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로 변신한 시골 ‘어멍’…제2의 출발 앞둔 안해영 백마영농조합법인 대표

9월 13일, 제주 와흘리에서 만난 안해영 대표는 말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고, 그 말 때문에 먹고사는 말산업계의 ‘해녀’와도 같았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충실했고 정직을 가치로 했기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은 중국인과 관광객, 쓰레기로 점철됐지만,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도는 바람과 돌 그리고 여자가 많은 섬이다. 말산업계는 단연코 ‘말’을 주장하겠지만 말이다.

제주도는 제주 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며 제주해녀축제를 매해 개최하고, 최근에는 영화 ‘물숨(감독 고희영)’이 해녀의 삶을 우리에게 더욱 생생하게 전달했다.

숨의 한계를 알면서도 바다로 뛰어드는 해녀의 삶은 말의 고장, 제주의 여성들을 가리켜 “생활력이 강하다”, “웬만한 남자보다 낫다”, “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는 말을 방증한다. 본지 은 추석 연휴를 전후해 두 명의 제주 여성을 만났다. 제주 말산업계, 그것도 말고기 유통과 판매업에 종사하는 두 사람은 정직과 열심 그리고 참여란 가치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2회에 걸쳐 ‘제주, 그녀’란 기획으로 이들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생계 막막할 때 어릴 때 먹던 말고기 생각나 식당 시작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기로 문전성시…유통에도 뛰어들어
코스 요리 개발·마유비누 생산 등 말산업 6차산업인 주목
“식당 자정·등급제 도입 등 행정 지원으로 대중화 맞이해야”
 

작은 체구에 조곤조곤한 말투 그리고 고운 얼굴까지…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삼다도의 대표 여성이자 그곳에서 나고 자란 ‘어멍(어머니의 제주 방언)’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일할 때는 누구보다 ‘빠릿빠릿’했고 통화할 때 목소리는 단호했다.

9월 13일, 제주도 와흘리에서 현재 공사 중인 백마가든 인근에서 만난 안해영 대표는 말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고, 그 말 때문에 먹고사는 말산업계의 ‘해녀’와도 같았다.

그녀에게 말은 ‘먹고사는’ 문제였다. 20여 년 전, 남편이 사고를 당해 병원에 오래 입원해야만 했다.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 병원에서 수발하며 근처에서 횟집 장사를 시작했다. 자연산만을 고집해 제법 손님도 많았지만, 남편이 서울로 병원을 옮기며 식당 문도 닫아야 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시골 아줌마라 취직도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차 어릴 때 먹던 말고기가 생각났다. 어른들은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안 좋을 때도 말고기를 주셨었다. 식당 임대를 받아놓고 2개월 정도 시장 조사를 했다. 그런데… 몇 군데를 가봤는데 냄새도 나고 검은 고기가 나오고 육회도 싱싱하지 않았다. 어릴 때 먹던 맛과도 달랐다. 뭔가 달라야 손님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선한 고기를 쓰면 되겠다 싶어 3년만 해보자고 결심했다.”

자연산 회를 고집했듯, 그녀는 기본에 충실했다. 미련스러울 정도였다. 원칙은 신선하고 질 좋은 말고기를 손님상에 내놓는다는 것. 말고기가 들어오면 15일 내에 팔아야 한다. 잡은 고기를 오래 두면 신선하지 않으니 고기를 싸게 팔거나 어린 시절 먹던 장조림을 담가 손님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주위에서는 비싼 고기를 퍼준다고 만류했지만, 원칙을 고수했다.

1년이 지나자 손님들이 줄을 섰다. 백마식당은 맛있고 신선하고 질 좋은 말고기가 상에 올라온다는 정평이 났고 입소문도 빨랐다. 싱싱한 육사시미도 손님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소를 취급하던 주방실장들이 오면 “나 하는 대로만 하라”며 노하우를 전수했다. 지금 도내에서 나오는 육사시미나 육회, 코스 요리들 전부 그녀의 손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다.

저항도 있었다. 말고기에 거부감을 가진 어떤 손님은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딴 고기는 안 먹는다”고 진상이었다.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기를 내놓고 깔끔하게 식당을 운영했어도 터부는 유전이라도 된 듯 막무가내. 일행이 한 번 먹어보라고 권유하자 마지못해 먹은 그 손님은 육회를 더 추가했단다. 그리고… 10년 단골이 됐다는 후문.

