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민의 국민 시인’, 찰스 부코스키와 그의 아내 린다가 경마장을 찾은 사진. 부코스키에게 경마는 곧 지난한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고 글쓰기의 원천이었다. “말이 더 이상 달리지 않게 되는 날엔 하늘이 풀썩, 널찍하고 육중하게 무너져내리며 깡그리 박살 낼 거다.”
올해도 어김없이 찜통 ‘무더위’와 잠 못 이루는 ‘열대야’가 찾아왔다. 관측 사상 최악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악몽이 되살아난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직장인 부모는 곧 주어질 여름휴가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생각만 해도 시원한 기분이다.

여름휴가 기간 중 서적 판매량이 는다지만, 대한민국 국민 독서량은 OECD 국가 최하위권이다. 한 달에 1.3권 읽는다. 드라마, 영화, 먹방도 좋지만 시원한 피서지에서 말 관련 소설, 책을 읽으며 머리도 식히고 교양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 관련 기사 5면

[2017년 추천 작가1] “말들이 내 뜻을 따라줄 때면 인생이 얼추 의미 있어 보인다.”

미국 문단의 ‘반역가’ 찰스 부코스키, 한평생 경마장 다니며 글쓰기 몰입
소설 속에서 7~90년대 미국 경마장 접할 수 있어…군중 자화상도 묘사
작가에게 ‘경마’는 지루한 일상을 버티는 힘…말(馬)은 예술혼의 모티브

“계속 잃기만 한다손 치더라도 경마장에 나와 있다는 건 그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거긴 미친 꿈도 있다. 하지만 거긴 따분하다. 현기증 나는 장소.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이 딸 방법을 안다고 생각한다.”

“난 오늘 257달러 건졌다. 서른다섯에 뒤늦게 경마를 시작했다. 36년짼데, 계산해보니 경주마들에게 받을 빚이 아직 5,000달러쯤 된다. 신들이 봐줘서 팔구 년 더 살게 된다면 빚을 다 받고 죽을지도 모르지.”

술과 여자 그리고 경마에 빠진 작가. 평생을 하급 노동자로 공장을 전전하다 우편배달부가 돼 12년 간 일하며 시를 쓴 사람. 49살이 되어서야 전업 작가가 됐고, 경험을 바탕으로 데뷔작 『우체국』(1971)을 쓴 뒤 『팩토텀』(1975), 『여자들』(1978), 『햄온라이』(1982), 『펄프』(1994) 등의 작품으로 미국 문단에 충격을 안긴 사람. 1994년 3월 백혈병으로 삶을 마감한 뒤 유언에 따라 묘비에 ‘Don’t Try’라는 역설을 기록한 이.

미국의 시인이자 작가로 최근 국내에도 잘 알려진 헨리 찰스 부코스키(Henry Charles Bukowski, 1920~1994)의 이야기다. 하층민이었던 그의 삶은 술과 여자로 점철됐고, 삼십 대 이후에는 거의 매일 경마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베팅하고, 돈을 따든 잃든 매일 술을 마시고 온갖 여자들을 만나 ‘난봉꾼’의 삶을 살아낸 그는 말년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설준규 옮김, 모멘토, 2015)에서 사실 경마장을 “거의 마지못해서 간다”고 소회했다. “경마 놀음은 나의 풀린 나사를 조여줬다”는 것이다.

“경마장에 나가 있으면 시간이 정말 죽어나간다는 걸 느낄 수 있다…그렇지만 경마장엔 뭔가 있다…거기 나가 있으면 죽음에 관해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거다. 거기 나가 있으면 내가 너무도 멍청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드니까…우린 죄다 자발적으로 수용소에 갇힌 자들이다.”

“난 언제라도 경마에 관해, 그 거대한 정체불명의 빈 구멍에 관해 쓸 태세가 돼 있다. 내가 거기 가는 건 나 자신을 희생물 삼고, 시간의 사지를 잘라내고 죽이기 위해서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는 1970년~90년대 미국 경마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경마장을 찾은 군중의 묘사도 신랄했다.

