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17)


장애물 앞에 급한 성격
리키 녀석의 두 번째 문제는 장애물을 넘기 전 아주 급해진다는 점이었다. 대다수 장애물 말들처럼 너무 급한 나머지 Take-off 지점을 찾지 못하고, Take-off 지점보다 장애물 쪽으로 너무 과도하게 깊어졌다. 장애물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장애물 높이와 상관없이 장애물을 거부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설사 장애물을 잘 넘었더라도 착지 지점이 2.5m 이상이 됐고, 이 상태가 되면 녀석의 입은 찰고무를 당기는 것과 같은 오묘한 느낌이 전달됐다. 당시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난 한동안 낮은 장애물만 연습하며 녀석의 버릇을 고칠 궁리에 몰두했다.

기초 트레이닝의 중요성
장애물을 넘기 전에 고삐를 놓아줘도 녀석이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낮은 장애물 밑에 횡목을 서너 개 깔아놓고 스스로 뛰어넘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장애물을 넘는 것을 높게 하지 않고, 기초 트레이닝에만 중점을 뒀다. 그와 동시에 녀석이 스스로 장애물 비월 지점을 찾는 훈련을 시켰다. 약 2개월가량을 기초 훈련만 시킨 결과, 장애물을 넘을 때 급하던 녀석의 성격은 점차 보완돼 갔다. 점차 장애물의 높이를 조절해 훈련을 했다. 녀석의 뛰어넘기 능력은 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숨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녀석을 타고 장애물을 넘으면 마치 통통 튀는 탁구 공 위에 올라 앉아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탄력이 좋았다. 기초 훈련으로 녀석이 점차 자신감을 회복하는 모습이 보이자 나도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문제 해결 후 쌓이는 신뢰감
녀석의 세 번째 문제점인 높은 머리와 고양된 목을 바로 잡기 위해 운동을 시작할 때 평보를 많이 했다. 몸에 남아 있는 긴장과 경직된 몸을 풀어줌과 동시에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찾도록 했다. 기승 시에 Draw rain을 사용해 녀석의 목의 위치를 아래로 향하도록 했다. 목의 위치가 아래로 향하자 머리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이런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훈련을 하자 재갈을 받아들이는 녀석의 반응이 점차로 부드러워졌다. 머리와 목의 위치가 높았을 때 녀석이 평보하는 느낌은 마치 pacing이 심한 말을 타는 듯이 부자연스러웠고 속보 반동은 아주 강했다. 녀석을 타고 있는 난 녀석의 반동을 이겨내려고 허리에 필요 없는 힘을 줘야 했다. 당연히 내 자세도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녀석 또한 부자연스럽고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문제를 고치게 되자 나와 녀석 사이에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다음 해 방콕 아시안 게임이 있던 해 봄부터 시작된 아시안게임 선발전에 강한 자신감을 갖고 녀석과 함께 출전했다. 마지막 4차 선발전 150cm 경기에서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난 4위로 선발전을 마쳤으나 마지막 4차전에서의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아시안게임 출전을 다음으로 미루어야만 했다.

아시안게임 선발전 이후 녀석은 당시 마주인 후배 어머니가 매각을 원하셔서 K 선배에게 매각됐다. 난 매우 섭섭했지만 내 말이 아니었기에 이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또한 녀석을 매입한 K 선배는 녀석을 데리고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겠다는 말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녀석이 매각되고 한 달 후에 전국 체육대회 승마경기가 과천에서 열렸다. 난 그곳에서 대회에 참가한 녀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만났고 녀석을 살펴본 나는 녀석의 편자를 보고는 걱정됐다. 편자를 보통의 말처럼 원위치시켜놓았기 때문이다. 난 녀석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K선배를 비롯한 함께 대회에 참가한 대선배님에게 리키의 문제점을 알려드렸다. 내가 녀석의 문제점을 알려주는 동안 두 선배님들께서는 날 타이르는 듯이 걱정하지 말라 하시며, 내 말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녀석은 그런 상태로 대회에 출전했고, 전국체전 대장애물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기염을 토했다. 나도 녀석의 우승이 매우 반가웠고 대견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녀석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제기했던 문제로 인해 녀석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당했다고 했다. 결국 다시는 리키 녀석의 화려한 비월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옛말에 ‘진정한 목수는 구부러진 못을 펴서 쓴다’는 말이 있다. 모든 말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각자 약점을 갖고 있다. 그 약점을 찾아내고 보완해 가면서 승마를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특히, 경기에 출전하는 말에게는 심각한 운동기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선수는 무엇보다도 운동기 질환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완벽한 부상 방지를 위해서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

▲옛말에 ‘진정한 목수는 구부러진 못을 펴서 쓴다’는 말이 있다. 모든 말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각자 약점을 갖고 있다. 그 약점을 찾아내고 보완해 가면서 승마를 하는 게 중요하다. 2011년 대전복용승마장에서 ‘다크뷰티’와 함께.