당시엔 그냥 말을 도축하는 농가가 대부분이었다. 신선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했는데 간이나 내장을 포함, 고기를 나눠 쓰지 않는 문화 때문에 신선도는 늘 뒷전이었다. 혼자 품질 좋은 말고기를 팔기보다 도내 식당들이 신선한 고기를 팔아야 상생할 것이라 판단했다. 식당을 운영한 지 5년쯤 지나 싱싱한 말고기 홍보를 위해 유통을 시작했다. 공판장 운송비, 도축 및 경비는 식당에 ‘무료 봉사’하고 고기값만 나눠 쓰는 식이었다.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말 한 두당 천만 원의 매출을 잡고 벌금을 때렸다. 말고기 활성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고기도 나눠 쓰며 투명하게 경영했는데 세무당국은… 막무가내였다. 설명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억울했다. 그 억울함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도축하면 매출로 잡히는 걸 몰랐던 게 문제였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유통 허가를 받고 말고기 유통에 처음으로 뛰어들었다. 촌에서는 도축하고 판매하는 걸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상황. 백마영농조합법인도 만들었다. 여자 몸으로 공판장에 가서 부딪히고 손에 피와 기름을 묻혀가며 견뎠다. 처음 1~2년은 공판장에 다녀오면 며칠 잠도 못자고 못 먹을 정도였다.

그녀에게 말은 새로운 기회였다. 남편을 대신해 생계에 뛰어든 지 벌써 20여 년. 이제는 도내에서 가장 많은 두수를 비육하고 유통하는 어엿한 ‘대표’다. 한라마 200여 두를 집중 비육하고 있는 지금, 이제는 안정된 경영을 하고 있다. 직접 말을 생산하고 육성(비육)하고 유통·판매하고 부산물은 비누, 엑기스로 개발 중이다. 다시 백마가든을 열고 유통을 겸비한 식당까지 할 계획이다. 말산업계의 대표적인 ‘6차산업인’이다.

여성의 몸이지만 거친 말산업계에서 20년을 살아왔으니 모르는 게 없을 정도. 사료를 먹는 말들의 생김새만 보면서도 나이와 품종 그리고 고기의 질(마블링) 수준까지 설명할 정도다. ‘경험’ 때문이라 했다.

“2세 이상 거세된 수말이 비육하기 좋다. 중국에서 들여온 말을 사 한라마와 교잡했는데 덩치도 벨지안만큼 크고 나이가 들어도 마블링이 좋게 나온다. 비육에 가장 적합한 말이다. 제주마는 마블링도 좋고 고소하나 다소 딱딱한 식감이 문제다. 경주까지 뛰면 마블링은 없다. 같은 산마라도 경주마의 피가 덜 들어가야 질이 좋다. 제주마와 재래마 중간이 섞인 품종은 마블링이 좋다.”

소와 다른 축산은 농가 지원이 많은데 말은 거의 없다고도 했다. 거세비만 1년에 돈 천만 원이 들 정도. 거세 비용도 도축 비용도 지원이 전무했다. 그나마 최근 도축 비용은 서귀포시축협에서 일부 지원하고 있다. 약값도 소보다 비싸다. 말 전용 비육 사료도 비싸고 제대로 된 게 없다.

상황이 이러니 돈을 아끼려면 유통과 식당 쪽에서 크게 이익을 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녀는 호마, 즉 경주마들을 가리키는 ‘큰 말’은 절대 취급하지 않는다. 호마는 내륙에서 제주로 올 때 7~80만 원이면 살 수 있다. kg당 1만 원 정도 하는데 고기로 쓸 수 있는 양을 50%만 잡아도 200만 원, 게다가 이를 요리로 재가공해 팔면 더 많은 수익이 난다. 그럼에도 한라마와 제주마만 고집한다. 처음 말고기 식당을 하게 된 동기, 즉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기를 손님상에 내놓는다”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들불 축제 때 말고기 시식회가 있었다. 호마 고기를 사용했다고 들었다. 도청에 “그런 고기로 시식하려면 하지 맙서”라고 얘기했다. 말고기를 홍보한다지만 이미지를 흐리는 일이다. 고기가 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품종이 문제다. 도민과 관광객들이 오는 큰 행사에 질 좋고 맛 좋은 고기를 내놔야지 않겠는가. 관광객들도 제주도를 찾았을 때 말고기를 맛있게 먹어야 육지로 돌아가서도 말고기를 찾지 않을까. 말고기 식당과 납품, 판매하는 사람들이 함께 멀리 내다보고 좋은 품질의 고기를 납품해야 소비자들이 좋은 인식을 갖는다. 말고기 드신 분들이 냄새난다고 말하면 그게 참 속상하다.”

