리끼리 전공자들끼리 모여서 십시일반 운영하고 공연하고 자기들끼리 인정하고 모여서 손뼉 치고 위로한다. 성사시킨데 의의를 두는 거고 자기 돈 내고 무대에 올려 스스로 만족하고 계속 자립과 독립하지 못하고 자신의 살을 깎아 먹으면서 재생(再生) 한다. 그런 판국에 올바른 비평이나 공유와 공감이 생성될 수가 없다.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타인과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삶은 너무나 고독하고 적막하다'라고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저서인 '국가란 무엇인가'에 서술했다. 즉 클래식 음악인들은 영원한 타자다.

그런 마당에 누군가 자신의 연주나 공연에 대해 칭찬이 아닌 그 외의 모든 언급에 대해선 상처받고 원망하며 견뎌내지 못한다. 진정 어린 애정이 뒷받침된 조언이나 비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힘들게 고생고생해서 한 것을 인정해주지 않고 남들 다 좋아고 하는데 당신만 그렇게 삐딱선을 타느냐'라고 항의하고 원망한다. 좋다는 말, 박수갈채와 맹목적인 환호에 그렇게 목말라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긴장과 떨림을 감추고 관객들의 브라보에 용기를 얻고 추켜세우는 말에 어린아이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그들의 성취와 평생에 걸친 학문과 공부의 성과에 그렇게 목말라 있고 피드백이 전무하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음악회 후기를 남기고 비평을 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당하게 될 적지 않은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해야 된다

탁계석 음악 평론가가 설명하는 음악비평사, 사진제공: 더플랫폼
탁계석 음악 평론가가 설명하는 음악비평사, 사진제공: 더플랫폼

그래서 음악비평은 다른 영역에 비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영향력도 없고 하는 사람도 없고 체계적으로 배우고 정립하지도 못했다. 영화나 미술 평론가들의 강력한 영향력, 그들의 말 한마디에 영화가 흥행이 되고 말고를 결정하는 그런 팬심과 티켓파워의 향방을 가로매김하는 지침과 안내판도 없다. 문학 서평의 그런 치열함도 없다. 음악인 자체가 자신의 연주에 대해서만 귀를 쫑긋하고 눈을 크게 뜨지 다른 음악인들의 연주는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폄하와 무시한다. 나와 비슷한 레벨의 사람들, 같은 과정을 겪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행적에 대해 1도도 관심 없고 자기것만 챙긴다. 클래식을 듣는 사람도 없고 들어도 모르니 일반인들이 후기를 남기면서 서로 의견과 감정을 나누기도 힘들고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끼리 전공자들끼리 우월감에 취해 떠들고 시장이 없으니 학계의 인물들의 평가에 전체 클래식 음악 생태계가 되어 버렸다.

19세기 후반을 풍미한 독일의 음악비평가 한슬릭
19세기 후반을 풍미한 독일의 음악비평가 한슬릭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해 말로 소개하고 알리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좋고 나쁜 연주와 공연을 가려내는 작업 또한 누군가는 해야 한다. 옥석을 구별하고 정도를 제시해야지 건강한 음악계가 유지된다. 음악 감상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음악과 듣는 자 사이의 끊임없는 교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수준 높은 협동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뮤지컬이나 연극, 영화를 보고 후기를 남기고 입소문 마케팅이 가능한 지경은 클래식 음악 종사자로서 그저 부럽기만 하다. 호평에만 목매달지 말고 용기 있게 비평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전문가와 예술인 그리고 그 비평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 때에야 만이 관객도 비싼 돈 내고 거기에 맞는 음악을 들을 권리가 생기고 음악인도 자립하고 걸기에 걸맞은 수준 높은 연주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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