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경주로에서 나타낼 수 있는 경주마의 걸음 형태를 통해 컨디션과 기수와의 호흡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케이스와 나쁜 케이스를 구분했지만, 사실 주로출장에서 최악의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경우는 따로 있다.

곧바로 출발지로 이동하는 말은 경계해야

경주로에 들어선 말들은 속보, 구보 또는 습보 등의 형태로 몸을 풀어주며 출발선까지 이동하게 된다.
주로출장 장면을 유심히 본 독자라면, 경주로에 들어선 말 중에서는 주로에 나와 별다른 우회 없이 곧바로 출발선까지 이동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말들은 건너편 주로에서 적당히 몸을 풀어준 이후에야 비로소 출발선까지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2가지의 경우를 놓고 본다면, 그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에 비유할 수 있다. 그만큼 좋은 케이스와 나쁜 케이스로 극명하게 갈리는 사례로서, 말이 경주로에 나와 곧바로 출발선까지 이동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다.

주로출장의 근본 의미는 말의 컨디션을 최종점검하고, 실전에서 충분한 전력발휘를 위한 충분한 준비운동에 있다. 비록 속보시에 파행 기미가 있더라도 충분히 몸을 풀어준다면 혈액순환이 좋아져 파행이 경감할 가능성이 있고, 기수와의 호흡에 문제가 있더라도 계속 주행을 거듭하면 어느 정도 침착해 지면서 기수의 지시에 순응하기도 한다.

만약 주로에 나와 곧바로 출발지로 이동하는 경우라면, 준비운동을 하지 않은 채 실전에 임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정상적인 범주는 분명 아닐 것이다.

속보(速步)만을 고집한다면 워밍업으론 낙제
주로출장은 경주마에게 워밍업의 개념임을 강조한 바 있다. 즉, 적당한 달리기(구보,습보)와 걷기(속보)를 반복하면서 충분히 몸을 풀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말이 주로에 나와 속보에서 구보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가볍게 걷기만 하는 즉, 속보만을 고집하고 있다면 워밍업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경우이므로 이 역시도 낙제점을 줄 수 있다.

지난 시간 속보에서 구보로 자연스럽게 걸음동작을 변화하는 경우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했다. 반면, 주로에 나오자마자 속보 없이 곧바로 구보로 들어간다든지, 혹은 흥분된 상태에서 게걸음을 하고 있다면 좋지 않은 경우라고 전술했다.

그렇지만, 어떤 과정을 거치든 일단 구보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구제할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게걸음을 하다가도 이후에 구보를 들어갔다면 차라리 나은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속보 없이 구보에 들어갔더라도 속보만을 고집한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음이다.

간혹 기수가 의도적으로 속보만으로 출발지까지 이동해 그제야 열심히 준비운동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역시도 넓은 경주로에서 몸을 풀어준 것과 비교할 때 그 워밍업의 충실도는 저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여 유도마에 이끌려 출발지까지 속보로만 이동하는 말도 결국엔 구보를 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므로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주로출장의 지연과 방마는 큰 감점요인

출전마들이 출발번호 순서에 맞추어 차례로 주로에 출장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편자 등의 장구 교정의 이유로 인해 주로출장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출발지에 도착한 이후에도 그러한 경우가 종종 있다.

참고적으로 말은 발굽 보호와 형태 교정을 위해 편자를 착용하는데 이를 장제과정 이라고 하며, 그렇게 부착된 편자는 반복적으로 지면과 접촉하면서 그 위치가 변이되거나 발굽과의 틈새가 벌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를 바로 잡는 조치를 “편자교정” 이라고 한다. 최근에도 인기를 모았던 ‘해피히어로’(1조)라는 경주마가 출발직후 편자가 떨어져 입상에 실패한 사례에 비추어 보더라도 편자의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음이다.

결론적으로 이렇듯 편자 등의 장구교정으로 주로출장이 지연되는 경우라면 큰 감점 요인이 된다. 그 이유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다른 말들은 이미 주로에서 충분히 몸을 풀고 있는데 반해 뒤늦게 주로에 나오는 경우라면 상대적으로 워밍업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편자 등의 장구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말이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달리고자 하는 욕구에 넘치고 있는 말이라면, 분명 심리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방마(放馬)란, 말이 기수를 떨어뜨리고 혼자 달리는 것으로 흥분된 말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경우다. 주로출장시 방마가 되면, 대개는 경주제외가 되지만 말이 크게 체력적으로 손실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그냥 경주를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도 역시 감점요인이다.

기수를 떨어뜨린 채로 달렸다면 워밍업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수의 지시없이 마음대로 달렸다면 그것은 몸풀기가 아닌 체력 소진의 차원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마치 실이 끊어진 연처럼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좋은 경주력의 발휘를 기대하기란 단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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