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마산업이 세계를 향해 조준점을 옮겼다. 길게는 몇 백 년부터 짧게는 몇 십 년까지 앞서나간 세계의 경마는 2015년 어느 곳을 걷고 있었을까.
2008년 금융위기 사태와 더불어 끝없이 사양세를 걸었던 해외의 경마계가 2015년 마침내 반등의 기회를 맞았다.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 오랜 기다림 끝에 이뤄낸 결실, 거기서 맛보는 희열. 스포츠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이 2015년 폭발했다. 어느 때보다 가슴을 울렸던 2015년 해외의 경마이야기들은 부대산업과 생산계까지 희망의 불씨를 전하는 중이다. 계속되는 불황 속에서도 움츠리지 않고 묵묵히 내실을 다져온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지가 선정한 해외경마 5대 뉴스를 통해 감동적이었던 그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경마문화 편집국)



1. 37년 만의 삼관마 ‘아메리칸페로아’, 북미를 뒤흔들다

북미 경마계의 오랜 숙원, 삼관마(Triple Crown)가 37년 만에 탄생했다.
전 세계 경마팬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주인공은 바로 ‘아메리칸페로아’(American Pharoah).
첫 번째 관문인 켄터키더비에서 ‘아메리칸페로아’는 18번 게이트의 불리함에도 발군의 탄력을 앞세워 1마신 차 우승을 거뒀다. 전설의 전주곡이 울렸음에도 일각에서는 느렸던 경주 기록(2분 03초 02, 2000M)과 막강한 상대마를 들며 불신을 드러냈다. 이러한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메리칸페로아’는 두 번째 관문인 프리크니스 스테익스에서 무려 7마신 차의 낙승(1분 58초 84, 1900M)을 끌어내 삼관마 달성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문제는 마지막 관문인 벨몬트 스테익스였다. 5주 안에 세 개의 경마대회에서 전력질주를 해야 하는 가혹한 조건 때문에 수많은 2관마들이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왔던 것. 게다가 상대마들은 앞선 관문에 출전하지 않고 알맞게 컨디션 조절을 하고 나온 터라 ‘아메리칸페로아’ 앞에 놓인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아메리칸페로아’는 초반 여유롭게 선행을 주도한 후 결승주로에서 막강한 걸음을 과시하며 5½마신 차의 승리를 거두었다.(2분 26초 65, 2400M) 역대 12번째 삼관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영웅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삼관대회에서 활약을 펼친 대개의 경주마들이 일찌감치 현역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하는 데 반해 ‘아메리칸페로아’는 브리더즈컵 클래식에 출사표를 던지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총 8두의 단출한 편성 속에 ‘아메리칸페로아’는 내내 1마신 이상으로 선두를 유지하며 전개를 풀어 결국 6½마신 차의 압승(2분 00초 07, 2000M)에 성공했다. 역대 브리더즈컵 클래식의 최고 마신 차(2002, ‘볼포니’)와 타이기록이었다.
북미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아메리칸페로아’는 브리더즈컵 클래식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프리크니스 스테익스 직후 일찌감치 쿨모어 목장과 계약을 맺어 현재 켄터키 애쉬포드 목장(쿨모어 소유)에서 교배를 준비 중이다. 2016년 ‘아메리칸페로아’의 교배료는 무려 20만 달러. 한화로는 2억 34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첫 교배료에서 이처럼 고가의 금액이 책정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데, 대표적인 경주마로는 30만 달러의 ‘자이언츠코즈웨이’와 20만 달러의 ‘고스트재퍼’가 있다.
‘아메리칸페로아’의 이와 같은 인기는 비단 경마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북미의 저명한 스포츠지인 는 매년 최고의 활약을 펼친 스포츠 스타를 뽑아 “올해의 스포츠맨”으로 선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아메리칸페로아’가 당당히 후보로 오른 것이다. 비록 최종 선정은 불발됐으나 ‘아메리칸페로아’는 전 세계 팬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인터넷 투표에서 총 588,988표 중 무려 47%에 달하는 278,824표를 얻으며 인기를 과시했다. 30년 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야구팀 캔자스시티 로얄즈와 축구계의 전설 리오넬 메시 등이 함께 후보로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메리칸페로아’가 어느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평생에 한 번도 보기 힘들다는 삼관마의 탄생. 2015년 세계 경마는 ‘아메리칸페로아’로 시작하고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북미 경마, 안정세 본격화되나

