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제주, 굿나잇 제주] '대흥이용원 이희종사장님-모닝♡'
[굿모닝 제주, 굿나잇 제주] '대흥이용원 이희종사장님-모닝♡'
  • 최병용 제주본부장
    최병용 제주본부장 saisaisang@hanmail.net
  • 승인 2020.10.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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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로 가느냐~

오늘도 제가 산토끼처럼 빠르지 않은 거북이 같이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나섭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100여 미터 골목길을 걷다보면 외도 초등학교 나옵니다. 그 초동학교 앞을 지나다보면 가끔은 수 십년전의 국민핵교(?) 유소년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학교의 정문 맞은 편에 '산토끼분식' 집이 보이고, 바로 그 옆에 '대흥이용원'이라는 작은 이발소가 있는데, 어제 오후에 거기에 가서 머리카락 벌초를 했습니다.

이 곳에 이주해 온지 2년여 동안 한 달 한 번 정도 가는 완전 단골이 된 이발소로 노주인장의 관록이 묻어나는 이발 솜씨가 짱, 짱~입니다.

가위로 해주는 정성스린 이발, 세심한 면도와 더불어 눈썹 정리와 코털 제거 그리고 머리까지 감겨주는데, 이런 토탈 서비스 요금은 딸랑 만원짜리 하나면 만사 오케이~!!!

이발소 시설은 오래 되어 시골스럽지만, 저로서는 어릴 때의 고향에 있던 이발소를 추억할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이렇게 제 맘에 딱~드는 이발소가 집 근처에 있는 것도 제게는 소소한 생활의 기쁨입니다~!!!

오늘은 해당 이용원의 원장님이신 이희종 형님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1944년생이니 우리나이로 현재 77세, 칠땡이네요~ㅎㅎ

부모님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서 중학교를 마치고 네 사람의 형제자매들이 모두 밥벌이를 위해 뿔뿔히 헤어지는 상화에서 그는 동네 이발소에 취직해서 머리 감겨주기와 청소 등 허드레 일을 하면서 겨우 밥이나 먹을 돈을 받고 이발 관련 일들을 배웠다고 합니다.

당시 나이 16~17세, 그 때는 이렇게 평생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을 않고 그저 배가 고픈데,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에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답니다.

그 이후 이용사 면허증 취득한 후에 정식으로 이발사로 일을 하다가 군 입대를 하였는데, 당시 체형이 이브사이즈가 아닌 아담한 아담사이즈에 44키로 체중 미달, 그래서 처음에는 군입대 불가 판정 받았는데, 재검 시에 극구 우기다시피 군입대를 사정해서 체중 조작(?)해 군에 가까스로 입대 후 3년 만기 병장 제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 제대 후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십 여년간 주로 이발소 등을 전전하며 월급 직원으로 객지 생활하다가 다시 고향인 제주로 컴백해 주위 친지들의 권유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결혼하고 처자를 둔 가장이란 자리에 당당히 등극했는데, 당시 이발소 월급으로는 가족들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래서 지금의 그를 있게한 중대결심과 실행...

당시 먼저 일본 오사카에 가 한국계 유흥주점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큰 누이 그리고 이후에 큰 누이의 권유로 그 곳에 가서 합류해 동종의 일을 하던 여동생이 벌이가 좋다고해서 이 분도 이발사 일을 접고, 누이들의 소개로 일본 고배에 있는 한국계 유흥주점 밤무대에서 가수로 활동을 했답니다.

그 때가 30대 초, 중반의 나이인 1976년과 1977년에 두 번 걸쳐서 관광비자로 일본에 가 불법 체류를 하면서 밤무대에서 그도 노래를 하였답니다. 아무튼 그 일을 한 기간은 토탈 1년이 조금 넘을 정도로 길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 형제자매 넷 중에 세 명이 일본에서 밤무대 가수를 했다는 것을 보면 그들 집안 자체에 음악성이 풍부한 유전자가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가 일본에서 노래를 하던 당시에 하루 일당이 15,000만엔이었는데, 거기에 팁으로 받는 돈을 합치면 20,000~23,000엔이 하루 평균 수입이었다고 하면서 당시 일본 가기 전 한국에서 이발사 월급의 두 배 가까이를 벌었다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수입이었고 따라서, 비교적 단기간임에도 그렇게 벌이가 좋았기에 79년에 또 일본으로 세 번째 들어갈까 했답니다.

그런데, 한국서 혼자 두 아들을 양육하고 있는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고 병까지 얻어 포기했답니다.

아무튼 당시 1년이 조금 넘는 일본 생활로 모은 돈이 달러로 약 20,000달러였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꽤 큰 돈었기에 그 돈으로 지금의 집과 사업장으로 사용 중인 땅을 사고 그 곳에 건물을 짖고도 돈이 꽤 남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평생의 천직이랄 수 있는 이발관을 운영했는데, 작은 규모의 가게이기에 원장과 직원으로 혼자서 장구치고 북치고 운영하기를 올해로 43년째, 그 이전까지의 세월을 포함하면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을 가위와 함께 한 이발업계의 산증인입니다.

그분은 그 오랜 세월동안 가위질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족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진정한 '가위손' 중의 가위손입니다.

