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쌓는 건 수 십년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정유라 승마 특혜 의혹으로 한바탕 곤혹을 치른 승마계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국가대표 승마선수인 김동선 선수의 폭행 사건이 터졌다. 연이어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며 승마계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일부로 정유라의 승마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대중에게 승마는 여전히 ‘부자들만 하는 스포츠’, ‘돈과 권력이 없으면 하기 힘든 종목’으로 여겨지고 있다. 작금의 사건으로만 봤을 때 국민들이 승마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생각과 불편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선 현장을 돌아다니며 승마 관련 취재를 하는 본 기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실상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이다.

취재를 위해 처음 승마대회장을 찾을 때 안면식이 없는 유소년 선수들이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걸어와 조금 놀랐다. 다른 승마대회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가 궁금해 친분이 있는 한 승마코치에게 연유를 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생들에게 승마를 가르칠 때 말 타는 법에 앞서 인사를 잘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승마계에서 나도는 얘기 중 인사과 관련된 정유라 일화가 하나 있다. 정확히 어느 시기의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유라가 어린 시절 말을 타러 승마장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정유라가 말이 있는 마방에 들어서며 말을 관리해 주는 말조련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정유라의 어머니 최순실 씨가 정 선수에게 갖은 욕을 하며 네가 왜 저런 사람에게 인사를 하느냐면서 꾸짖었다는 이야기다.

정유라, 김동선 등 일부 선수가 승마계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승마계에서는 기존 승마의 부정적인 이미지 해소를 위해 대내적으로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일부분의 잘못으로 전체가 함께 피해를 보고 잇으니 아쉬울 뿐이다.

또한, 승마 특기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 정유라를 보고 일반대중은 승마하는 선수들은 쉽게 좋은 대학에 진학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한 대부분 선수들을 보면 일명 SKY나 인서울 대학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대학부 선수들의 하루 일과가 녹록치만 않다. 기량 향상과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부단히 연습해야하는데 다른 선수들은 정유라가 학점 특혜를 받은 것처럼 할 수도 없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하루나 이틀에 수강과목을 몰아 놓고, 강의가 없는 날은 운동에 전념하는 게 대부분 선수들의 대학 생활 모습이다.

한국 승마발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들도 많다. 승마는 ‘말’이라는 살아있는 동물을 매개체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축산을 기반으로 하게 되고, 승마를 포함한 말산업 육성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해 한국마사회, 재활승마학회, 말산업중앙회 등등 여러 기관 및 단체에서 함께 노력했다. 이 모든 게 정유라 개인을 위해 마련된 게 아니다. 결국 한국 농업, 한국 승마 더 나아가 모든 국민을 위해 마련한 것인데 정유라로 인해 모든 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쌓기는 힘들고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말처럼 부단히 노력한 승마계의 노고는 일부 소수 인사들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상황을 가만히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국민적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승마계는 소극적인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승마계도 이제 모든 것을 정유라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자정작용을 위한 노력의 모습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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