2008년부터 시작해 약 2년간, 북미 경마는 경제 불황과 맞물려 끝없는 추락의 늪에 빠지게 됐다. 교배료와 경매가는 물론 입장객 수까지 바닥을 치며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는 말을 실감케 했던 것.
하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회복세를 보였던 북미 경마는 2015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안정세를 보여줄 전망이다. 이는 올해 교배료 판도에서도 이미 예고된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씨수말이 변동 없는 교배료를 유지하며 안정세를 보인 가운데 ‘태핏’(Tapit)과 ‘파이오니아오브더나일’(Pioneerof the Nile)은 비약적인 증가를 보여 주었다. 특히 ‘태핏’의 경우 2014년 당시 16,383,113달러(한화 약 182억6,225만 원)를 벌어들이며 북미 경마 역사상 최고 시즌 수득상금을 기록하게 됐다. 이에 힘입어 2014년 150,000달러였던 교배료는 2015년 300,000달러로 두 배나 뛰어오르게 됐다. 2007년 ‘에이피인디’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30만 달러의 초고가 교배료의 씨수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입장객과 매출액 부분은 삼관마 탄생과 맞물리며 절정을 이뤘다. 특히 ‘아메리칸페로아’의 은퇴경주였던 브리더즈컵 시리즈가 열린 킨 랜드 경마장은 사상 최다 입장객수를 이틀 동안 연속으로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시리즈 첫날에는 4만 4,947명을 기록한 데 이어 ‘아메리칸페로아’가 출전하는 다음 날에는 5만 155명으로 또 한 번 기록을 경신한 것. 게다가 브리더즈컵 시리즈가 중계된 TV 채널 역시 최근 20년 안에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매시장도 주목해볼만하다. 2015년 북미에서 진행된 경매에 상장된 경주마 두수는 총 18,871두로 67,060달러의 평균가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 10년 중 최고의 기록으로, 호황기였던 2005년의 54,990달러와 비교했을 때도 무려 1만 달러 가까이 차이가 나는 금액이다. 판매 총액 역시 불황의 최고조였던 2009년의 659,913,611달러에 비해 약 2억 8천 달러가 증가한 942,323,137달러를 기록해 생산계에 희망을 안겨주었다.




3. 개선문상, 4년간의 암말천하 종식

올해 개선문상의 최고 관심사는 괴물암말 ‘트레브’(Treve)의 3연패 달성 여부였다. 개선문상은 2011년 암말 ‘데인드림’(Danedream)의 우승 이후 2012년 암말 ‘솔레미아’(Solemia)가 또다시 우승한데 이어 2013년과 2014년 연속으로 ‘트레브’가 우승하며 암말 전성시대를 구가해왔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부담중량이 가장 큰 이유라는 목소리가 제기됐는데, 2014년까지 개선문상의 부담중량은 3세마 56kg, 4세 이상 59.5kg, 암말 1.5kg 감량으로 3세 암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올해의 개선문상은 4세 이상마의 부담중량이 59kg으로 조정되며 그 격차를 줄여나갔다.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 ‘트레브’는 아쉽게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괴물 신예 ‘골든혼’이 그 바통을 이어가며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게 됐다. 3세마에 불과한 ‘골든혼’(Golden Horn)은 앱섬더비(영국), 이클립스 스테익스(영국), 아이리쉬 챔피언 스테익스(아일랜드)를 모두 점령하며 유럽을 종횡무진했다. 브리더즈컵 터프에서 준우승을 거두며 은퇴한 ‘골든혼’은 2015년 유럽연도대표마와 최우수 3세마를 동시 석권하며 한 해의 동안의 공로를 톡톡히 인정받았다.
개선문상의 우승은 비단 ‘골든혼’만의 경사는 아니었다. 개선문상에서 ‘골든혼’에 기승해 그림 같은 전개를 펼쳤던 프랭키 데토리 기수는 그 활약을 인정받아, 삼관마를 달성한 빅토르 에스피노자 기수를 제치고 2015 세계 최우수 기수에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4. 세계 경마, ‘걸크러쉬’ 돋보여