여기서 제가 언급하는 '가위손(1990년, 코믹배우인 조니뎁이 주연한 미국영화의 제목)'은 그 주인공이 멋진 가위 솜씨로 마지막에는 사랑과 행복을 쟁취하는 해피엔딩 스토리였지요. ㅎㅎ

아무튼 다소 과장스런 비약이기는 해도 할리우드에 대표적인 가위손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조니뎁이 있었다면 제주의 가위손은 바로 이 분 이희종씨 아니, 이희종 형님입니다.

그동안 이발소 그리고 산책길과 그 분이 낚시하는 바닷가에서 자주 봤고, 그 때마다 친근하게 인사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이기에 지금은 제가 그렇게 부르고 있지요.

그리고 그 분은 2년 전쯤에 폐암 초기 판정을 받아 바로 수술 후 경과가 좋아 5개월 정도 치료와 휴양 후에 다시 가위를 잡고 천직을 수행 중인데, 돈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빈등빈둥하는 실업자 생활이 싫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쉿~비밀인데, 그 분은 우리 동네의 숨겨진 진짜, 진탱이 알부자입니다. 작년까지 7살 아래의 아내가 직접 자신들 소유의 귤밭에서 귤농사를 했었는데, 점점 아내가 힘들어해 올해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임대했답니다.

그리고 귤밭이나 지금의 집보다 더 큰 재산은 7년 전에 큰 며느리와 3억씩 투자해 6억에 사놓은 2,000여평인 밭의 시세가 현재 무려 30억을 호가한다고 합니다. 헐~7년만에 다섯 따블...부럽부럽~!!!

그러면서도 십여년 전부터 제주를 강타한 땅값 폭등은...휴우~쩝쩝! 씁쓸~!!!

그런데, 이 분이 현재 더욱 행복해 하는 것은 재산이 아닌 두 아들입니다.

그는 수술 전에는 모든 일상의 피로를 술로 풀만큼 술을 꽤 좋아하셨는데 특히, 두 아들이 이 곳에 내려오면 밤새워 대작을 하던 술자리가 자신에게는 최고의 술자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폐암 수술로 그럴 수가 없는 부분만이 현재의 만족스럽고 행복한 일상사와 인생사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고 합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우리 옛 속담이 있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분은 팔불출 자격이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합니다!

큰 아들은 경제학 박사로 농촌진흥원 연구소에 근무 중이고, 작은 아들은 공학 박사 코스를 마치고 논문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현대자동차 연구소의 설계담당 엔지니어라고 합니다.

하여튼 그 분, 아들 두 명의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신이 난 모습이고, 행복해 하는 표정이 얼굴에서 뚝뚝~떨어지는 모습입니다요!

내리 사랑, 자식사랑에 대해서 이 땅의 아버지라면 누구나 예외가 없겠지만...

암튼 자식농사도 엄청 잘 지은 형님 추카, 추카해요~!!!

현재 그 분의 연세 77세, 두 아들과 아내는 일을 이제 그만 두라고 하지만 향후 몇 년은 더 하고 싶다하는데, 저는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가 가게 문을 닫으면 단골 이발소를 다시 찾아야하고, 그 분과 같은 솜씨를 지닌 전속 이발사(?)를 구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요.

일주일 한 번 휴무일 빼고도 손님이 많지 않을 때에는 낚시대를 들고, 근처의 바닷가로 가끔은 땡땡이 치러 나가기도 해서 손님들을 기다리게도 하는 그 분이지만...괜찮아유~~!!!

그게 제주 사는 매력이잖아요?

시간이 있으면 좀 기다리다가 이발하고 아님, 내일 다시 오면 되니까요~~~

아무튼 그 분은 제가 보기에는 '드러나지 않은 우리 동네 알부자고, 또 한편으로는 드러나게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네 인생사에서 '진정한 한우물 파기의 정석'을 보여주는 분이지요!

부디 그 분, 나이 보다 한결 건강한 외모와 건강한 삶을 사는 분이기에 제가 큰 걱정과 염려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가 나이인만큼 더 이상 큰 병이나 잔병치레 없이 사랑하는 부인과 백년해로 하시길 이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바라옵니다!

이 곳은 비라도 올 듯 우중충한 날씨입니다. 비오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암튼 날씨는 날씨고, 맘만은 찬란하고 행복한 가을 날이 되셈♡

 

더불어 상기 글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이야기지만...

그동안 참고, 참았던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경마산업과 말산업 관련자들과 종사자들이 드디어 생존권 쟁취를 위한 항의와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일요일에 제주 도의회 앞에서 출정식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경마산업, 말산업 관련자들이 주요 기관을 항의 방문해 집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월~수요일 삼일간은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의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항의와 집회를 이어가고 있고,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서울의 국회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주초부터 해당산업 종사자들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언택트(비대면)경마 즉시 실시와 점진적 확대 시행을 요구하고 있고,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인 '온라인 베팅 가능한 경마 시행'만이 우리나라의 경마산업과 말산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관계 당국과 국회의 발 빠른 대응, 조처를 바랍니다!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수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을 담아 요청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얼마 남지않은 골든타임을 더 이상 놓치지 마시기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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