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10)

용감한 말 ‘스프링 마운틴’
아시안 게임을 위한 최종선발전 계획이 발표됐다.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하여 훈련에 임했다. 모든 선수가 우리나라를 대표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 위하는 모습이었다. 많은 선수와 말들이 훈련에 참가했지만 그중에 나의 애마 ‘스프링 마운틴’은 아주 용감한 녀석이었다. 어떤 때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용감해서 내가 위험을 느낄 정도였다. 모든 말들이 싫어하고 꺼리는 장애물도 아무 거리낌 없이 넘어버리는 그런 녀석이었다.

말들이 꺼리던 장애물
당시 함께 훈련했던 선수 중에는 해외에서 전지훈련을 받고 온 선수가 여럿 있었고, 해외 전지훈련지에서 구입해 국내로 들여온 마필들도 여러 마리 있었다. 그런 말들조차 넘지 않으려고 하고 거부하던 장애물이 하나 있었다. 훈련을 지시하던 외국인 코치는 여러선수에게 그 장애물을 넘으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떤 말도 하나같이 그 장애물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자 장애물 근처에도 다가가지 않으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 광경을 보던 외국인 코치는 화가 단단히 났다.

‘스프링 마운틴’ 장애물을 넘다
그러던 중 외국인 코치가 ‘스프링 마운틴’을 타고 있는 나를 호출했다. 그리고 그 장애물을 넘어보라고 했다. 난 다른 선수들이 탄 말들이 심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터라 괜스레 겁이 났다. 하지만 녀석의 용감함을 무한 신뢰하고 있었던 나였기 때문에 자신감 있는 구보로 장애물을 향했다. 장애물에 진입한 ‘스프링 마운틴’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장애물을 넘었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장애물을 넘어서 오히려 허무함까지 느껴졌다. 이렇게 쉽게 넘는 걸 다른 말들은 왜 저리도 무서워했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중간만큼만
난 개선 장군인양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외국인 코치는 다른 말들이 장애물을 넘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 방법은 어이없게도 날 필두로 말들 간의 간격을 아주 좁게 배치해 따라가며 장애물을 넘도록 한 것이었다. 의외로 이 방법은 성공했다. 그런 연유로 잘하고 있던 녀석만 선두에서 여러 번 장애물을 넘게 됐다. “군에 입대하면 잘하지도 말고 못하지도 말고 딱 중간만 해야 고생을 안한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난 해외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온 선수와 말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열릴 선발전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해져 들뜬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시작된 아시안게임 선발전
드디어 장애물 선발전을 시작으로 승마 3개 종목에 대한 아시안게임 선발전이 시작됐다. 종합마술 선발전은 5회에 걸쳐서 선발전을 치렀다. 1차 선발전을 마친 결과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선수가 장애물 경기에서 실권을 당했다. 이제는 누가 우승을 차지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내 듬직한 애마인 ‘스프링 마운틴’도 완벽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스프링 마운틴’은 마장마술에서 반대구보를 잘하지 못하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외국인 코치가 기승할 때면 ‘스프링 마운틴’은 아무렇지도 않게 반대구보를 하던 녀석이 내가 기승만 하면 반대구보를 번번이 실패했다. 당시 내 승마 실력이 미천했던 것 같다.

4차전 1위로 마치다
마장마술에서 한 과목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과목에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2차전을 거쳐 3차전을 마치고 나자 서서히 순위의 윤곽이 드러났다. 3차전 마친 후의 내 성적은 2위였다. 1위와 근소한 차이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종합마술 4차전이 치러졌다. 4차전이 끝난 후 내가 드디어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2위는 프랑스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돌아온 선수였고, 3위와 4위는 호주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돌아온 2명의 선수였다. 1위와 2위의 차이는 아주 미세한 차이였지만, 3위부터는 점수 차이가 아주 많이 났다. 이런 상황이라면 마지막 최종선발전인 5차전 장애물 경기에서 3회 거부 실권만 당하지 않는다면 아시안게임 선발 선수로 뽑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었다. 꿈에 그리던 아시안게임 출전이라니.

