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계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온 안덕삼 대표가 승마대회 촬영을 하는 장면. ⓒ레이싱미디어

프로 사진작가들, 말산업 대국민 홍보 위해 카메라 들고 나서
극소수 1세대 이어 2세대 등장…‘6차산업’ 말 예술 ‘르네상스’ 도래
대부분 자비 부담·재능 기부 형식…말 문화 발전하려면 지원 필요

현대사회 어느 곳, 그리고 누구에게도 ‘사진’은 빠질 수 없는 친구다. 사진은 순간의 추억을 영원으로 남기는 기록 방식, 매개체이자 매개물이기도 하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예술철학자인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1978년에 낸 『사진론에 관하여(On Photography)』라는 저서에서 예술의 장식적 효과가 강해지며 사진이 발달된 점에 주목했다. 손택은 가족이나 단체 구성원이 업적을 기념하기 시작하며 사진이 등장하게 됐고, 사진은 환상의 예술이라고 했다. 손택에 따르면, 사진은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는 문법이자 윤리다. 사진을 찍는 일은 세계와의 일정한 관계에 자신을 참여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 말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작가들이 있다. 국내 말산업의 과거를 영원으로 남기고, 작금의 현실을 직시하게끔 사진으로 기록해 미래를 바라보게끔 하는 인재들이다. 그들의 숫자는 열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기에 귀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말 사진을 찍는 이들은 드물다. 말 사진은 오늘날 말 문화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매개라는 점에서 이들에 주목했다. 말산업 대국민 홍보와 이미지 전환을 위해 나선 사진 전문작가 4인방을 소개해 본다. - 기자 말

‘애마사진집’ 국내 최초 발간한 박기동 작가
1941년 6월 경남 함양 출생. 경마장 곳곳에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2001년에 ‘애마사진집’을 발간했던 국내 말 전문 사진작가 1세대에 속한다. 사진재료점을 하던 부모님 영향으로 어깨 너머로 사진 기술을 익혔고, 등산에 빠져 자연을 촬영하면서부터 사진에 매료돼 유명한 사진작가를 따라 다니면서 배우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경마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말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작가가 없는 것을 알고 사진을 찍게 됐다. 전국을 다니며 말 사진을 찍던 그는 2001년 국내 최초로 말 사진 전시회를 열고 사진집을 출간했다. 말 사진에 전문적인 조언을 구할 사람이 없어 고생했다던 그는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국애마사진연구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후 몽골 기마문화, 케냐 얼룩말, 일본 북해도 종마목장 등을 돌며 말 사진 기행도 기획했다. 특히 말의 교미부터 임신과 출산, 성장과 경주마 데뷔 및 우승까지의 스토리를 담아내는 프로젝트도 준비했다. 장녀 역시 사진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기동 작가는 애마사진집을 발간하며 “말의 유연성, 박력, 아침 햇살을 받으며 달릴 때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탐스러운 갈기, 휘날리는 꼬리, 그 생동감… 이러한 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영상에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승마계의 산 증인, 안덕삼 애마스튜디오 대표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승마대회, 대한승마협회나 생활체육협회 주최 행사뿐 아니라 각 승마장과 승마 동호회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찐빵모자를 쓰고 한쪽 구석에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이. 바로 안덕삼 애마스튜디오 대표(71)다.

스포츠 사진 전문 기자로 활동하던 안 대표는 35년 전, 지인의 권유로 승마 사진을 찍게 됐다. 국내 유수의 스포츠 일간지와 , 등 잡지에 사진을 제공해왔고, 홍보 담당 사진기자들을 위해서는 암실에서 사진을 만드는 법을 전수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다보니 안덕삼 대표의 사진과 영상은 국내 승마계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냈다.

장인정신을 가지고 국내 승마계의 역사를 담아내왔지만,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고민하고도 있다. 돈이 되는 결혼식이나 돌 행사에 가서 짧은 시간 일하는 것이 낫지 몇 시간 내내 카메라를 붙들고 씨름하면서 ‘눈 버리는’ 승마 전문 사진 기자의 고충은 말로 다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안덕삼 대표는 “선수들이 사진을 요청하고 내 존재감을 알아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그 즐거움으로 지금까지 이 일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일을 그만 두게 되면 자신이 소장한 모든 자료를 대한승마협회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밝힌 안 대표, 한국 승마의 역사는 그의 장인정신과 성실함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속도를 찍다’…경마 전문가, 김진두 KRA과장
김진두 KRA한국마사회 홍보팀 과장은 KRA에 입사한 뒤 1988년 3월부터 26년째 경마 관련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 왔다. 사진 촬영 기술을 살려 농어촌지역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장수사진을 찍어 주는 봉사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한 해 300여 명의 어르신들 사진을 찍고 액자로 만들어 전달한다.

2011년 11월에는 ‘속도를 찍다’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KRA한국마사회 갤러리마당에서 개최했다. 45점의 작품을 선보인 사진전에는 경마의 박진감과 기승한 사람들의 표정이 잡힌 작품들이 전시됐다.

