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13)


친근해보이던 그놈
난 그놈을 처음 기승한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보이워크’를 탈 생각에 잔뜩 기대에 부푼 나는 기승 준비를 해 그놈을 마장으로 데리고 갔다. 회장님께서 먼저 기승을 하셨고, 난 하나부터 열까지 녀석의 특성 어느 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회장님의 기승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회장님은 처음 기승할 때 운동을 한 지 오래되어서인지 약간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괜찮아져 고삐를 길게 잡고 평보를 하셨다. 평보를 하는 모습이 어찌나 늠름하고 멋지게 보이던지. 그놈도 갖은 똥폼을 잡으면서 마장에 자기 혼자만 있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걸어 다녔다. 난 왠지 그런 놈이 귀엽고 친근감 있게 느껴졌다.

회장님의 멋진 모습
회장님은 평보를 이곳저곳 보여주듯이 하고 고삐를 아주 길게 잡고 경속보를 했다. 당시에는 Long and deep을 하지 않고 바로 고삐를 어느 정도 짧게 잡고 경속보를 했던 시기였는데 요즘 마장마술 선수들이나 하는 Long and deep을 하듯이 경속보를 했다. 난 의아해하며 계속 그 모습을 주시했다. 그런 모습으로 한동안 경속보 운동을 하고는 구보도 고삐를 짧게 잡지 않으시고 구보 운동을 했다. 녀석도 그런 것이 익숙한 듯이 구보를 했고, 낮은 장애물이지만 장애물도 그러한 방법으로 몇 번 넘었다.


잠시 후 회장님께서는 내가 서 있는 마장 가운데로 녀석을 타고 오시더니 하마를 하시고 약간 거친 숨을 몰아쉬시며 내게 기승하라고 하셨다. 난 벅차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기승을 했다. 고삐를 길게 잡고 평보를 하다가 회장님께서 운동을 시켜보라고 하셨다. 드디어 운동을 한다는 기대감으로 고삐를 짧게 잡고 경속보를 하려는데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잘못돼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현상이 나타났다. 고삐를 짧게 잡으려고 해도 쉽사리 짧게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녀석의 목이 길기도 했지만 수축운동이 전혀 돼 있지가 않아서 머리와 목이 고정이 되다시피 했다. 마디가 있는 고삐를 제일 길게 잡고 첫 번째 마디를 잡은 것이 최대한 짧게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녀석의 목은 뻣뻣하기만 했다. 더 이상 짧게 잡으면 그놈은 움직이기를 무척 부담스러워 하였기 때문에 도저히 짧게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회장님께서도 익숙지 않던 모습으로 운동을 하셨던 거다. 절대 Long and deep을 하셨던 것이 아니었다. 나도 첫날 운동을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녀석을 만나기 전에 기대에 찬 휘황찬란한 상상은 무참히 깨졌다. 그리고 나에겐 소리 없이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피나는 노력
내게 주어진 첫 번째 목표는 녀석의 원활한 수축과 Forward이었다. 난 매일같이 녀석에게 수축 운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훈련을 했다. 평지운동을 하면서 고삐를 매일같이 점차적으로 짧게 잡고 운동을 시켰다. 이때에도 고삐만을 짧게 잡으면 안 되고 고삐를 짧게 잡은 만큼 추진 또한 강하게 사용해야 했다. 그래야지만 녀석의 목이 고양되며 후구가 많이 진입을 한다. 만약 힘들다고 고삐만을 짧게 잡고 추진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면 말의 목은 고양되지만 후구가 들어오지 않고 후구가 들어오지 않은 만큼 장애물 비월 시 도약 능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기좌의 추진이 절대 약해서는 안 됐다. 녀석과 훈련을 하다가 잠시 긴장이 풀리면 기좌의 추진이 약해지기 일쑤였으며 그럴 때마다 녀석의 구보 움직임은 3박자의 리듬이 아닌 4박자의 리듬이 이내 나타나곤 해서 항상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알기에 박차와 채찍을 사용해서 후구의 활발한 동작을 계속 요구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녀석의 움직임은 점차적으로 힘차고 활달하며 uphill tendency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되자 녀석의 각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 또한 부드러워졌고 머리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유연해져 고삐의 길이가 자연스럽게 짧아지게 됐다.

한동안은 너무 강한 박차의 사용으로 박차가 접촉되는 녀석의 배 부분에 털이 모두 빠졌다. 심지어는 내 박차와 녀석의 피부에 마찰이 계속해서 일어나 빨갛게 피가 섞인 진물이 이 부분에 맺히기도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박차를 사용하지 않고 기승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의 변화가 더디 이루어지는 듯해서 나 혼자만 애달파하기도 했지만 녀석의 고통을 보고 박차를 계속해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때는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이 들고 땀이 흥건하게 등을 적시곤 했다.


