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14)


연속 장애물 앞에서 낙마
‘머슬’과 두 번째 경기에 참가한 난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경기 입장 전부터 집중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낙마의 징조인지 녀석은 좀처럼 집에서와같이 자신감 있게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했다. 코치님은 좋다고 했지만 내가 느끼는 기분은 영 신통치가 않았다. 녀석이 워낙에 겁이 많아서 연습 장애물을 높이 뛰기 때문에 코치는 좋아 보였던 듯싶다. 어쨌거나 불안한 마음을 안고 나는 경기장으로 입장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녀석의 심장 박동이 내 다리에 그대로 느껴질 만큼 쿵쾅거리고 있었다. 녀석의 심장 박동을 느낀 난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긴장을 유발시키면서 천천히 장애물 주위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장애물에 익숙해지게 보여 주기도 했다. 출발 벨이 울리고 첫 번째 장애물부터 5번 장애물까지는 비교적 잘 뛰어넘었다. 하지만 2연속 장애물인 6번 장애물에서 코가 땅에 닿을 만큼 머리를 밑으로 최대한 내리며 최고 난도의 기술적(?) 거부를 하는 통에 난 힘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낙마하고 말았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훈련하는 마장에서는 그렇게 잘 넘었는데 시합장에만 오면 겁을 잔뜩 먹고 자신감을 상실해버린다니. 녀석은 어설픈 Home star로 밖에 치부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낙마와 눈물
세 번째 대회에서도 녀석에게 철저히 배신을 당했고 그 결과로 인해서 내게도 서서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자신감을 많이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모든 운동경기에서는 자신감이 경기 결과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미친다. 자신감을 잃은 내게 좋은 결과가 찾아올 리가 없는 것은 불 보듯 자명했다. 그해 전지훈련의 대미가 되는 마지막 네 번째 대회에 참가한 난 그 경기에 출전하여 두 번이나 낙마하게 됐다. 한 경기에서 한 번 낙마를 하면 실권이 된다. 두 번의 낙마 중에 한 번은 경기에서 낙마하여 실권을 당했고, 또 한 번의 낙마는 경기 전 연습 마장에서 아주 낮은 장애물을 뛰어넘다가 낙마를 한 것이다. 그때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낯이 뜨거워서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연습장에서 낙마를 한 덕분에 자신감이 바닥 상태였다. 그러한 상태로 경기에 임했으니 좋은 결과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난 너무 창피해서 경기가 끝나고 말 운송차에 있는 카라반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다른 외국 선수들을 보기에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끝내는 억울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한번 나오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승마술에 대한 실망과 자책, 열심히 운동한 시간에 대한 불신과 나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상되며 더 많은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서야 깊은 한숨과 함께 눈물은 멈췄다. 날 걱정하던 코치님은 말을 단들이 해두고 날 찾아 내가 있는 카라반에 왔다. 내 모습을 보고 눈치를 채신 코치님은 내 등을 두드리며 기분 전환을 시켜줄 양으로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어주신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켰다. 아마도 그렇게 해서 내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터닝포인트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마도 그때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만약 그 일들을 내 마음속에서 떨쳐내지 못했다면 열정적으로 승마를 하는 지금의 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그 일을 이겨내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지금도 그 기억을 절대로 잊지 않고 있다. 다시는 그러한 일을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말을 만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수모를 당할지 누가 장담을 할 수 있을까? 항상 자신이 기승하는 녀석에게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길 바란다.




강원도승마협회에서 새로운 시작
호주에서 ‘실버데일’과 함께 수입된 녀석이다. Grey 모색을 하고 있으며 성격이 소심하고 온순하며 키가 크고 동체가 아주 긴 녀석이었다. 서러브레드 치고는 아주 덩치가 큰 녀석이었다. 난 경남승마협회 직장을 그만두고 전북승마협회에 일 년간 몸담고 있다가 강원도승마협회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강원도승마협회의 회장님이신 허경화 회장님을 존경해서 왔고, 또한 내 본가에서 70km가량 떨어져 있어 출퇴근이 가능할 것 같아서 춘천에 소재를 두고 있던 강원도승마협회 교관으로 직장을 옮겼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다
녀석은 허경화 회장님의 자제인 허준성 선수가 호주에서 수입해왔다. 내가 강원도승마협회로 옮기기 전에 수입되어 대회에 몇 차례 출전했다. 결과는 흡족하지 않았었지만 좋은 녀석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난 협회 소속의 선수들을 지도하며 마필들을 훈련시키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녀석은 소심해서 높은 장애물 비월을 삼갔으며, 아주 천천히 훈련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자칫 조그만 욕심으로 녀석에게 부담을 줘 자신감을 잃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에 조심을 더햇다. 만약 녀석이 소심하지 않았다면 거침없이 훈련을 시켰겠지만 소심한 성격을 가진 녀석들은 훈련 계획을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철저히 세워 훈련을 해야만 한다. 절대로 감정에 치우치거나 그때 그때 기분대로 훈련을 시키면 돌이키기 어려운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경험이 많고 승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면 상황 변화에 따라 훈련을 하는 것이 일반화돼있지만 자칫 감정에 치우쳐 녀석과 같이 소심한 성격을 지닌 녀석들을 다그치면 아주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외국에서 고가를 주고 수입되어 온 녀석 중에는 기승자의 잠깐의 감정 조절 실수로 인해 치명적 단점이 나타나 도태되는 녀석들이 아주 많다. 좋은 녀석을 수입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대회에 출전을 시키다 보니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런 불쌍한 녀석들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한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개중에는 몇몇 잘 버텨내는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그 녀석들도 최악의 상황은 아니겠지만 능력이 많이 저하된다.