드리워진 검은 먹구름
그러나 내게 검은 먹구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4차전을 마치고 1주일 후에 최종 선발전이 치러지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장애물 선발전에서 떨어진 몇 명의 선수들이 5차전에 출전해 우리와 함께 선발전에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라고 꼬집어 이름을 말하지는 않겠다. 우리는 절대 안 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명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했지만 당시는 지금에 비해 선수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조금이라도 권력이 있다면 그냥 밀어붙이던 시절이었다. 어느 심판위원 아들과 어느 시장의 아들 등 권력 실세들의 손길이 최종 선발전에도 미치게 됐다. 5차전이 열리는 날 아침 마체검사에서부터 난 제거의 대상 1호였다. 내 차례의 마체검사 순서가 오자 우려하던 일들이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마체검사
4차전 선발전을 마치고 난 후 출전 선수들은 저녁마다 지치고 아파하는 자신의 말들을 치료하기 위해 이런저런 약을 써가며 아주 바쁘게 보냈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 달리 ‘스프링 마운틴’ 녀석은 어디 하나 손댈 곳이 없었다. 너무 건강해서 아무런 치료를 하고 있지 않은 내가 더 불안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건강한 녀석인데 최종 선발전 마체검사에서 수의위원장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수의위원장은 녀석의 등선마루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척추 위를 지우개 없는 연필 뒤로 힘껏 누르며 빠르게 홅고 지나갔다 예민한 ‘스프링 마운틴’은 놀라서 도망가려 했다. 예민하지 않은 말도 그런 무자비한 짓에는 도망을 가거나 과격한 행동을 보였을 것인데 수의위원장의 행동은 상식 이하의 짓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녀석의 그런 모습을 기다렸다는 듯이 수의위원장은 말의 등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보인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함께 고생하며 운동했던 코치가 어이없어하며 한소리 거들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로 난 사상 최초로 안장 없이 마방굴레만을 씌우고 기승해 마체검사를 받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정말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최종 선발전에 출전하게 됐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되어진 쇼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난 도무지 경기에 임하기 어려운 심리 상태였다. 하지만 선발전에 집중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정정당당(?)한 아시안게임 선발전
흥분된 마음과 화를 가라앉히며 드디어 마지막 5차전 첫날 마장마술 경기에 출전했다. 시합장에 입장해 C지점에 있는 심판장에게 인사를 하고 속보 과목을 시작했다. 속보 과목 수행 중 모 지점 심판 한사람이 다른 지점 심판장에게 계속해서 말의 걸음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계속해 이를 무시하던 심판장은 결국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나를 부르더니 속보로 이것저것 하라고 했다. 심판장 옆에서는 모 지점 심판이 계속해서 말이 파행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난 그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어서 ‘스프링 마운틴’이 파행을 한다면 여기 참가한 모든 말이 파행을 할 것이라고 심판위원장에게 말했지만 이미 심판위원장은 내게 마필 파행 실권을 줬다. 결국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대표팀에는 그 모 지점 심판위원의 아들이 날 정정당당(?)하게 제치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게 됐다.

승마 내 사랑
선발전 이후에 난 많은 실망을 했다. 그리고 한동안 승마를 하지 않고, 보통의 또래 친구들처럼 학교생활만 열심히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점차 내 마음은 다시 승마장 향하고 있었다. 난 참 자존심이 없는 놈이거나 줏대도 없는 놈인가 보다. 그런 시련을 겪고도 다시 승마장으로 향하니 말이다. 아니면 승마계에서 흔히들 말하는 말 귀신과 함께 사는 게 아닐지도.


▲나의 애마 ‘스프링 마운틴’은 아주 용감한 녀석이었다. 어떤 때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용감해서 내가 위험을 느낄 정도였다. ‘스프링마운틴’과 함께 1985년 한국마사회에서.

▲결국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대표팀에는 권력의 실세를 등에 업은 모 심판위원의 아들이 날 정정당당(?)하게 제치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게 됐다. 선발전에서 실망한 난 한동안 승마를 하지 않았지만 줏대가 없는 건지 말 귀신이 들린 건지 다시 승마장을 향하고 있었다. ‘스프링마운틴’ 1987년 한국마사회에서.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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