그렇다.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제주도 내 체험승마장 다수가 안전 문제에 취약하듯 말고기 식당 ‘맛집’으로 알려진 곳 대다수 역시 맛없는 호마를 사용한다. 심지어 ‘제주산 말고기’라고 육지 식당에서 받아가는 경우도 있다. 수지타산 때문이다. 질 좋은 고기를 생산하고 유통하면 당장의 이익은 적더라도 맛으로 대중화에 한발 더 다가서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말고기 대중화도 장삿속에 멍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 말산업계가 거꾸로 가는 이유, 즉 ‘돈’과 긴밀하게 얽힌 특정 개인들이 구정물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미개한 인격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안해영 대표는 기자에게도 “말고기를 자주 먹고 침을 맞으라”고 권했다. 중풍이 있었던 시어머니가 같은 방식으로 완치되는 걸 목격했기 때문. 말고기와 환, 엑기스가 중풍과 골다공증에 좋은 건 옛 어른들이 이렇게 직접 효과를 봤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마유 화장품, 비누 등 부산물을 활용한 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몇 년 전에는 직접 기름을 정제하고 마유비누를 만들었고 그 기술을 모 업체에 전수했었다. 일본산도 써봤지만, 제주 말의 기름을 쓴 우리 화장품들도 품질이 좋다고도 했다. 해외에도 곧 판매할 예정이다.

제2의 출발 앞두고 있는 그녀. 백마식당을 재오픈하면 마유비누도 다시 취급할 예정이다. 또 엑기스를 음료화 하는 방식도 개발 중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찾을 수 있게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잊지 않았다.

말고기 및 부대산업 시장이 성장해야 우리 말산업이 산다는 명제는 확실하다. “말고기 시장이 활성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란 질문에 안 대표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녀가 평생 지켜온 원칙과 일맥상통하니 그럴 만하다.

“호마를 손님상에 안 올리도록, 식당에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때는 맛있다가도 한 번 맛없고 냄새난다고 하면 손님들은 절대 다시 찾지 않는다. 밥상에 올라온 말고기가 맛있다는 인식, 이미지를 만들 수 있도록 식당은 자정하고 행정에서도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또, 올해부터 시범등급사업도 중단됐다. 모든 소비자들은 등급을 보고 고기를 산다. 특구 사업하면 재활, 승마, 인프라만 지원하는데 말고기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유통은 물론 등급제 정착 등으로 농가에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등급제를 하면 그나마 나아질 것이다. 그동안 (행정에) 건의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이제는 행정에서도 말 지원 사업을 실질적으로 그리고 차별화해야 한다.”

※ 다음호에서는 제주, 그녀 기획 2탄으로 6월에 말고기 전문 식당, ‘마돈향(馬豚香)’을 개업한 한영자 제주마테마파크 대표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9월 13일, 제주 와흘리에서 만난 안해영 대표는 말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고, 그 말 때문에 먹고사는 말산업계의 ‘해녀’와도 같았다. 작은 일 하나하나에 충실했고 정직을 가치로 했기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백마영농조합법인의 비육 농장 축사. 말들이 소처럼 한곳에서 사료와 건초들을 먹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그녀는 인터뷰 중간에도 주변을 정리하고 사료를 주는 등 직접 모든 일들을 챙기고 있었다.
▲비육마 시범 사업으로 들여온 벨지안 종을 돌보는 안해영 대표. 체고가 크지만 아직 2살이 채 안 됐다. 성품은 한라마보다 더 온순하나 덩치가 크니 일부러 직접 밥을 주며 교감하고, 산통에 대비해 말을 관리하는 일에도 신경쓰고 있다.
▲말고기는 ‘로컬 푸드’라는 인식이 깨지려면 사람들이 말과 접촉할 기회를 늘리고 질 좋은 말고기도 비싸지만 않다는 걸 잘 홍보해야 한다. 특히 제주도 내 50여 곳에 이르는 식당들이 이익은 적더라도 질 좋고 신선한 고기만을 취급할 수 있도록 행정 지원과 계도의 필요가 있다.

이용준 기자

작 성 자 : 이용준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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