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일련의 작곡가들과 작은 해프닝이 있었고 이번 편 음악살롱을 본 시청자 중 한 분이 댓글로 한국의 창작 현대음악에 대해 다루어주라는 요청도 있고 이번 주 금요일(2월 21일)에 서울시향이 베를린 예술대상을 수상한 재독 작곡가 박영희 <고운 님>도 연주해서 겸사겸사 한국의 창작 현대음악에 대해 고찰해본다.

20세기 후반 독일 작곡가 슈톡하우젠의 '피아노조곡 10번' 악보
20세기 후반 독일 작곡가 슈톡하우젠의 '피아노조곡 10번' 악보

 

노래를 부르고 싶어 음악대학에 진학을 위해 레슨을 받으러 갔더니 본인이 하고 싶은 장르와 노래가 아닌 '외국어'로 되어있는 노래로 발성을 배우는 게 성악 입문의 시작이다. 그래야지 학교에 들어 가는 관문인 입시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 자신의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는 외국 노래를 익히는 그 행태와 똑같게, 작곡을 하고 싶어 입시요강을 살피니 일단은 3부 형식, 또는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에 맞춰 법칙과 요령부터 배우게 된다. 작곡가로서 출발부터 '창의, 자유, 혁신'이라는 필수적인 창조의 개념과 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감동아 아닌 규칙을 강요받는다. 그럼 대학을 안 가고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면 되지 않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4년제 대학을 안 가고 음악을 한다는 건 그저 '딴따라' 취급을 받았을 뿐이었다.

4년제 음악대학 작곡과에 진학하게 되면 각 학기마다 과제곡이라는 명목하게 여러 악식을 배우고 익히게 되는데 양식이라는 게 그에 맞춰 하나 간신히 써 봤다고 완벽하게 체화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건 말해봤자 무의미하다. 즉 적어도 가곡이라면 10개는 써보고, 푸가도 100개, 낭만 화성으로 피아노 곡이나 기악곡을 여러 곡 써보면서 학습해서 숙달해야 되는 도제식, 수공예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Handwerk, 예술을 뜻하는 ART의 어원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경구의 참의미는 베껴라가 아니다. 듣고 흉내내고 사보하고 베끼는 작업(이게 작곡 공부의 정도)을 부단히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 대로 변형을 하는 뼈를 깎은 반복적인 트레이닝이 필수라는 뜻이다. (그래서 조정래 작가도 자신의 문하생, 심지어는 며느리에게도 태백산맥 전권을 필사하라고 시켰다. 사실 그런 대작가의 장편이나 명작을 엉덩이 붙이고 앉아 연필로 2-3번만 필사하면 작가로서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하는 건 명백하다.) 그런 기본적인 학습 없이 3학년 정도 되면 곧바로 현대음악이라는 20세기 음악 작업을 강요받는다.

현대음악전문연주단체, 앙상블 '소리'
현대음악전문연주단체, 앙상블 '소리'

 

유럽의 현대음악은 엄연한 역사의 계승이자 시대의 발전이다. 음악적 유산이 축적되고 현재 세대가 자신의 전 세대, 즉 아버지, 할아버지가 썼던 음악 대신 자율적이고 독창적인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내고 선도하고 싶었던 발전의 개념인데 우린 역사적으로 그런 유물이 없다. 왜? 우리 것이 아닌 외국의 음악을 불과 120여 년 전에 들여왔기 때문이다(이게 한국 클래식 음악의 시작이자 한계다.)

이때 3가지의 갈림길이 있다. 선배들이 들여온 몇몇 소수만의 음악에 적응하고 편입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변화시키고 환골탈퇴되어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까지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학교라는 학계에 머무는 길, 그걸 부정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감성적이며 시대와 소통하는 음악을 쓰는 길, 아님 아예 작곡을 안 하고 다른 진로로 빠지든지 이렇게 3가지다. 한국 작곡가들이 끊임없이 시도하고 공부해도 성공하기 힘든 것은 유럽 음악의 타자에서 주체로 변화하여 자신의 동질성을 획득하는 작업일 것이다. 이는 서양인과 같은 수준으로, 또 같은 맥락에서 서양음악문화의 뿌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을 의미한다. 더욱이 서양음악 전통의 정수를 이해함에 있어서 유럽인들보다 더 뛰어난 면모를 보이지 않으면, 인정받기 힘든 어려움을 동반할 것인데 그런 고통의 과정을 거쳐 그 수준에 올라왔다 하더라도 정작 그들의 모국에서의 불수용과 음악감상시장의 부재 그리고 그것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교육기관의 몰락으로 영원한 아웃사이더, 비주류, 고독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배워오고 할 줄 아는 걸 보호받고 지킬 수 있는 공간에 취직한 아주 몇몇 만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며 전통과 아카데미라는 명목하에 후대에 계승하려고 노력한다. 그것도 이제는 학령인구감소와 숨 가쁘게 변하는 사회의 트렌드에 부합되지 않아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이나 마찬가지다. 비서구 작곡가들이 서양음악 엘리트계 속에 들어가 그들과 같은 레벨에서 경쟁을 하는 데 가장 힘든 첫 장벽은 서구 음악의 기법과 이론을 그들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하는 것일 거고 그 경지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시대와 세대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서양음악의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서구 음악의 ‘타자’로서의 존재를 당분간 유예시키고, 스스로를 서구문화와 동일시하는 노력을 부단히 해낸 결과라 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즉, 음악가는 깊숙이 서구 음악계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자신의 문화와 다른 서구 음악문화의 타자로서 머물 수밖에 없다고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다만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을 뿐이지...

1세대 한국 서양음악 작곡가 윤이상과 정율성
1세대 한국 서양음악 작곡가 윤이상과 정율성

 

지나친 예술성과 현대성, 급진성의 추구, 서구 현대음악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답습으로 인한 우월감의 발로로 대중과 완전히 결별해 버린 한국 현대 창작음악에서 음악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작곡가들이 도리어 각광을 받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현대음악, 클래식이란 한정된 산물을 받아주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전파했던 음악대학이 무너지고 지금 희미해져 가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지키고 싶은 몇몇만이 남았으며 학교도 거센 외풍에 흔들려 클래식을 포기하고 있다. 인구감소로 인해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겠단 사람보다 많아져 버린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현실 앞에 지금까지의 일방적인 독주가 아닌 수요자의 욕구에 의해 학교가 변하는 소비자 위주의 자본주의 사업의 형태가 되어버렸다. 현대음악 배우겠단 사람이 없다. 아니 클래식 작곡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클래식/현대음악이라는 테크트리를 답습한 사람들은 대학에서 강의하나 맡기 힘든 여건이다. 연주하지 않고 듣지 않은 음악의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동종업계 종사자인 연주자들도 거부하고 어쩔 수 없이 돈 받고 오브리 식으로 하는 창작곡 발표회에 언제까지 희망이 있겠는가? 그래서 제안한다. 한국 창작현대음악 들어보자. 

작곡가 김순남의 음악철학, 사진갈무리: KBS1 방송
작곡가 김순남의 음악철학, 사진갈무리: KBS1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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