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며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사진은 故 P씨의 마지막 유언장(자료 제공=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국내 제1호 말 마사지사로 잘 알려진 렛츠런파크 부경의 관리사 P씨(38)가 5월 27일 새벽 1시 5분경, 마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X같은 마사회’라는 문구가 포함된 세 줄의 짧은 유서 문구, 그리고 사고 전 그의 행보가 일부 밝혀지면서 대부분 언론에서는 사인 배경을 두고 다양한 추측 보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해독되지 않은 두 줄의 유서 문구처럼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말하려 했던 것은 무얼까요. 그가 쓴 ‘마사회’란 단어는 특정 개인이나 기관을 지칭하는 걸까요.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이 ‘악의 평범성’ 즉, 조직이나 국가에 순응하는 ‘보통’ 사람들의 악행을 지적한 건 아닐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관련 기사 6면

악의 평범성…“악마(馬)는 디테일에 있다”

제2기 보수정권 4년 내내 악재 끊이지 않아 어려움
부정 보도에 적극·통합 대응 방식 논의 구체 실현
제2차 피해도 속출…말산업 관련 학과는 미달 사태도
말 만들고 키우고 함께한 우리 모두가 평범한 최순실
반복되는 악마(馬)의 레이스…근본 원인 성찰해야

말산업육성법은 보수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농업농촌, FTA 대안 산업으로 그 필요성이 제기, 2009년부터 입법 토론회 등을 거쳐 2011년 3월 제정, 9월 정식 발효됐다. 말이라는 단일 축종으로 특별법이 만들어진 건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었기에 기대가 컸지만, 7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기대보다는 실망이 큰 게 사실.

그 근본 배경에는 말산업 역시 다른 축산, 농어업처럼 아니 그보다 더한 국제·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무한경쟁 체제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지목된다. 덧붙여 다른 축산, 농어업과 달리 근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더 큰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산업화가 낯선 말산업계는 조직, 홍보, 언론 대응 등 총체적 난국에 시달리며 후퇴 양상까지 보였다는 점이다.

악재도 끊이지 않았다. ‘제2기’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어린이 캠프 화재 참사가 발생하더니 세월호 침몰, 구제역과 메르스 등 질병이 창궐하며 매해 악재에 시달려야 했다. 방점은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과 정유라 승마 특혜 의혹이 찍었다. 경마는 곧 도박이라는 사회적 편견 극복도 요원했는데 ‘귀족’, ‘공주’ 승마는 말 그대로 기름을 부은 격.

졸속으로 치러진 4대강 사업처럼 말산업은 국민에게 ‘말(馬)썽꾸러기’가 된 셈이다. 우리는 전 국민의 주목을 고스란히 받았다. 말을 만들고 말을 타고 말과 함께하는 우리가 마치 박근혜, 최순실, 정유라인 것처럼 차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비난을,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각종 의혹 제기와 비판을 일삼았던 언론은 무자비했다. 봐주는 것 없었다. 아무리 사회 공헌을 하고 좋은 일을 해도 ‘그들만의 리그’고 ‘화상경마장’이며 ‘적폐’였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아무래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의 도구로 전락한 승마가 먼저 떠오른다. 정유라 특혜 입학 논란의 제2차 피해자는 바로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해 정정당당하게 대학에 입학한 체육특기생들이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11월 26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제5차 주말 촛불집회 현장에 고교생 승마특기생들 3명이 부정적 인식을 바로잡으러 직접 나와 “대학 가려고 시작한 승마가 아니다”, “저희는 말이 좋을 뿐입니다”라는 피켓을 드는 촌극까지 연출됐다.

우정호 전국승마선수협의회 회장 역시 본지에 인터뷰를 요청해 “애먼 체육특기생들에게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운동했고 지금도 학교를 다니면서 짬을 내서 운동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다. 모든 체육특기생들이 정유라처럼 안 한다”고 강조했었다.

승마 회원 고객의 발걸음은 뚝 떨어진 것은 물론 주요 대학 말산업 관련 학과 신입생 모집은 올해 처음으로 미달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각종 승마대회는 연기되거나 취소됐고, 제2차 종합계획까지 발표가 지연됐다. 일각에서는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말산업 전담 기관인 한국마사회 탓만 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 언론 보도는 말산업계 특히 승마에 집중해 사실 관계나 배경을 보도하는 대신 직접적 상관이 없는 부분까지 엮어 의혹을 제기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마치 성범죄나 심각한 사회적 범죄가 터질 때마다 언론은 범죄 행위 자체를 알리려고 범죄자나 관여 사람들을 비난하기에 급급, 주변 사람들이 부당하게 ‘2차 피해’를 입는 다반사의 중심에 놓인 처지.

사진 노출은 물론 기사·제목 생산 과정에서 2차 피해는 막연하게 반복되고 본질 대신 ‘곁다리’만 언급하는 흥밋거리로 전락한다. 말산업계 ‘외부’는 ‘내부’의 특성과 성격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 그 피해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커지고만 있다. 첫걸음을 막 뗀 말산업계에 전담 홍보 기관도 전무하고,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나 전담 기관인 한국마사회의 대응 방식도 근본 문제 대신 일회성 반박에 그치는 등 언론 홍보 인프라가 전무한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는 언론 보도 방식이나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무지’를 핑계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보듯 언론이 제기한 ‘의혹’ 다수가 사실로 밝혀지고 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대한승마협회 회장사 삼성은 총수가 구속됐으며, 정유라 역시 소환돼 현재 조사를 받고 있지 않는가.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발전시킨 ‘악의 평범성’ 개념을 상기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로 2차 대전 당시 집단 학살을 지위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데 주목한다. 고도로 조직화된 전체주의 혹은 관료주의 사회에서 “시키는 일을 그대로 실천한 인간이며 관리일 뿐”이라고 한 아이히만에게 그럼에도 ‘유죄’라고 아렌트는 선언한다.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오랜 과정은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교훈을 요약한다”고 지적했다.

마방의 팀장으로, 2008년부터 노동조합에 가입해 대의원으로도 활동했던 P씨는 5월 초, 관리사들의 성과급 지급과 관련해 마사회 측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평소 “우리 마방은 그나마 벌어서 낫지만 다른 마방의 동생들은 밥 못 먹는 아이들이 많다”며 울분을 토로해왔다는 증언이 있는 등 성과급 차등 지급 문제에 오랫동안 저항했던 걸로 또한 알려졌다.

그의 죽음을 마주하며 우리 각자는 어떤 달라진 생각, 목소리, 행동을 해야 할 것인가. 1500일 째 지난한 반목을 해오고 있는 용산 렛츠런문화공감센터 문제와 대전·김포 센터 추진과 관련해 시민사회가 적극 대처하고 있는 문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것이 전망되는 등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 말산업계에서 ‘말밥’을 먹고사는 우리들의 뒤늦은 자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직면한 건 아닐까.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며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사진은 故 P씨의 마지막 유언장(자료 제공=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말이라는 단일 축종으로 특별법이 만들어진 건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지만 발전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근본 배경으로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무한경쟁 체제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 그리고 그에 대한 산업계 전반에서 떠오르는 저항이 지목된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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