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식 감독의 ‘나와 함께한 녀석들’(24)


말복 없는 놈, 말 사러 가다
휴~‘랜드시거’ 녀석을 생각하면 나오는 한숨이다. 난 참 말복(福)이 지지리도 없는 놈이다. KRA승마단에 입단하고 드디어 내가 탈 장애물 말을 구입하러 독일에 가게 됐다. 말을 타기 시작한지 25년 만에 내가 탈 장애물 말을 처음으로 직접 구입하러 간다는 사실에 몇날 며칠을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말을 구입하러 가서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난 잠들기 전에 말 구입 시 실수하게 될 목록들을 되새기느라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서 다음날 운동에 지장을 받기도 했지만 행복한 고민 속도 있었다. 새로운 말을 만난다는 기대와 설렘을 가슴에 가득 안고 독일에서 말 검수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곳은 ‘디트마’라는 말 딜러의 승마장이었다. 이곳은 우리의 베이스 캠프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매일 그날의 스케줄을 짜고 검수를 시작했다.

날 미소 짓게 한 녀석의 등장
검수를 시작한 첫날은 실망만 가져왔다. 말들의 상태가 엉망이었다. 첫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 방에 들어온 난 그날 검수하며 캠코더로 녹화 한 영상을 살펴봤다. 녹화 영상을 통해 말들을 다시 한 번 살펴봤지만 맘에 드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걱정되는 마음을 다독이며 잠자리에 들었다. 마지막 4일째 되는 날까지 나와 호흡이 잘 맞는 말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날 우리는 시골 한적한 곳에 있는 승마장으로 검수를 하러 갔고 그곳에서 아주 괜찮은 녀석을 검수했다. 녀석은 타기도 수월했고 장애물을 넘을 때 도약력이 아주 우수했다. 녀석을 기승한 후에 내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방그레 지어지는 미소를 애써 감추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감춰지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이미 그 녀석에게로 향했다. 마치 해바라기처럼 말이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말을 타더라도 그 녀석이 아니면 안 된다고 머릿속에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 녀석과 또 다른 녀석 두 마리 검수를 마치고 우리는 베를린으로 향했다.

의외의 변수
베를린에서도 여러 마리를 검수를 했고 그중 한 녀석이 꽤나 좋았다. 장애물 검수를 열심히 하던 중에 마주가 140cm정도 높이의 장애물을 뛰는 것을 보고 이를 제지했다. 나는 그런 마주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그냥 그 녀석은 바로 포기했다. 130cm의 장애물을 잘 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140cm이상의 장애물을 넘는 것은 말의 능력을 훨씬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제지하니 그 말의 능력을 제대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의 어이없는 검수를 마치고 다음 검수를 할 곳으로 이동하던 중에 날이 어두워 졌다. 일단 하룻밤을 묵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호텔에서는 지난번 프랑크푸르트에서 검수했던 녀석들의 엑스레이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내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해주던 녀석의 엑스레이라니, 긴장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우리를 위해 함께 검수에 동행했던 수의사 분께서 한참을 살피더니 왼쪽 앞다리 관절에 뼛조각이 있어 한국으로 같이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실망스러운 말을 했다. 그리고 다른 말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 녀석을 가져가야 한다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규정을 얘기할 때는 답답하기만 했다. 오죽하면 난 이런 말까지 했다. “녀석이 아니고 다른 말을 가져가려고 한다면 방목장에서 뛰어노는 망아지 한 마리를 가져다가 가르치는 게 더 좋다”고 말이다. 그러나 내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궁여지책으로 ‘랜드시거’란 녀석이 대체마로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랜드시거’와의 악연
앞에 이야기처럼 ‘랜드시거’ 녀석과 내 인연은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 그래도 녀석에 대한 내 기대는 찬란했다. 기대만큼 녀석에게 정성도 쏟아 부었다. 한국에 도착해서는 조심에 조심을 다해 훈련을 시작했고, 머지않아서 장애물을 넘기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높지 않은 장애물을 넘도록 해서인지 장애물 낙하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퍼펙트였다. 그리고 얼마 후 중간 높이인 130cm 장애물을 연습했다. 그런데 Liver-pool이 설치되어있는 Oxer장애물에서 거부를 기가 막히게 했다. 난 낙마를 했고 매우 당황했다. 그날 이후 녀석의 조심성이 너무 과하다고 느껴졌다. 난 매번 장애물을 넘을 때마다 부담을 가져야 했다. 특히, 녀석은 1Stride(7.5m) 연속 장애물에서 거부를 기가 막히게 했다. 1Stride연속 장애물에서는 거부를 하기 도 힘들거니와 만약 거부를 한다면 기승자는 90%이상이 낙마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 녀석의 악벽으로 난 수도 없이 낙마를 많이 했다. 또 녀석은 그 잘못으로 내게 가혹한 체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악벽은 끝내 고쳐지지 않았다.

녀석은 자신 위에 있는 기승자보다 자기가 넘어야할 장애물을 더 많이 무서워하는 장애물 말로 치명적 단점을 갖고 있었다. 장매물 말 구매 시 성격이 너무 조심스럽다면 다시 한 번 세심한 관찰을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날 종합마술 대표선수로 발탁시켜준 ‘랜드시거’는 내게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고 말았다. 2010년 초에 아시안게임을 위해서 내가 독일로 해외 전지훈련을 나가 있던 사이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과 작별을 고한 것이다. 2008년 한국마사회에서 ‘랜드시거’와 함께 복합마술 경기에 출전한 모습.