“마권을 찢어발기고, 각종 정보지를 읽고, 전광게시판의 바뀌는 내용을 쳐다보며 차츰차츰 마모돼가는 사람들. 그러는 동안 나 또한 그들 중 한 사람으로 그들 사이에 서 있다. 우린 병들었고, 우린 희망에 기생하는 빨판상어다. 우리 옷은 남루하고, 우리 차는 낡았다. 우린 신기루를 향해 나아가면서 너나없이 삶을 허비한다.”

“일요일의 경마장에 몰리는 군상은 최악이다. 난 사람들 얼굴을 대하는 데 문제가 있다. 얼굴을 쳐다보는 게 너무 힘들다. 각 인간들 삶의 합계가 얼굴에서 보이는데, 끔찍한 광경이다. 하루에 수천 명의 얼굴을 보노라면 머리 꼭대기에서 발톱까지 지친다. 창자 속까지 온통. 일요일엔 사람이 너무 많다. 초짜들의 날이다. 그들은 고함지르고 욕질해댄다. 광분한다. 그러곤 쫄딱 잃은 채 비척거리며 떠나간다. 그들은 뭘 기대했던 걸까?”

1970년대를 회상하던 그에게 경마는 단순한 ‘도박’이 아니었다. 경마장에 모인 사람들 또한 그의 눈에는 단순한 ‘도박꾼’이 아니었다. ‘하층민의 국민 시인’으로 불렸던 작가 자신이 오랜 세월 밑바닥 생활을 하며 가난을 경험했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곳이 경마장이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쓸 힘이 곧 ‘경마’였다. 지루한 일상을 버티는 힘이었고, 말(馬)은 작가 예술혼의 근본 모티브였던 것.

“경마장은 변했다. 40년 전 경마장엔 뭔가 기쁨이 있었다. 잃은 사람들 사이에도. 바들은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이젠 몰려드는 사람들도 다르고 도시도 다르고 세상도 다르다. 염병할 놈의 돈, 내일 또 오마, 하고 하늘도 날릴 돈도 없다. 이건 세상의 종말이다. 낡은 옷. 뒤틀리고 적의에 찬 얼굴들. 집세 낼 돈. 한 시간에 5달러씩 번 돈. 실업자, 불법 이주자들의 돈. 좀도둑, 빈집털이의 돈,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의 돈. 대기는 컴컴했다. 줄은 길었다. 가난한 자들은 길게 줄을 서야만 했다. 가난한 자들은 긴 줄에 익숙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줄에 서서 제 꿈이 박살나기를 기다렸다.”

그는 생전 60여 편에 이르는 소설과 시집, 단편집과 서간, 시나리오를 통해서 인간 삶에 대한 근본 통찰을 경마와 말에 종종 비유하기도 했다. ‘Don’t Try’라는 묘비명은 역설적으로 찰스 부코스키 그 자신이 얼마나 노동자로서 일하고 치열하게 사색하고 날마다 글을 썼는지를 보여준다. “삶은 언덕 위 야생마처럼 달려간다”, “위대한 예술은 말똥”, “좋은 말에 베팅하든지, 당신 주머니 돈을 지켜라”는 그의 ‘명언’을 기억하며 그가 남긴 유작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하층민의 국민 시인’, 찰스 부코스키와 그의 아내 린다가 경마장을 찾은 사진. 부코스키에게 경마는 곧 지난한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고 글쓰기의 원천이었다. “말이 더 이상 달리지 않게 되는 날엔 하늘이 풀썩, 널찍하고 육중하게 무너져내리며 깡그리 박살 낼 거다.”

▲경마장에서 그리고 그의 작업실에서 타자기로 글을 쓰는 부코스키. 대학을 중퇴하고 단편을 발표했지만, 생활고로 창작을 포기한 뒤 오랜 기간 노동자, 우편배달부로 일했다. 49살이 되던 해 그는 ‘블랙스패로’ 출판사의 제안에 따라 매월 100달러를 받고 전업작가가 됐다.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들도 최근 국내에 소개되며 골수팬을 거느리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술과 여자 그리고 경마가 빠지지 않는다. 말년 일기 모음,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설준규 옮김, 모멘토, 2015), 데뷔작인 『우체국』(박현주 옮김, 열린책들, 2012),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황소연 옮김, 민음사, 2016) 등을 추천한다.

이용준 기자 cromlee21@horse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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