또 다른 숙제
난 이러한 일들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기에 더욱더 훈련에 조심했던 것 같다. 대회에 출전을 하기 위해 훈련을 차근차근 준비를 했고, 높지 않은 종목부터 출전을 시켰다. 그 결과 가끔 만족할 만한 성적을 얻기도 했다. 한두 차례 대회에 참가했고 다음 대회를 위해 대회 장소로 마필운송을 하는 날이면 녀석은 내게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줬다. 안 그러던 녀석이 마필운송 차에 올라타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버릇이 생긴 것이다. 말 수송차에 태우려고 하던 중 달아나려는 녀석에게 끌려다니기를 여러 번. 그중에 몇 번은 녀석을 놓치기도 했고, 녀석이 날 끌고 도망가려는 것을 나 또한 놓치지 않으려고 힘으로 버티다가 힘에 부쳐 꼭 잡은 마방굴레 끈이 손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잡고 있던 손바닥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마필 운송차에 얌전히 잘도 올라타는 것이었다. 잔뜩 긴장을 했었는데 고맙게도 집에 올 때는 고생을 시키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고민을 해봤지만 특별한 문제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단지 녀석이 집에 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다는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그다음 대회에 참가를 위해 운송을 하던 날에는 녀석이 도망을 갈 수 없도록 장애물들로 마필운송차량 뒤로 20m가량을 길게 막아 놨다. 녀석 뒤에서 횡목을 이용해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아서고 녀석을 운송차량에 태우게 됐다. 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점을 찾기 위해서 처음 대회에 참가하던 때부터 되짚어 생각하고 고민을 해봤다. 하지만 어떤 문제점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마필 운송기사의 운전 습관
그러던 중에 당시에 마필운송차를 운전하던 기사의 운전 습관 때문에 녀석의 엉덩이가 말차에 쓸려 찰과상이 조금 있어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난 운전기사의 운전 습관을 지적하게 되었고 다소의 말다툼을 했다. 그러나 운전습관을 고치게 했고 그 찰과상으로 인해서 다음 대회에 참가할 때는 마필운송차량의 수송 칸수를 한 칸 없애고 두 칸을 한 칸으로 넓혀서 녀석을 그 자리에 태워서 운송하게 됐다. 동체가 유난히 길었던 녀석은 편안해 보였다. 점점 집으로 돌아올 때도 마필운송차량에 올라타기를 거부해 날 불안하게 하던 녀석이 아무 저항 없이 승차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무릎을 치며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녀석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자기 체형에 비해 비좁고 비좁은 차 안에서 고문 아닌 고문을 받았으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지 예상이 됐다. 이로 인해 대회에 참가해 자기의 실력을 모두 다 발휘하지 못했으니 결과 또한 많은 손해를 봤을 것이다.

내 말은 내가 관찰해야
말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말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이 되면 보다 범위를 넓혀서 그 문제점을 먼저 파악하고 이후에 적당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 그 문제점이 파악되기도 전에 당시의 감정 조절 실수로 흥분해 마필을 혹사시키거나 학대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말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갑자기 한다면 틀림없이 그런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있었거나 좋지 못한 일들이 녀석들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장애물이든 마장마술이든 우리의 잘못된 습관으로 또 다른 나쁜 습관이 말들에게도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승을 할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녀석들이 나쁜 습관을 가지지 못 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어렸을 때 주위에 있는 누군가의 습관적인 행동이 멋지게 보여서 그 행동을 따라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됐던 것을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때론 큰일이 되어 돌아오는 잘못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말을 만나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수모를 당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항상 자신이 기승하는 녀석에게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길 바란다. ‘첸시알’과 함께 1994년 뚝섬승마장.


▲장애물이든 마장마술이든 우리의 잘못된 습관으로 또 다른 나쁜 습관이 말들에게도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승을 할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녀석들이 나쁜 습관을 가지지 못 하게 할 필요가 있다. ‘폴포스게일’과 1997년 장수승마장.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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