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곳 없도록 더 낮은 곳으로….”

▲2007년 여름,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필자.
기자는 운명처럼, 천성이듯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사무실 책상 한쪽은 수백 장의 명함이 진열됐고, 스마트폰은 매분마다 울린다. 이름을 기억하고 얼굴을 떠올려야 하니 여간 신경 쓰지 않고서는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다. 사실 귀찮을 정도다.

수천 명의 취재원 가운데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사람은 분명 있다. 유독 친분이 있어서나 광고를 주거나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운명처럼 끌리는 사람이다.

올 새해 벽두도 우리 말산업계는 경마혁신안을 두고 약간의 진통이 있었다. 한국마사회 입구에서 시위하는 전국경마장마필관리자노동조합원들 소식을 듣고 후배 기자들과 기획해 취재했다. 더불어 한국경마기수협회장 취임식도 취재하다 경마혁신 문제에 대해 눈을 떴다. 그 와중에 알게 된 사실 하나가 더 있었다. 1월 11일 새벽, 말 관리사가 자살했다는 소식.

모두가 쉬쉬한 상황에서도 취재해보니 경마혁신과는 ‘상관없는’ 배경이라고들 했다. 개인적으로 불미한 일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도 무사히 잘 치렀다고 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현재보다 이미 2주 전 일이니 벌써 모두의 머릿속에서 그는 지워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잊히지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난다.

그는 40대 초반의 노총각이라 했다. 관리사로서 마방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말 두수가 조정되면서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자신이 당한 일도 아니면서 괴로워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서 개인적으로 석연치 않았다고도 했다. 그 와중에 그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고,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필자는 39살의 노총각이다. 기자가 천직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취재원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면 내 일 같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고(故) 정주영 회장의 점을 자주 봤다던 노인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갑자기 사주를 부르라 했다. 새벽녘, 술에 취한 그 노인은 필자의 사주를 보더니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라 했다. 글 쓰는 일도 좋다 했다. 혼자 살 운명이라 했다. 그러더니… 39살이 되는 해 ‘좋은 일’이 있다고 했다.

필자에게 가장 좋은 일은 ‘저 세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것뿐이다.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 영혼은 있는지 없는지, 신은 있는지 없는지 말이다. 유일한 호기심이자 삶의 목적이기에 자발적 선택으로 죽음을 선택할 동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39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스스로 믿어왔었다.

병신년은 가고 정유년이 왔는데…. 이런 필자에게 노총각 말 관리사의 자살 소식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잊히지가 않는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말이다.

박봉의 노동자로 혼자였으니 먹고사는 문제에서 조금은 자유롭고 시간적 여유도 있었겠지만, 외로웠을 것이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닥친 변화가 내 일 같았을 것이다. 그저 여렸을 것이다. 마음의 생채기가 생기면 말에게 말을 걸고 말에게서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술도 빠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닥친 시련은 그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됐을까.

경마혁신이니, 말산업 육성이니 뭐니 하는 대의만큼 중요한 건 함께 말밥을 먹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존중, 배려가 아닐까. 한 노총각 말 관리사의 쓸쓸한 죽음을 기억하는 일로 우리 말산업계에 대한 서로의 인식이 변했으면 한다. 파이를 두고 싸우는 대신 공정하고 정의롭게 배분할 수 있도록, 그래서 누군가가 소외되지 않았으면 한다. 필자 또한 더 낮은 곳으로, 더 낮은 사람들, 노동자들, 학생들, 현장을 찾아 기억하고 알리는 일에 진력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7년 여름,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필자.

이용준 기자 cromlee21@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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