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24일 토/일요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거대한 권력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의 삶을 내밀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낸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소설 ‘시대의 소음’은 스탈린 치하 러시아에서의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을 드라마틱 하게 그려내고 있다. 공산 체제의 어용 음악가에서 시대의 반항아까지 당신에게 떠오르는 쇼스타코비치는 어떤 인간상인가? 일신의 성공이나 명예를 위해 체제와 타협한 공산주의자인가? 아님 치열한 내적 갈등 속에서 시대와 싸우고 타협하면서 자신의 예술을 끝까지 지킨 인물인가? 11월 23일-24일 토/일요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연주회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11월 23-24 양일간 오후 5시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11월 23-24 양일간 오후 5시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10월엔 서울시향과 고양시 교향악단에 의해 1주일 간격으로 생상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이 연주되더니 이번에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이 야나첵 필하모닉(11월 15일 금요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과 서울시향(11월 23-24일 롯데콘서트홀)에 의해 또 1주일 사이로 울려진다. 러시아 토속적 색채와 넘치는 생명감,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박진감과 유머러스함, 전통적인 3악장의 형식을 취하고 잦은 대위법의 구사로 작곡된 1920년대의 사조인 신고전주의 경향도 보이는 5개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하고 황홀한 판타지로 중무장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며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등 러시아 레퍼토리에 정통한 작품 연주로 알려진 니콜라이 루간스키(Nikolai Lugansky)가 역시나 소련 공산주의 시대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살았던 프로코피예로부터의 굵고 잔인한 이념에 관한 대답을 먼저 들어보는 기회가 주어진다.

1930년대 초반 쇼스타코비치는 당으로부터 '소련 국민 작곡가', '천재 작곡가' 칭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36년 1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필자에겐 쇼스타코비치 최고의 역작이다)을 관람하던 스탈린이 공연 도중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하며 자리를 떠나는 사건이 발생하고 다음날 소련의 기관지 '프라우다'는 스탈린의 지령으로 이 작품에 대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어긋나며 지극히 부르주아적이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는 혹평과 함께 공연 금지 처분을 내려진다. 소련 당국의 비판이 이어지며 쇼스타코비치는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히며 일약 소련의 최고 국민영웅에서 염세적인 물질의 노예이자 인민의 적인 부르주아의 대변인으로 몰락하면서 갖은 비난과 수모를 당한다. 그리고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교향곡 5번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교향곡 5번의 부제는 "당국의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이었다.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편이면서도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예술, 지난 정권 하의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도 정권에 비우호적인 문화·예술인을 탄압·규제하기 위해 비밀리에 작성한 명단을 작성해서 국가 차원에서 불이익을 주고 문화예술인을 억압했다. 예술가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저항한다. 소음 대신 침묵이 들어섰을 때 약동하는 생명력은 잃고 예술은 권력의 주구이자 어용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권력자는 꺼림칙하고 수하로 둘 순 없지만 예술가를 꼭 곁에 두면서 권력의 정당성과 미화를 추구한고 예술은 그 옆에 기거하면서 생존을 보장받는다. 그래서 불가근불가원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타협을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은 포기하지 않는 지극히 어렵고도 험난한 길을 간 인물이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라는 어느 책 속의 문구처럼 평생을 인간적 갈등과 번민에 시달려야 했던 한 예술가의 고독하면서도 갈등의 삶과 음악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위대한 예술가의 답변을 11월 23일 토요일 오후 5시 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가 지휘하는 서울 시향의 연주로 직접 들어보자.

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 사진제공: 서울시향
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 사진제공: 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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