올해 해외 경마에서는 여성기수의 활약으로 ‘걸크러쉬’가 경마계에도 해당됨을 널리 알렸다.
홍콩에서는 15년 만에 여성 수습 기수가 탄생했다. 홍콩자키클럽은 7월 10일, 정 카케이 씨에게 기수 면허를 부여했다. 정 카케이 기수는 올 초 심각한 뇌진탕과 엄지손가락 골절 등의 부상을 얻었음에도 적극적인 재활 끝에 기수 면허를 얻었다.
프랑스에선 아멜리 풀론이 7월 22일 열린 그랑프리드비쉬(GⅢ)에서 승리했다. 이는 그레이드 경주에서 프랑스 최초로 여성기수가 우승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현지 전문가들은 막판 치열한 경합 속에서도 침착하게 말몰이를 펼친 아멜리 기수의 기승술에 찬사를 보냈다.
8월 8일 영국 로열애스콧 경마장에서 열린 셔가컵에서는 여성 기수로 구성된 팀이 쟁쟁한 남성 기수팀을 누르고 최종 우승을 거뒀다. 레이싱포스트에 따르면 소피 도일 기수는 “남성기수와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며 “우리는 아직 최고이지는 않지만, 기승기회를 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한 기승은 보여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11월 3일, 호주에선 멜버른 컵 역사 155년 만에 여성기수가 처음 우승을 거뒀다. 미쉘 페인 기수는 인터뷰에서 “남녀 차별로 힘들었다”면서 “가령 출발이 제대로 안 됐을 때, 남성 기수들에게는 ‘운이 나빴다’ 정도로 넘어가지만 내게는 ‘역량 부족’이라 단정 지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강인한 여성기수들의 기분 좋은 승전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5. 국제승마연맹, ‘승마계 스타’ 발표

국제승마연맹(FEI)이 올 한 해를 빛낸 승마계 스타를 발표했다. FEI는 개인적인 승마성적 고려와 함께 승마의 스포츠 개발에 열정과 의지를 보인 공헌자 다섯 명을 선정했다.
신인왕에는 19살의 나이로 영국 장애물 경기의 별로 떠오른 제시카 멘도자(영국)가 선정됐다. 제시카는 2015 유럽 챔피언십에서 영국의 올림픽 자격을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최우수선수상은 왕좌를 지키고 있던 보이드 엑스웰(호주)이 받았다. 보이드는 올해 출전한 9번의 마차경기 중 7번 승리하며 FEI 마차랭킹에서 공고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에디 가르시아 루나(미국)는 최우수관리사상을 수여받았다. 에디는 10여년 간 미국 올림픽 기수인 스테펜 피터의 멘토로 활동했으며 미국 마장마술의 중추적인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오리아나 리카 마미솔(우루과이)이 ‘역경극복상’을 받았다. 지구력 선수인 오리아나는 림프종으로 진단받은 후에도 프랑스, 브라질 등에서 열리는 국제 승마경기 11군데에 출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지속했다.
FEI단체상에는 르쉬벨퀴포스레플레(프랑스)가 선정됐다. 이 단체는 아이티 지진으로 마음에 상처 입은 아이들을 승마로 치료하고 있으며, 현재는 250명을 후원하고 있다.

작 성 자 : 조지영 llspongell@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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