김진두 과장은 당시 와의 인터뷰에서 말 사진 찍는 기술에 대해 “말과 친근하게 교감하고 습성을 알아야 안전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경주 사진을 찍을 때 정면 사진은 셔터스피드 1600분에 1초, 측면 사진은 3200분에 1초, 겨울 함박눈이 올 때는 100분의 1초로 놓고 찍으면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퇴직을 기념해 사진전을 여는 것이 목표라고도 했다.

말 사진계 2세대 이끌 이수진 ZSee 스튜디오 대표
1979년 10월, 말의 고장 제주도에서 태어난 이수진 지씨(ZSee) 스튜디오 대표는 국내 말 사진계에서는 최연소이자 차세대 유일 여성 사진작가다. ‘지씨(ZSee)’스튜디오 이름을 해석하면, 알파벳의 가장 마지막 단어 ‘Z’처럼 사진으로 세상 끝까지 대상을 찾고 보고 알아가겠다는(see) 의미다.

최연소 여성 사진작가이지만 경력은 벌써 15년차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지도교수 추천으로 졸업 작품이 광고 공모 사진전에 ‘등단’하며 사진계에 이름을 알렸다. 경향신문사 출판사진기자부 소속으로 한국사진기자협회 출신이다. ‘유행통신’과 ‘레이디경향’ 초창기 멤버로 배용준, 한대수 등 유명 연예인 인터뷰 사진은 물론 굴지의 CEO, 각종 풍경 사진과 해외 로케 등을 진행했다. 이후 사진 전문 스튜디오 소속으로 ‘맘&앙팡’ 잡지 전속 사진작가로 요리 및 아이 사진을 전담했다. 현대증권, 삼성생명, 한국공항공사, 천호식품 등 주요 대기업 사보의 사진을 전담했고, 「갖고 싶은 부엌, 알고 싶은 살림법」 등의 단행본도 도맡았다. 노숙자의 자립을 돕기 위한 잡지 ‘빅이슈 코리아’에는 표지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달란트를 재능기부하는 데 쓰고 있다.

승마 대중화 물결을 타고 승마를 배우고 싶어 승마클럽을 찾았다가 말을 좋아하게 됐다는 후문. 승마를 안전하게 그리고 제대로 배울 곳을 찾고자 말산업전담기관인 KRA한국마사회를 찾았다가 경마의 매력에도 푹 빠졌다. 달리는 경주마의 역동성, 그 총체적 ‘마력’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싶지만, 경마 경주의 매 순간 그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 풍토가 아쉽다고 했다.

말의 고장 제주 출신인 이수진 대표는 제주도에 자주 들러 목장에서 육성되는 말들, 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 행복하고 말했다. 특히 환경과 동물복지에 관심이 많아 경주마든 승용마든 말들의 프로필을 사진 기록으로 남기면, 현재 난항을 겪고 있는 말 등록 문제에 있어 큰 기여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적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제주에서는 특히 승마체험과 관련한 승마클럽 내 말 포토 촬영을 통한 관광산업 활성화, 육성목장 홈페이지 제작과 관련한 사진 촬영 그리고 KRA 홈페이지에 있는 경주마 프로필의 사진 확대 작업과 각 지자체 및 학회, 유관 단체의 각종 행사마다 사진 기록을 남기는 일은 오늘날 우리 말산업계가 후대를 위해 해야 할 역사 기록의 의무라고도 했다.

이수진 대표의 지적처럼, 사실 국내 말산업계는 현재의 기록을 남기는 데 등한시해왔다. 이는 우리 말 문화 발전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간 승마 전문 포털사이트 라이딩클럽에서는 예술 창작 집단, 플레이스트픽쳐스(playist-pictures) 조신형 감독과 합작해 말 사진 데이터와 다큐 제작에 나서기도 했고, 제주마연구소의 장덕지 소장의 경우 행사마다 손수 뛰어다니거나 제주마의 사진을 찍는 등 각계의 노력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개인이 말 사진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사비를 털어 말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재능 기부 형식으로 사진을 찍어 언론사나 협회, 단체에 넘기는 일은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이들의 증언. 전문 사진작가들을 한 번 고용하는 데에는 백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 단위가 넘어가지만, 말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말산업전담기관인 KRA가 국내 말 문화 발전이라는 대의 아래 관심을 갖고 집중적인 지원을 한다면 우리네 척박한 말 문화 풍토가 근본부터 달라질 것이라는 지적. 특히 KRA홍보팀이 발간하는 ‘굽소리’는 사진작가를 고용하는 데 일회성 외주에 그쳐 있고, 대회나 행사마다 전문 작가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기록을 남기거나 취재 언론사에 사진을 요구하는 관행도 달라져야 말산업 기록을 남기는 일에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잔 손택이 사진에 주목한 이유로는, 거짓된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할 수 있는 도구로 사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허가증”이라는 손택의 말처럼 기마민족인 우리의 말산업이 국가의 백년대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예술의 시작이자 근간인 사진에 대한 말산업계 종사자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저작권자 © 말산업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