한겨울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고삐를 끝에서 세 번째 마디까지 잡는 데 성공을 했다. 그 노력으로 인해서 녀석을 기승할 때 나는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느꼈다. 녀석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져서 녀석의 등 위에 있는 시간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장애물을 비월하는 것도 더욱 수월해졌다. 이후에 그때까지 소홀했던 유연운동, Gymnastic등 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운동을 훨씬 쉽고 정확하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대회에 참가한 녀석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다행히도 훌륭한 결과를 거뒀다.

말을 훈련시킬 때 그 말의 약점을 모두 한꺼번에 고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말의 가장 취약하고 심각한 약점을 잘 판단해 취약한 부분을 고쳐주는 게 좋다. 고쳐주는 과정에서도 전에 생각하지 못한 다른 약점까지 고쳐지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가장 취약한 문제는 대부분 또 다른 약점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점을 고치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어디까지 고쳐야 하는가를 먼저 정확하게 인식하고 훈련시킨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말의 약점을 모두 한꺼번에 고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약점을 고치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어디까지 고쳐야 하는가를 먼저 정확하게 인식하고 훈련시킨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1995년 한국마사회에서 ‘보이워크’와 함께.



생애 첫 해외전지훈련을 떠나다
난 ‘보이워크’와 ‘레이디호크’를 열심히 훈련시켰다. 그리고 대회에 참가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난 큰 자신감을 얻었고, 비시즌인 겨울 3개월 동안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내 생애 첫 해외전지훈련은 또 다른 동기 부여가 됐다. 전지훈련을 준비하면서 영어 학원도 다니고 운동도 열심히 하며 호주 전지훈련에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전지훈련 준비 기간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호주에서 한 달은 회장님과 전무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서 지냈다. 그 이후에 두 분은 먼저 귀국하고 나 혼자 호주에 남게 됐다. 회장님이 떠나신 후 난 승마장 숙소에서 지내며 훈련을 하게 됐다. 날 도와주는 Groomer없이 난 혼자 오전에 세 마리의 말과 함께 운동하고, 오후에도 역시 세 마리의 말을 운동시켰다.

바쁜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기상해 대충 씻고서 사과 한 개와 식빵 한 조각에 잼을 발라서 먹고 먼저 첫 번째의 말을 탄다. 훈련 후 첫 번째 말을 수장을 시켜 마방 복도 끝에 묶어놓고 다음 말을 운동하고 들어온다. 두 번째 말을 수장대에다가 옮겨놓고 잠시 쉬게 해놓고, 그사이에 첫 번째 말이 물기가 다 마르면 발굽에 발굽 보호 기름을 바르고 나서 마방에 집어넣는다. 다음에 탈 세 번째 말을 복도에 묶어 굴레를 제외한 기승준비를 시켜놓고 수장대에 있는 말을 수장시켜 복도 끝 첫 번째 말이 있던 곳에 묶어놓는다. 그리고 세 번째 말을 기승한다. 내게는 날 도와줄 수 있는 Groomer가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 운동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적절한 계획을 정해놓고 운동을 해야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운동을 할 수가 있었다.

▲합장은 온통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뿐이고 오로지 나 혼자만이 검은 머리카락을 가졌기 때문에 내 행동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것만 같았다. 2010 독일 전지훈련 중 ‘토마스_오말리’와 함께.

머슬과 출전한 첫 대회에서 낙마하다
운동시키던 말 중에 Stable name이 ‘머슬(Muscle)’이라는 이름에 외모가 아주 근사한 녀석이 하나 있었다. 장애물 말이었는데 집에서는 곧잘 장애물을 넘었다. 훈련이 완벽하진 않았어도 녀석과 함께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대회에 참가를 했다. 첫 번째 출전대회는 훈련하는 마장에서 마필 운송차량으로 6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대회였다. 아침 일찍부터 경기가 개최되기 때문에 새벽 2시에 말을 싣고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출발을 했다. 호주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해서 당일치기로 대회에 출전을 한다. 새벽에 이동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난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올리기 위해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몸이 피곤했는지 시합 도중에 녀석이 장애물 앞에서 완벽한(?) 기술로 거부를 하는 바람에 낙마 실권을 당하고 말았다. 시합장은 온통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뿐이고 오로지 나 혼자만이 검은 머리카락을 가졌기 때문에 내 행동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 낙마를 하다 보니 넘치던 자신감은 모두 사라지고 도리어 다음 대회가 걱정되기까지 했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
하지만 첫 대회의 쓰라린 기억을 상기하며 단단히 쓴맛을 본 난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러나 혼자남아 외지에서 훈련하다보니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내 마음은 훈련에서도 나타났다. 나를 가르치는 코치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난 자신감을 많이 잃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시 훈련하는 마장으로 돌아온 난 녀석을 기승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녀석을 이해하려고 훈련 방법도 바꾸어 봤다. 그 결과 녀석에게 불안해하던 내 마음도 점차적으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왠지 충분하게 녀석을 믿지는 못했다. 이러한 나의 마음과는 달리 녀석은 좀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 했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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