복합마술에서 재능을 찾다
이렇듯 녀석에게 훌륭한 장애물 말로 성공을 바라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난 녀석에게 복합마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복합마술이라도 해서 성적을 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녀석의 걸음걸이는 훌륭했고 마장마술 훈련을 꾸준히 시키자 녀석의 걸음걸이는 더욱 좋아졌다. 웬만한 마장마술 말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평보에서 점수를 까먹기는 했어도 복합마술 마장마술 부문에서는 언제나 최상위의 점수를 얻었다. 출전한 한 대회에서는 이어진 장애물 경기에서 거부만 하지 않는다면 일등은 따 논 당상이었다. 녀석은 날 종합마술 대표선수로 발탁시켜줬다. 녀석의 활약에도 난 항상 녀석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녀석과 난 서로 만나서는 안 되는 사이었는지 모른다. 녀석과의 불편하고 아쉬움이 남는 시간들이 한 장 한 장 지나가던 중 난 2010년 초에 아시안게임을 위해서 해외 전지훈련을 갔고 내가 독일로 전지훈련을 가 있던 중에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로 녀석은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이별
녀석이 생명의 끈을 놓는 순간을 같이하지 못한 난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돌아와 막걸리 한 병을 들고 녀석이 묻힌 자리에 뿌려줬다. 안타까운 마음에 녀석에 대한 애도의 묵념을 했다. 묵념을 하는 동안 녀석과의 아팠던 시간들이 슬라이드 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듯 기억이 뚜렷이 났다. 기뻤던 시간들은 그 사진 속 깊은 한곳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지만 보일 듯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래서인지 묵념을 하는 동안 마음이 시리고 아팠다. 녀석은 마지막까지 나와 우리 팀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녀석은 내게 완벽한 애증의 관계로 평생 뇌리에 기억될 것이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좋은 주인 만나서 행복해라.




말 구매의 설렘
2006년 가을. 우리는 느지막이 독일로 말을 구입하러 갔다. 우리는 매해 봄철에 말들을 구입했으나 계절에 따른 말 판매 환경 및 동향을 알아보고 우리가 필요한 가장 적절하고 능력 있는 말을 도입하기 위해 가을에 말을 구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까지 말의 구입은 비교적 성공적이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우수한 말을 도입하기 위해 구입에 변화를 줬다. 매번 말 구입 차 출장을 갈 때면 그 설렌 기대감은 항상 같다. 인천 공항에서 출국시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이미 독일에 가 있었다. 독일에 도착한 상상을 하며 어떤 말을 선택할지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출국 전 공항에서 이것저것 할 일을 빼먹지 않을 만큼 정신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말의 눈빛, 마체의 생김, 걸음걸이, 발굽의 지세, 장애물 도약 자세, 도약하기 전의 행동, 도약 능력, 심지어는 모색까지 어느 한 부분 신경 쓰이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하나하나 집중을 해서 꼼꼼히 따져가며 조금 더 세밀하게 되새기고 싶었지만 흥분된 마음은 말 구매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오히려 흥분된 마음 때문에 말의 꼬리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 반복하고만 있었다.

말산업 선진국 독일
좀처럼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말산업의 선진국인 독일에 도착해 말 검수를 시작했다. 검수하는 지역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세계 최대의 말 생산자인 ‘Paul Shokemöhle(폴 쇼케뮬러)’의 마장(독일 Mühlen 지역)과 ‘Ulrich Kasselmann(율리히 카셀만’의 마장(독일 Osnabrück 지역)으로 검수를 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을 구입하러 가서 1회 시승을 하거나 특별한 경우 2회까지 시승을 할 수 있다. 하지만 3회를 시승 하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폴 쇼케뮬러는 독일 최대의 말 판매자답게 우리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며 시종일관 최고 상단의 모습을 보여줬다. 2008년 ‘안톤’과 한국마사회에서 대장애물을 넘는 모습.

폴 쇼케뮬러의 마장은 한 해 말 생산 두수가 700두가 넘었다. 우리가 검수해야할 말들은 9세부터 12세 까지의 말들이었기 때문에 숫자로 따지면 2,800두의 말 중에 선별된 말들을 검수하는 것이었다. 물론 어릴 때 두각을 나타낸 말들은 대다수 매각이 이루어졌겠지만, 그 말들은 우리가 치르려는 가격보다 크게는 몇 십 배가량을 더 받고 매각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 말들이 있더라도 우리와 함께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카셀만 마장은 마장마술로 명성이 자자한 마장이다. 장애물에서 폴 쇼케뮬러의 마장이 가장 유명하다면 마장마술에서는 카셀만이다. 이런 카셀만도 몇 년 전부터 장애물 말까지 훈련시켜서 매매를 하고 있다. 폴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지만 마장마술 명성 때문인지 향후 몇 년이 흐른 뒤에는 무시하지 못할 만큼 성장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3번의 시승 기회
검수 첫날 우리는 폴 마장에서 검수를 시작했다. 2두의 마필을 구입하러 갔기 때문에 우리는 2두에 대한 3배수인 6두의 말을 검수했다. 우리의 계획은 첫날 시승을 하고 세 번째 날 다시 시승을 하고 마지막으로 선별된 말을 최종적으로 시승하는 것이었다. 물론, 말을 판매하는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남는 장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을 구입하러 가서 1회 시승을 하거나 특별한 경우 2회까지 시승을 할 수 있지만 3회를 시승 하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상도에 어긋나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폴 쇼케뮬러는 독일 최대의 말 판매자답게 우리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며 최고 상단의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줬다.


교정교열=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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