새로운 도전
난 강원도 승마협회를 퇴직하고 강원도 진부에 있는 두미울 경주마 생산 영농 조합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내 새로운 도전은 훌륭한 경주마 생산이었다. 이 일은 종빈마의 발정 유도부터 발정 주기 파악, 교배, 망아지 생산, 순치, 경주마로서의 데뷔까지 경주마에 대한 모든 일을 아우르는 영역이었다. 새로운 도전은 내게 또 다른 활력을 가져다줬다. 일을 찾아 한다는 게 익숙지가 않았고,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내 열정은 매우 뜨거웠다. 진부의 매섭고 살을 에는 추위도 모두 녹이고 남을 정도로 말이다.

진부령에서의 일상
1999년 겨울 일을 시작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2000년 봄이 찾아 왔다. 진부는 해발 700m가 넘는 고지라서 겨울이 아주 길고 날씨가 매우 춥다. 씨암말들의 발정은 날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지리적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진부는 씨암말들의 발정을 더디게 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새벽에 서치라이트를 켜놓아 말들의 바이오리듬이 조금이라도 빨리 활성화되게 도움을 줬다. 하루의 일정은 발정 유도부터 시작된다. 동시에 발정 주기와 발정 확정 일을 결정하게 된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는 발정 유도 시간은 깊은 산속에 조용하게 자리 잡은 목장의 모든 정적을 깨뜨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시정마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씨암말들의 교태 섞인 울음소리는 극도의 긴장감과 마음속에 묘한 여운을 남기곤 한다.

날씨의 문제로 인해 교배 시기는 다른 목장에 비해 조금 느렸지만 교배 후에 수태되는 성공률은 98%로 높았다. 내륙에 있는 생산 목장의 대부분의 씨암말은 원당에서 한국마사회의 교배 지원 프로그램으로 무상 지원받고 있었다. 우리 목장은 말들의 발정 시기를 최대한 정확하게 맞춰 원당 목장에 운송한 후 교배 지원을 받았다. 다른 목장의 경우에는 한국마사회 원당 목장에 위탁을 시켜 지원을 받곤 했지만 우리는 최적의 시기에 맞춰 말을 수송하는 체계로 관리에 철저함을 지켜야 했다.

‘이화령’과의 첫 만남
하루는 교배를 마치고 목장으로 돌아가려는데 사장님께서 그곳에 이화령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나워서 교배를 못 하고 있다며, 목장으로 데리고 와서 훈련시키면 어떻겠냐고 전화를 하셨다. 난 특별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알았다고 답하고 ‘이화령’이란 이름을 가진 녀석을 찾았다. 날 안내한 관리사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차에 태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난 녀석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짐작을 했다.

▲난 강원도 승마협회를 퇴직하고 강원도 진부에 있는 두미울 경주마 생산 영농 조합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내 새로운 도전은 훌륭한 경주마 생산이었다. 2010년 독일 전지훈련 중 ‘토마스 오말리’와 함께.

녀석을 목장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는 먼저 녀석의 넘치는 힘을 빼야만 했다. 난 녀석의 쓸데없는 패기를 꺾어 놓기 위해 조마삭을 돌리기로 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녀석을 탈수도 없고 해서 조마삭을 돌리기로 한 것이다. 조마삭 끈을 빌려 방목장 한곳에 들어가서 조마삭을 돌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충분한 성의를 갖지 않고 뜨뜻미지근하게 움직였다. 녀석의 행동을 충분히 관찰한 난 녀석에게 좀 더 강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목장이기 때문에 조마삭 채찍이 딱히 없었다. 그래서 난 방목장 바닥에 있는 조그마한 돌을 주워 녀석이 게으름 필 때마다 녀석을 향해 던져가며 운동을 시켰다. 운동한지 한 시간 가량이 지나자 내 주위에 조그마한 돌멩이는 하나도 남아나질 않을 정도로 운동을 강하게 시켰다. 그러고 난 후 평보를 조금시키고 말차가 기다리는 마방 뒤로 녀석을 끌고 갔다. 관리사 몇 분에게 녀석이 올라타면 칸막이만 좀 닫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관리사분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디 한번 태우는가 보자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녀석은 난포검사를 하기 위해서 보정 틀에 들어갔다가 뒤로 자빠지면서 엉덩이가 크게 찧어지는 상처를 일으키는 대형 사고를 쳤고 그 이후에는 보정 틀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녀석의 목장에서 녀석을 데리고 가려고 해도 운송차에 절대로 올라타지 않았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여러 관리사와 목장에서 온 식구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녀석을 운송하려고 했지만 모두 헛고생이었단 소리를 들었던 터였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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