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9일 토요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려

못 들어갈뻔했다. 시간에 맞춰 리사이틀홀에 가니 로비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어 설마 토요일 오후의 작곡 발표회에 온 관객들일 거라 예상은 못 하고 그저 콘서트홀에 가는 사람들이겠지 여기며 카운터에 문의하니 매진이란다. 순간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머릿수 채워주려고, 응원해주려고, 눈도장 찍으려고, 초대받아서 등의 이유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교수의 연구발표회나 귀국독주회, 학회 연주회 등의 용도변경된지 오래인데 필자 같은 음악인이 굳이 들어가서 자리 차지하지 않더라도 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었다니 도리어 경사다. 이렇게 음악인이 음악인 행사에 안 와도 될 정도로만 후원과 흥행이 이어지면 그 어찌 기쁘지 않으리. 입장을 포기하고 밖에서 차분히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감상하려고 레코드 가게 앞의 의자에 앉아 있다 후덕하신 작곡가 선생님과 그분의 따님인 소프라노 선생님 덕에 감사하게도 표를 구해 들어 갈 수 있었다.

발표회를 끝나고 모든 출연진들과 커튼콜
발표회를 끝내고 모든 출연진들과 커튼콜

신동수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산아>를 비롯 조창희 시인의 <산여울>과 <짝사랑> 그리고 작곡가 신동수 본인이 작사한 <마지막 사랑> < 내 님을 위해서라면> 등 총 18곡의 신동수 음악 인생이 집대성된 테너, 바리톤, 소프라노, 그리고 2중창을 위한 주옥같은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가 발표되었다.

하나의 곡이 전파되고 보급되기 위해서는 곡을 전달하는 가수와 연주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아무리 뛰어난 명곡이라도 진가가 발휘되지 않을 수 있으며 하찮은 작품이라도 번드레하니 빛을 발할 수 있기에 연주자들이 얼마나 곡을 완벽히 파악하고 숙달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연주자들도 사람인지라 평생 수백 곡의 레퍼토리를 자유자재로 마스터할 수 없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몇 개의 곡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다. 평생에 걸친 주요 프로그램이야 입시와 콩쿠르 등 학창시절에 습득한 곡들이 대부분인데 그건 그 곡에 그만큼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말 그대로 피땀 흘려 연마한 결과물이다. 기성 음악인이 되어서 그리고 사회적인 요구로 새로운 곡이나 현대의 창작품을 연주할 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하는 독창회나 독주회 또는 아카데미 범주에서의 인정을 받기 위한 협회나 학회 또는 대가들과의 협연과 똑같은 비중과 마음가짐으로 연습을 했느냐 하는 상황에는 다분히 회의적이다. 곡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곡을 자주 연주했느냐는 횟수와 함께 일정 기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에 10시간 연습했다고 열흘 만에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18곡 중 17곡을 반주한 피아니스트 박유나의 인사를 받고 있는 작곡가 신동수
18곡 중 17곡을 반주한 피아니스트 박유나의 인사를 받고 있는 작곡가 신동수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음악회의 백미는 역시 <산아>였다. <산아>는 20세기 후반 한국 창작가곡 중 최대 히트곡의 하나로서 아마추어들까지 애창할 정도로 사랑을 많이 받고 잘 알려진 곡이다. 그러서였는지 부르는 사람도 여유가 있고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노래를 능숙하게 완급조절하였다. 그건 그만큼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들도, 알고 부르고 듣는다는 방증으로 한 작품의 뿌리내림에 시간의 필요성과 생동하는 완숙미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예였다.

인터미션 때 옆자리의 작곡가 이순교 선생님과 한국 가곡의 낮은 보급률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로 교육기관에서의 불수용이라는 공통된 합의에 이르렀다. 음악과 노래가 좋아 전문적인 학습과 진로를 위해 선생님을 만나니 포괄적인 음악을 가르쳐 주는게 아니라 발성과 외국 노래를 가르친다. 성악가가 성악을 가르치고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도제식으로 전수하니 기교만 이어진다. 이론과 철학, 음악인으로서의 자세 등, 테크닉 외적인 특히나 음악을 제일 처음 시작할때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기본에 소홀하고 또 거기에 집중하면 대학진학이 힘드니 공식 외우고 문제만 들들 풀어 암기하여 시험에 붙어 대학가는 꼴이다. 음악대학에 들어가려면 고3학생들 또는 이제 겨우 19-20살 먹은 사람들이 우리 언어와 노래 대신 생판 듣도 보도 못한 이태리, 독일어를 익혀야 한다. 그래야지 성악과에 진학할 수 있다. 그리고 들어가서 이태리나 모차르트 등 주로 19세기 시대상을 기반한 오페라를 한다. 그리고 졸업하고 유학 가고 다시 귀국해 후학들을 가르친다. 그럼 우리 노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배울 필요가 없고 할 필요가 없다. 어디에도 주류로 낄 자리가 없고 할 필요도 없으니 어렸을 때부터 대중가요 아니면 이질적인 외국 아리아, 가곡으로 양분되며 가곡은 중장년층이라는 즐기는 음악이 되어버리고 그때나 돼서야 찾는다는 주기의 반복이다.

소원성취하는 작곡가 신동수
소원성취하는 작곡가 신동수

쇼팽에게 왜 가곡이 드문지 아는가? 그건 바로 자신의 사후 100년이 지난 다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신동수라는 사람에 의해 자신의 낭만성이 계승된 가곡이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일부러 안 쓴 것이다. 그 정도로 작곡가 신동수의 가곡들은 낭만과 서정의 결정체였으며 그의 음악적 뿌리는 슈베르트, 쇼팽, 슈만 등의 19세기 낭만파 작곡가에 기반을 둔 선율과 화성이었다. 슈베트르의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 2번인 '병사의 예감"(Krieger's Ahnung)이 연상되는 신동수의 대표작 <산아>를 비롯하여 자신의 시적 감수성이 십분 발휘된 <마지막 사랑>같은 곡은 감미롭고 영롱했다. 이런 서정 가곡은 음악대학 졸업 후 독일이나 미국으로 유학 가지 않고 한국에서 터를 닦은 중고등학교 음악선생님들을 통해 가곡이 계승되고 실생활의 참여와 생활예술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의 아카데미라는 범주에서 현학적이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듣지 않아 관계자 2-30명 놔두고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심포지움, 학술 발표회하는 그런 자아도취에서 벗어난 진정한 음악사랑이자 인생이다. 그래서 오늘은 육십평생 첫 단독 작곡발표회에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노래부르고 피아노 쳐 보고 싶어했던 작곡가의 2가지 소원이 모두 성취된 자리였다. 자신의 히트곡이자 아버지가 작사한 <산아>를 직접 부르고 자신의 음악적 원천인 쇼팽의 낭만성의 절정인 <전주곡 4번>과 함께 <연습곡3번>을 메들리로 치면서 앙코르를 장식했다. 오늘 음악회의 마지막 곡인 쇼팽 연습곡 3번의 부제가 <이별의 노래>라는 걸 알면 오늘 신동수 작곡발표회의 부제인 <사랑, 이별, 그리고 그리움>의 접점이자 회후임을 알 수 있다. 사랑, 이별, 그리움의 대상은 동경하는 쇼팽일 수 있고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질 작곡가 신동수의 서정가곡의 주 대상이기도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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